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살인범 가리킨 암매장 여인의 ‘한 맺힌 손’


2010년 11월19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동구 강일동의 한 야산에서 산책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주변의 산책로를 정비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굴착기가 동원돼 땅을 파면서 땅고르기 작업을 했다.

한창 땅을 파던 굴착기가 순간 작업을 중단했다. 땅속 50cm를 파던 중 아이스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굴착기 기사는 대수롭지 않게 아이스박스를 치우려고 뚜껑을 열어봤다. 그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그 안에는 백골화 된 여성의 시신이 들어있었다. 시신은 오리털 이불과 비닐로 감싸여 있었고, 검정 케이블 선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타살된 시신이었다.

특이한 것은 머리와 팔다리 등 신체 대부분이 모두 썩어 뼈만 앙상했지만 놀랍게도 두 손만은 지문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중 왼쪽 손은 지방조직까지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감식반도 이 특이한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감식반은 시신의 왼쪽 손 부위에 남은 지문을 채취했고 신원을 확인했다. 경찰은 “두 손만 미라처럼 남은 이유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시신에 남은 지문이 단서가 돼 신원은 금방 밝혀졌다. 그는 강동구 천호동에 살던 김아무개씨(여·49)였다. 경찰은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시신의 부패 속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5년 넘게 시신의 특정 부위(손)만 썩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놀라워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김씨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5년 전 가출신고가 접수돼 있었다. 경찰은 김씨의 딸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당시 김씨와 따로 살던 딸이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걱정하자 동거남인 심아무개씨(42)는 “싸운 뒤 집을 나갔다”고 거짓말한 뒤 함께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가 집에서 흔히 입는 편한 복장 상태로 숨진 점과 사체를 감싸고 있던 오리털 이불이 김씨가 집에서 쓰던 것과 동일한 것임을 확인하고 심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그의 은신처를 추적해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의 한 갈비집에서 일하고 있던 심씨를 체포했다. 심씨는 체포 당시에 도박을 하고 있었다. 심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죽였다”며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은 그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심씨는 왜 김씨를 살해한 것일까.

특수강도 등으로 전과가 있던 심씨는 심각한 도박벽을 갖고 있었다. 2005년 5월9일 밤에도 심씨는 도박을 하고 오후 11시쯤이 돼서야 강동구 천호동 지하 셋방으로 들어섰다. 동거녀인 김씨가 “또 도박하고 왔냐”고 따져 물으면서 다툼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잃어 화가 난 상태였던 심씨는 집 안에 있던 벽돌로 김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김씨가 쓰러지자 두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당황한 심씨는 시신을 동네 야산에 묻기로 결심한다. 지인 한 명을 불러 이튿날 오후 11시쯤부터 행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집안에 있던 오리털 이불과 비닐로 사체를 감싼 후 검정 케이블 선으로 꽁꽁 동여맸다. 두 사람은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넣어 차량에 실은 뒤 강동구 강일동 산 16번지 야산에 암매장했다.

범행 16일 후인 같은 달 26일 심씨는 김씨의 딸과 인근 동사무소에 김씨의 실종을 알린 뒤 거주지를 옮겼다. 범행 후 심씨의 도박벽은 계속 이어졌다. 도박 판돈을 대기 위해 절도에 나섰고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심씨는 같은 해 12월 사우나털이를 하다가 붙잡혀 영등포구치소에서 2006년 7월까지 약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났다. 이때까지도 그의 ‘동거녀 살인’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김씨의 죽음은 야산 작업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암매장 후에도 5년 반 동안 부패되지 않은 ‘한 맺힌 손’이 결국 김씨의 원한을 풀어준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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