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범죄 ‘화순 서라아파트’ 모녀 살인사건
전남 화순군 화순읍 벽라리에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김아무개씨(36) 가족이 살고 있었다.
김씨는 아내 이아무개씨(32)와의 사이에 5살, 3살 두 딸을 두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 김씨 가족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온다.
김씨의 앞집에는 소년 악마가 살고 있었다. 김아무개군(17)은 특수절도 전과 1범으로 영광에 위치한 비행청소년 선도 대안학교를 다니다 1997년 1월에 자퇴했다. 김군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며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먹었다.
같은 해 7월 김군은 범죄를 모의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서울 사는 후배 채아무개군(16)에게 전화를 걸어 “한탕할 곳을 봐 뒀으니 화순으로 내려오라”고 연락한다.
채군은 함께 화순으로 내려갈 일행을 모았다. 먼저 단란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여자친구 최아무개양(15세)을 꼬드겼다.
최양은 친구처럼 지내던 윤아무개양(18)에게 함께 가자고 해서 3명이 동행하게 된다. 이들은 7월7일 오후 3시쯤 광주역을 거쳐 화순으로 오게 된다.
첫날은 김군의 집에서 보냈다. 김군은 자신의 범행계획을 일행에게 설명했다. 평소 봐둔 아파트를 돌며 흉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겠다는 계획이었다. 7월8일 김군 등은 미리 구입한 과도 2개를 소지하고 범행에 나섰다.
하지만 당초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허탕만 쳤다. 다음날 김군 등은 계획을 바꿔 바로 앞집을 노리기로 한다. 개인택시 기사 김씨 집이다. 김군은 이 집의 동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남편 김씨는 택시 운전하러 나가고 큰 딸은 어린이집에 가서 집 안에는 김씨의 아내와 막내딸 둘만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군은 일행에게 “아줌마와 아기만 있는데, 내 얼굴을 안다”고 하자 옆에 있던 채군이 “죽이면 되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최양과 윤양도 채군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범행가담에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4명의 악당들은 모녀를 계획적으로 노리게 된다.
오전 11시쯤 김군이 앞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 있던 주부 이씨가 “누구세요”하며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 김군이 들고 있던 식칼을 들이밀었다. 순간 당황한 이씨가 주춤거리자 김군은 현관문을 뒤로 밀어 이씨를 넘어뜨렸다.
이때 채군이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넘어진 이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했다. 이들의 잔혹한 범행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김군과 채군은 실신한 이씨를 화장실로 옮겨놓았다. 장롱을 뒤져 찾아낸 넥타이로 손발을 결박했다. 최양과 윤양은 거실에 있던 TV를 크게 틀어놓았다. 김군 등은 거실과 안방을 뒤져 값나가는 것은 모두 챙겼다.
이들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결혼예물과 현금 11만5천원이었다.

김군 등은 완전범죄를 꿈꾸고 이씨 모녀를 살해하기로 한다. 이씨를 죽이기 위해 화장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은 후 다리를 들어 머리부터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미리 준비해 온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고 문을 닫았으나 불은 금방 꺼지고 말았다. 이때 정신을 차린 이씨가 넥타이를 풀고 불을 끈 후 화장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자 김군은 화장실 문을 부수고 안에 있던 이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이씨가 공포에 떨며 “아기는 어디 있느냐? 내 아기를 돌려다오”라고 애원했으나 김군은 흉기로 마구 찔렀다. 이씨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지자 김군은 그 위에 이불을 덮고 채군에게 흉기를 넘겨줬다.
채군은 김군에게 받은 흉기를 이씨에게 휘둘렀다.
이들은 이씨를 다시 욕조로 밀어 넣고 죽을 때까지 칼로 찌르고 그 위에 올라가 등과 머리까지 밟았다. 이씨는 이때 무려 15번이나 칼에 찔렸다. 얼마나 세게 찔렀던지 칼이 심하게 찌그러질 정도였다. 이씨는 이렇게 처참하게 살해됐다.

김군 등은 이씨의 세 살 배기 딸까지 그냥 두지 않았다. 엄마를 살해한 후에는 거실에서 자고 있던 딸을 욕조 속에 거꾸로 넣은 후 머리를 눌러 살해했다.
그 과정이 너무 잔인해서 차마 적을 수가 없을 정도다. 모녀를 살해한 이들은 지문 등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양동이에 물을 받아 집안 곳곳에 뿌리고 닦았다. 그리고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다.
모녀의 시신은 얼마 후 남편에게 발견된다. 김씨가 집에 왔을 때 아내와 막내딸은 핏물이 흘러넘치는 욕조 속에 머리를 박은 채 엎드려 있었다.
김군 등은 범행 후 이씨 집에서 훔친 돈으로 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은 다음 노래방에서 1시간 동안 흥청망청 유흥을 즐겼다. 일종의 단합대회였다. 김군은 화순에 남고 나머지 3명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물론 “다음에 또 멋지게 한탕하자”며 범행을 기약한 후 헤어졌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김군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김군의 집 현관 슬리퍼에서는 살해된 이씨의 것과 동일한 혈흔이 발견됐다. 이때 김군은 광주의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경찰은 부모를 통해 김군을 집으로 불러들이게 한 후 체포해 경찰서로 연행했다. 김군은 경찰이 내민 증거 앞에서 더 이상 발뺌하지 못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공범 3명도 차례로 검거됐다.이들은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들로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으며 형량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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