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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자’ 영화배우 김추련 사망사건


1946년 9월28일 경남 고성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회화중학교, 부산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67년 연극배우를 시작으로 1974년 영화 <빵간에 간다>의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 영화로 이듬해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배우 생활을 예고했다.

1977년 장미희씨와 함께 <겨울여자>의 주연을 맡으며 대박을 터트렸다. 김추련은 극중 여주인공 이화(장미희)의 두 번째 남자 우석기 역을 열연했다.

70년대 당시로선 기록적인 관객(58만5775명)을 동원했다. 서편제 이전 최고 흥행기록이다.

이후 <각시탈 철면객>(1978), <꽃순이를 아시나요>(1979), <병태와 영자2>(19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오구>(2006), <썬데이 서울>(2006) 등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김추련은 주로 강인하고 터프한 역을 연기하며 당대 최고의 스타 여배우인 장미희, 유지인, 윤정희 등과 호흡을 맞췄다. 1980년대 중반에는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연이은 실패로 쓴 잔을 맛봤다.

2003년 연예계로 복귀, 이듬해 10월에는 안톤 체호프 100주기를 기리는 연극 <벚꽃동산>에서 남주인공 오박사(가예프) 역으로 분해 무대에 섰다.

2002년에는 가수로 변신했다. <영원한 사라>를 타이틀곡으로 첫 음반을 발표한 후 2011년까지 모두 4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작사했다. 2003년 11월과 2004년 8월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콘서트와 디너쇼를 갖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2008년 12월 SBS <인터뷰 게임>에 나와 공개구혼을 통해 인생의 반려자를 찾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독신으로 살아온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영화에서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싶은 환상과 잇따른 사업 실패, 소심한 성격 등으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대시 한번 제대로 못하고 혼기를 놓쳤다”고 고백했다.

애완견을 친구삼아 살아온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면서 “더 늦기 전에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함께 방송에 출연한 김씨의 누나는 “네가 가정을 가져야 나도 눈 감고 죽는다”며 가슴 아파했다.

김추련은 “이제 와서 배우자를 맞고 싶다는 게 제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사실 저 자신만 생각하고 제 일에만 몰두했던 것이 더 큰 욕심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나면 고백하겠다”며 강한 결혼의지를 내비쳤다.

방송 마지막 그는 “저를 한번 사랑해 보시겠습니까? 김추련이라는 남자를 사랑해 보시겠습니까?”라며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겨울여자’에 나왔던 대사를 응용해 공개 프러포즈 했다.

하지만 실제 인연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김추련은 영화와 가수 등으로 활동했으나 예전 같은 인기를 끌지 못하자 소리 없이 퇴장해야 했다. 2011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 김해로 내려가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냈다.

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았고, 우울증까지 찾아와 고통스런 나날이 지속됐다. 그나마 시내 교회에 다니며 신앙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같은해 11월7일 오후 6시쯤 같은 교회에 다니던 강아무개씨(50)는 김씨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그는 “내가 편지 한 통을 보냈으니 내일 집에서 기다렸다가 받으라”고 했다. 강씨는 뜬금없는 내용에 의아했다.

다음날 오전 강씨에게 김씨가 보낸 등기우편이 도착했다. 여기에는 ‘이 편지를 받을 때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열쇠는 1층 가게에 맡겨뒀으니 경찰에 신고하고 뒷일을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추련이 신고를 부탁한 글과 유서. (뉴시스 제공)

강씨가 오피스텔에 가보니 김씨는 다락 난간에 목을 매 숨진 상태였다. 강씨는 경찰에서 “처음 전화를 받고 나서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설마 목숨을 끊으려는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숨진 김씨의 바지 호주머니에서는 A4 용지 1장에 적은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예전에는 인기를 많이 누렸으나 이제는 외로움과 어려움을 견디기 힘들다. 팬들과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김씨가 7일 저녁 7시쯤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 휴대전화를 끈 점으로 미뤄, 어려운 처지와 신병을 비관해 이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왕년의 인기스타였던 김추련. 그는 배우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병마와 싸우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향년 65세.

고인과 1979년 <야시>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안성기는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조차도 그간 만나지도, 얘기도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거론하는 게 무책임한 게 아닌가 싶고 ‘진작 연락을 좀 했더라면…’이라는 안타까움만 든다”며 비통해했다.

고인의 음반 작업을 돕는 등 30년 가까이 연예계 선후배로 우정을 쌓아온 트로트가수 설운도는 “형님은 성품이 고운 분이셨다. 외로움도 많이 탔고 내성적이셨다”며 “하지만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욕과 애착이 강했던 분인데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싶고, 무슨 큰 충격이 있었나 싶다.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작가 이외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원로 영화배우 김추련씨가 자살했군요. 때로 외로움은 독약같은 것,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위로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을 거쳐 고향이자 유년시절을 보낸 경남 고성군 당항리의 선영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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