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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타오른 불꽃 ‘배우 장진영’이 남긴 마지막 고백


네온사인이 보석처럼 박힌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밤하늘은 지나치게 눈이 부셨다. 2009년 7월의 어느 날, 화려한 불빛 아래 자리한 조촐한 교회 내부에는 하객들의 축하 소리도, 거창한 음악도 없었다.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만이 사방을 채웠다.

하얀 면사포를 쓴 여자는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항암 치료의 독한 흔적으로 머리카락은 가늘어졌고, 뺨의 살은 내려앉았지만, 눈동자만큼은 처음에 만났던 그날처럼 맑게 빛났다. 남자가 여자의 마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 여자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하얀 드레스 깃 위로 툭 떨어졌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혼식이었다.

슬픈 결혼식과 외로운 혼인신고

한 달 뒤인 8월28일, 서울 성북구청의 민원실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서류 양식 하나를 꺼내들고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혼인신고서였다. 보통은 신랑과 신부가 함께 찾아오지만, 남자의 곁에서 수줍게 웃고 있어야 할 신부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양식을 다 채운 남자는 접수대에서 서류를 내밀었고, 확인도장이 쾅 하고 찍혔다. 두 사람은 이제 법적 부부가 되었다. 신랑은 김영균, 신부는 장진영이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장진영과 김영균의 결혼식 장면.

그 시각, 신부는 신촌 대학병원의 차가운 무균실에서 희미해지는 의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투명한 링거 호스를 통해 정체 모를 약물들이 끊임없이 체내로 흘러들었지만, 이미 그녀의 복부는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암세포가 장기를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그녀의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이때 침상 머리에 놓인 휴대전화의 진동음이 울리자 겨우 눈을 떠서 전화기를 들었다.

“오늘 혼인신고 마쳤어.”

남편의 짧은 메시지에 여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장을 겨우 한 자 한 자 찍어 내려갔다.

‘영균 씨, 당신한테 너무 고마워요. 당신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공포를 견딜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 가. 내 마음 알죠?’

그것이 배우 장진영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고백이었다. 사흘 뒤인 2009년 9월1일 오후 4시5분, 그녀는 남편의 품에 고개를 묻은 채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향년 서른일곱.


대중은 이 믿기지 않는 비극 앞에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이를 한 편의 애달픈 멜로영화로만 기억하는 것은,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삶과 연기를 사랑했던 배우 장진영에 대한 결례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은 박수갈채 속에 갇힌 박제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태워 빛을 내던 하나의 불꽃이었다.

홀로 인형놀이를 하던 전주의 소녀

1972년 전북 임실의 푸른 산자락에서 태어난 장진영은 전주의 낡은 골목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독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 또래 아이들이 모여 시끄럽게 뛰어놀 때, 그는 방안 구석에 앉아 혼자 인형을 늘어놓고 상상의 세계를 지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청아하게 퍼지는 멜로디의 잔향을 쫓거나, 도화지 위에 물감을 칠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미술과 피아노 부문에서 받는 상장들이 늘어갈수록, 소녀의 고독도 함께 깊어졌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하던 시절, 큰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런웨이 위로 이끌었다. 1993년 미스코리아 대전·충남 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으면서 대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본격적인 연기 행보를 시작했을 때, 스물여섯의 나이였다. 여배우로서는 결코 빠르지 않은 출발선이었다.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고,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촬영장 구석에서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10시간 연속으로 카메라를 마주하고 나면, 며칠 동안 온몸이 쑤셔오며 끙끙 앓아야 했던 초년병 시절이었다.

그러나 장진영은 영악하게 예쁜 척을 하는 여배우가 되기를 거부했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짧은 단역으로 스쳐 갈 때도, 영화 <자귀모>의 조연으로 스크린의 먼발치에 서 있을 때도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갈구하듯 번뜩였다.

장진영의 데뷔작인 ‘내안의 천사’와 인기를 얻은 ‘순풍 산부인과’의 한 장면.

연기력을 인정받아 대중의 환호와 매스컴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오히려 담담했다. 스타가 된 후 “배우가 되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던 것은, 예전의 낯선 이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피로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배역 뒤로 숨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혼자 인형놀이를 하며 상상력을 키우던 그 고독한 소녀는, 그렇게 충무로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달릴 준비를 마친 야생마로 자라나고 있었다.

분장실 거울에 비친 상처들

2000년 영화 <반칙왕>은 장진영이라는 이름 석 자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전환점이었다. 체육관 관장의 딸 ‘민영’이 되어 사각의 링 위를 괄괄하게 누비던 그녀의 모습은 신선했다. 진짜 ‘배우 장진영’의 탄생을 알린 서막은 따로 있었다. 2001년, 윤종찬 감독의 저예산 공포영화 <소름>의 시나리오가 그녀의 손에 쥐어지면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여자 ‘선영’. 예쁜 얼굴을 무기로 삼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꺼렸을, 피와 멍으로 얼룩진 배역이었다. 장진영은 거울 앞의 자신을 지워나갔다.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 줄담배를 피워 물어 찌든 손가락, 남편의 폭력에 짓밟혀 온몸에 들어찬 시퍼런 피멍자국까지.
그녀는 배역의 고통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의 육체에 그대로 새겨 넣었다. 촬영장의 구석진 콘크리트 바닥에 쪼그려 앉아 대본 여백에 빽빽하게 호흡의 타이밍과 인물의 감정선을 써 내려가던 그녀의 가위눌린 듯한 뒷모습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함을 풍겼다.


