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살인사건


1996년 6월3일 온두라스 국적의 참치잡이 원양어선 254톤(t)급 ‘페스카마 15호’는 부산 남항을 출발했다.

최종 목적지는 남태평양 해상의 미국령 피닉스섬 근처의 해상. 그곳에서 참치잡이를 할 계획이었다.

최초 승선 인원은 17명이었으나, 일주일 뒤인 6월14일 사이판 인근 티니안섬에서 조선족 선원 7명이 합류했다. 총 승선인원 24명 중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은 8명, 인도네시아 선원 10명, 나머지는 조선족이었다. 페스카마호는 괌을 경유해 태평양에서 조업을 했다.

조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의 갈등이 깊어갔다.

특히 조선족 선원들은 고된 원양어선 작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간부들은 조선족 선원들을 다그쳤다. 선원들은 잠자는 시간까지 고된 고기잡이 작업에 나서야 했다. 이럴수록 간부들에 대한 불만도 커져갔다.

원양어선의 경우 한 번 출항할 때마다 어획량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어획량 이상을 잡으면 거기에 따른 추가수당이 발생한다. 선장이나 항해사 같은 상급 선원의 경우 이 추가수당이 상당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획량을 많이 하려고 혹독하게 선원들을 닦달한다.

페스카마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인 선원들은 어획량이 많을수록 성과급을 받았지만, 조선족 선원들은 고기를 많이 잡던 적게 잡던 받는 월급은 똑 같았다. 참다못한 조선족 선원들은 선장에게 하루 8시간 노동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들은 배에서 내리겠다며 작업을 거부했다. 그러자 최기택 선장(33)은 ‘하선 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겠다고 했다.


선장이 발급하는 하선 증명서가 없으면 불법 체류자로 남게 되며 이미 지불한 소개비마저 모두 날리게 된다. 또 ‘하선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하선자들이 부담한다’고 적힌 각서를 내밀었다. 조업 중단으로 인한 손해분을 모두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재천(39)의 경우 오가는 항공비 3만위안, 사모아까지 가는 비용 5만위안, 구류소에서 3개월간 먹고 자는 비용 2만위안, 중국에서 올 때 보증금으로 친구의 100평짜리 집을 눌러 놓은 것까지 총합계가 15만위안이었다. 다른 조선족 선원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였다.

최 선장은 조선족 선원들을 하선시키기 위해 근처 어선에 “사모아로 회항하겠다”고 교신했다. 이런 사실을 회사 측에도 알렸다. 조선족 선원들은 다시 “조업하겠다”고 사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조선족 선원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배를 탈취해 일본으로 밀입국하자고 모의했다. 수로는 절대 열세였지만 차례차례 한 명씩 살해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조선족 선원들의 잔인한 ‘선상 반란’의 서막이 올랐다.

파푸아뉴기니 동쪽 4천500km 부근 해상을 지날 때인 8월2일 새벽을 디데이로 잡았다. 이들은 도끼, 몽둥이, 칼 등으로 무장했다. 우선 선장을 밖으로 유인해 죽이기로 했다. 이 일은 2등 항해사인 전재천이 맡았다.

오전 3시쯤 그는 각본대로 선장의 침실로 가서 “선장님, 타 선박에서 호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최 선장은 일어나 조타실로 향했다. 그가 조타실로 들어가자 전씨가 재빨리 문을 잠갔다.

선장이 조타실로 들어서는 순간 안에 있던 반란 선원들이 참치처리용 칼로 최 선장의 배를 찔렀다. 최 선장이 고꾸라지자 다른 선원들이 목과 무릎을 재차 찔렀다.

나머지 선원들은 “선장이 찾는다”고 속여 하나씩 조타실로 불러내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바다에 던지거나 냉동 창고에 가둬 얼어죽게 한 후 바다에 내던졌다. 맹장염증세로 중간하선을 위해 다른 선박에서 편승한 해양고 실습생 최동호군(19)이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으나 발버둥치는 최군을 그대로 바다에 던져 수장시켜 버렸다.


이들은 반란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족 동료인 최만봉씨(27)를 살해했다.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은 냉동실에 가둬 동사시킨 뒤 바다에 던졌다. 평소 자신들과 가깝게 지내던 인도네시아 선원 6명은 죽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의 범행에 협조하도록 강요했다.

이렇게 살해당한 승선자는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7명, 인도네시아 3명, 조선족 1명 등 11명이었다.

선상 반란살인이 일어났던 페스카마호와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 이인석씨.

한국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1등 항해사 이인석씨(27)였다. 항해 기술이 없던 조선족들이 이씨만은 살려둔 것이었다. 반란 선원들은 이씨를 위협하며 2인 1조로 망을 봤다.

이씨가 다른 선박과 교신할 수 없도록 무전기 전원코드를 뽑아버렸다. 또 범행 뒤 침실을 뒤져 현금 등 한국선원들의 유품을 탈취했다.

이들은 이씨에게 배를 일본 쪽으로 몰도록 했다. 일본 근해까지 간 뒤 나머지 인도네시아 선원과 이씨를 살해하고 선박을 침몰시킨 뒤 일본으로 밀입국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인도네시아 선원들과 함께 배를 재탈취할 기회를 엿봤다.

페스카마호가 조선족 선원 손에 넘어간 지 22일째 되는 날, 이씨는 인도네시아 선원들과 은밀히 내통해 냉동기가 고장 난 것처럼 꾸미고 상한 부식을 정리해야 한다며 부식창고로 들어가게 한 후 바깥에서 문을 잠갔다. 조선족 선원들은 꼼짝없이 창고에 갇히게 됐고, 20일 동안 계속됐던 선상반란도 끝이 났다.

출항 79일째인 8월24일, 페스카마호는 항로를 잃고 연료까지 떨어져 표류하다가 도리시마 남쪽 해상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에 발견됐고, 창고 안에 갇혀 있던 조선족 선원들은 모두 체포돼 한국으로 압송됐다.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살인사건을 맡은 해경은 주범 전재천 등 조선족 선원 6명 전원을 해상강도살인, 사체유기,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6명 전원 사형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주동자로 지목된 2등 항해사 전재천을 제외한 5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심 때 문재인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전재천은 2007년 대통령 특사를 받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 사건은 남태평양 한복판에서 벌어진 ‘선상 반란’, 그것도 조선족들이 합심해서 한국 선원들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