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20초 만에 사라진 아이 ‘마츠오카 신야’ 실종사건

1989년 3월7일, 일본 도쿠시마현 코마츠시마시에서 귀신이 곡할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이바라키현 우시쿠시에 살고 있는 마츠오카 신야군(4)은 외할머니 상을 당해 어머니 마츠오카 게이코를 포함한 온 가족이 외가인 도쿠시마 현 코마츠시마시에 가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들은 코마츠시마 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사다미츠 정에 있는 케이코의 친척집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신야의 아버지인 마츠오카 마사노부는 자신의 아이들과 친척, 조카들을 데리고 집 근처를 가볍게 산책했다. 산책은 10분여 정도로 끝났다.

친척집에서 현관까지 10m 정도의 돌계단이 있었다.

마사노부는 신야가 자신의 뒤를 따라서 현관 앞까지 온 것을 확인했다. 신야가 좀 더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마사노부는 둘째 아들을 안고 빠른 걸음으로 돌계단을 지나서 집 앞 대문으로 갔다.

둘째 아들을 아내 케이코에게 넘겨준 마사노부는 다시 현관 밖으로 나왔는데, 현관 앞에 서 있어야 할 신야가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마사노부가 둘째 아들을 아내에게 건네주고 현관으로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 정도였다.

마사노부는 신야가 근처에 갔나 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온 가족들이 나서고 마을 소방대원들까지 동참해서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신야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사노부는 아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신야가 근처 산을 헤매다가 실종된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사건 현장인 케이코의 친척집은 길목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라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었다. 경찰은 뺑소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으나 교통사고의 흔적은 없었다.

사건 현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밭이 있었는데, 그 밭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들은 “외부에서 온 차 같은 건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다가 실종 9일 만인 3월16일, 도쿠시마의 친척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이바라키현 세이케이 유치원에 다니는 나카하라 마리코의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세이케이 유치원 달님반에서 신야의 실종에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위문금을 모았는데, 가족들이 언제 돌아오시느냐”라고 묻자, 케이코는 “내일 돌아갈 예정”이라고 대답했고, 통화가 끝났다.

하지만 해당 유치원에서는 위문품을 모은 사실도, 나카하라 미리코라는 학생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전화를 한 것일까.

만약 이바라키 현에 사는 사람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떻게 신야 친척집의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걸었을까. 반대로 도쿠시마현에 사는 사람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떻게 신야가 다니던 유치원 이름을 알았는지 의문이다.

아이를 납치한 도쿠시마 여자가 아이에게 다니는 유치원 이름을 물어 가족들의 귀향 날짜를 알아내려는 의도일 수 있다.

신야를 납치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있지도 않은 위문금 지급을 미끼로 신야 가족의 귀향 날짜를 알아볼 이유가 없고, 이바라키현에 사는 사람이 굳이 먼 도쿠시마까지 가서 아이를 납치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미루어 본다면, 전화를 건 사람은 분명 신야네 가족의 신상을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전화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는 못했다. 이후 신야의 가족들은 TV에 출연하고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신야를 찾았지만, 끝내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29년이 흘렀다. 2018년 1월31일 실종자 특집 프로그램 TBS ‘공개 대수색 18’ 봄 오늘밤 당신이 해결한다! 기억상실, 행방불명 스페셜’에 한 남성이 출연했다.

이 남성은 자신을 25살인 ‘와다 류토’라고 소개했다.

방송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류토와 마츠오카 신야와 너무 닮았다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여러 방송에서는 류토와 신야의 사진을 대비시켜 ‘아주 닮았다’고 하면서 신야 실종사건에 대한 해결 가능성을 점쳤다.

이제 친자 확인을 통해 확실히 가리는 것만 남았다. 도쿠시마 경찰은 신야의 부모를 통해 DNA 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친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일본의 3대 실종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채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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