
국가권력에 맞서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켰습니다.

잘못된 국책건설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뻔했던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해 기자직을 걸고 정부와 정치권력, 지방권력, 국책연구기관 등과 싸웠습니다.
2년 동안 엉터리 국책사업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파헤쳐 대통령이 ‘완전백지화, 전면재검토’를 선언했고, 5000명 주민들의 삶의 터전도 지켜냈습니다. 주민들은 저를 마을로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 상도 줬습니다.
악의 무리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서민들 피를 빠는 비열한 거대 범죄조직과 3년 동안 싸워 수많은 피해자를 구제하고, 피해를 막았습니다. 공공임대아파트 부도 배후세력을 최초 폭로했으며,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 끼어든 조폭들과 싸워 그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습니다.

군 의문사를 10년 넘게 추적했습니다.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 육군 제28사단에서 장교 1명, 병사 7명 등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해 벌인 단독범행이라며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 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발표는 의문투성이었습니다.
저는 유족들과 함께 이 사건을 10년 넘게 추적했고, 그날에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거의 다 밝혀냈습니다.
해외입양인의 가족을 42년만에 찾았습니다.

다수의 실종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42년만에 해외입양인의 가족을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릴적 왼쪽 팔에 새긴 십자가 문신이 유일한 근거였는데, 이걸 가지고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감동의 상봉식도 가졌습니다.
일제 잔재를 청산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명월관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와 최악의 사이비종교인 백백교 교주의 머리를 잘라 포르말린 용액속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하 부검실로 옮겼는데, 이걸 최초로 폭로해 폐기하게 했고, 기생 명월이의 천도재를 지내 억울한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거울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로 시작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숭어>는 ‘송어’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그런데도 일제 강점기의 표기를 수십 년간 그대로 사용해 오고 있었고, 일선 학교에서는 ‘송어’를 ‘숭어’로 가르쳤습니다.
교학사 등 국내 대표적인 교과서 전문 출판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최초 보도했고, 교과서의 검증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다음해부터 교과서를 전면 수정해 바로잡았습니다.

애국지사 김진성 선생의 아들 세걸씨와 함께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던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와 그 일가족(김낙용, 김관보, 김병식)의 실체를 추적해 고발하고, 파묘를 촉구했습니다.
2018년 8월 정부는 김정수와 일가족 3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하고, 2024년 12월 봉분을 제거했습니다.
강력사건 현장을 누볐습니다.
전문지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경제주간지를 거쳐 시사저널에서 사회팀 기자, 사회팀장, 사회전문기자, 탐사보도팀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사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오원춘 토막 살인사건 때는 현장에서 소각로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사람의 뼈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해 화제가 됐습니다.

저는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성경구절을 가슴에 담고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협박과 회유, 살해위협을 받았습니다.

또 수도 없이 언론중재위원회, 경찰서, 검찰청에 불려다니고 법원에서 ‘죄형법정주의’를 어겼다며 벌금형을 선고 받고 전과자가 됐습니다.(왼쪽 사진은 경찰, 검찰, 법원에서 받은 소환장).
그래도 한치의 흔들림없이 신념을 지켜왔고, 언론계에서 ‘바보 기자’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한순간을 살아도 산맥처럼 당당하게’라는 좌우명을 지켜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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