그해 겨울, 제2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의 공기는 팽팽했다. 이영애, 전도연, 전지현, 이미연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후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누구도 무명의 딱지를 겨우 뗀 장진영의 이름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상자의 입에서 “장진영”이라는 세 글자가 나왔을 때, 객석은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무대 위로 올라온 그녀는 마이크 앞에서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트로피를 쥔 손이 잘게 떨렸다. “마음을 비웠는데, 정말 몰랐다”며 눈물을 훔치던 그녀의 모습은, 이변이 아니라 치열한 독기가 만들어낸 당연한 승리였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거침없는 스펙트럼의 확장이었다. 2003년 <싱글즈>의 단발머리 나난이 되어 스물아홉 독신 여성의 발랄한 현실을 대변하며 두 번째 청룡의 왕관을 썼다.

그러나 영광의 뒤편에는 늘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2005년 영화 〈청연〉에서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연기할 때,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블루 스크린 앞 좁은 조종석 모형에 홀로 앉아 한 달 내내 허공을 응시했다. 그 지독한 고립감 속에서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전주 골목길에서부터 품어온 오랜 고독의 기억이었지만, 영화를 둘러싼 외부의 정치적 논란과 흥행 참패는 그녀의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영화 ‘청연’에서 주연을 맡은 장진영과 김주혁(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실패의 쓴잔을 마신 그녀가 선택한 곳은 뜻밖에도 가장 낮은 밑바닥이었다. 다음해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룸살롱 접대부 연아로 분했을 때, 그녀의 온몸은 멍 자국으로 가득했다. 상대 배우와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을 찍고 나면 며칠 동안 앓아누워야 했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무대에 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배우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려한 조명등이 꺼진 분장실 구석, 거울 속에 비친 거친 얼굴을 보며 그녀가 흘렸을 고독의 무게를 대중은 다 알지 못했다. 매번 영혼의 살점을 베어내듯 배역에 몰입했던 대가는 가혹했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쌓인 안팎의 상처들은, 채 여물기도 전에 그녀의 몸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멕시코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삼킨 신음

2008년 가을, 드라마 〈로비스트〉를 마친 후 속이 더부룩하고 쓰린 증상이 이어졌다. 밤낮없는 촬영과 스트레스로 인한 흔한 위염이려니 생각하며 병원을 찾아갔다. 종합검진 결과가 나온 날, 의사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위암 4기’.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퍼져버린 암세포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명을 받아들었다.

장진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국화꽃향기’의 한 장면.

5년 전 <국화꽃 향기>에서 연기했던 희재의 비극적인 운명이, 현실의 장진영에게 고스란히 데칼코마니처럼 찍혀 나온 것이다. 극중 희재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끝내 위암 말기로 연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은막 위에서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각혈을 했고, 관객들은 그녀의 애절한 눈빛에 가슴을 쥐어짜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스크린 속 가상의 비극은 어느새 배우의 육체를 잠식하는 잔인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부터 시작된 투병 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소속사는 병석에 누워 신음하는 여배우의 모습을 세상에 유출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대중의 기억 속에 언제나 가장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배우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국내 병원들이 고개를 젓기 시작했을 때, 연인 김영균은 그녀의 손을 잡고 멕시코 티후아나의 작은 암 치료 클리닉으로 향했다. 낯선 이국의 흙먼지가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병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매달려 방사선 줄기가 몸을 관통할 때마다 여자는 시트를 바짝 움켜쥐고 신음을 삼켰다. 살고 싶다는 열망, 다시 카메라 앞에 서서 “오래오래 연기할 거니까 급할 것 없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고통속에서도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곁을 지키는 연인의 마른 손뿐이었다.

고 장진영의 영결식(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그러나 기적은 국경을 넘어오지 않았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전세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 창밖으로 펼쳐진 구름 바다를 보며 장진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청연〉에서 복엽기를 타고 끝없는 하늘로 날아오르던 박경원의 미소가, 그 순간 여자의 마른 뺨 위로 겹쳐 흘렀다.

옥정호의 물안개로 피어난 이름

그녀가 떠난 후에도 남겨진 이들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매년 9월이 오고 쓸쓸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칠 때면 대중은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장례식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노래 〈희재〉의 선율처럼, 그녀는 우리에게 아련한 부채감으로 남아 있다.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봐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화려한 은막의 커튼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뒤늦은 후회다.

홀로 남은 남편은 그녀와의 608일간의 선명한 기억이 세월의 흐름 속에 흐려질까 두려워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을 출간해 기록으로 남겼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던 딸의 유지를 받들었다. 딸의 아호인 ‘계암’을 따 장학회를 설립하고 고향 산자락 가파른 고갯길 옆에 작은 기념관을 세웠다.
매일같이 딸의 영정 사진을 닦으며 그 영혼을 기리던 아버지는, 2024년 5월 봄날, 딸의 15주기 행사를 준비하러 기념관을 찾았다가 발을 헛디뎌 먼 길을 떠났다. 향년 89세.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가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먼저 간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굵은 밧줄이었다.

장진영 기념관과 그녀의 아버지(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제 전북 임실의 섬진강 상류, 옥정호 인근의 고즈넉한 선산에는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누워 있다. 새벽이면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가 묘역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수백 년 동안 홀로 폐허를 지켜온 진구사지 석등처럼, 그녀의 삶이 남긴 여운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장진영은 비록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대본 여백마다 숨 가쁘게 적혀 있던 연기의 흔적들, 남편의 가슴속에 새겨진 선명한 사랑의 기억, 그리고 대중의 마음속을 적신 환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 같은 대본도, 살을 깎는 병마의 고통도 없는 그곳에서, 배우 장진영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은막의 가장 아름다운 프레임 안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카메라 앞에서, 아무런 아픔 없이 영원히 자유롭게 비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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