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결혼하고 7년 동안 동거한 남자
1877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칼 본 코셀은 43세에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코셀은 1926년 여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의 제프리힐스로 이민했다. 얼마 후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혼자 플로리다 키 웨스트로 떠난다.
코셀은 미 해군병원에 취업해 방사선 기술자 겸 세균연구사 직책의 군무원으로 일했다. 1931년 어느 날 미모의 한 여성이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코셀은 이 여성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녀는 코셀 보다 32살 어린 22살의 엘레나 요오스였다.
엘레나는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당시는 결핵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결핵으로 사망하던 시기였다. 코셀은 엘레나의 병을 꼭 낫게 해준다며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엘레나의 병을 고치는 일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엘레나는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코셀에게 감동받았고, 두 사람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코셀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병원에 온 지 석 달 만에 사망한다.
그렇게 엘레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를 향한 코셀의 사랑은 계속됐다. 그는 엘레나의 생전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 유족의 동의를 얻어 그녀의 데드마스크(Death Mask, 죽은 직후 망인의 얼굴을 본떠 만드는 안면상)를 만들었다.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몽땅 털어 돌로 ‘영묘’를 만들어 그곳에 엘레나를 안치했다, 엘레나의 묘는 일반인들의 묘와는 달리 엄청나게 크고 웅장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코셀은 엘레나의 시신이 안치된 다음 날부터 매일 밤 찾아와 밤새 그녀를 지키다가 돌아갔다. 코셀의 이런 행동은 무려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엘레나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코셀의 순애보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엘레나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1933년 4월부터 코셀은 엘레나의 묘에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난 2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엘레나의 묘를 찾았던 코셀은 어느 순간 발걸음을 뚝 끊어버린 것이다.

그 후로 종적이 묘연해진 코셀. 사람들은 이제 엘레나에 대한 코셀의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집안에만 틀어박힌 채 엘레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40년, 코셀이 계속해서 폐인처럼 지낸다는 소식을 들은 엘레나의 언니 나나는 자신의 동생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코셀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코셀의 집에서 뭔가를 보고 경악하는 나나. 코셀과 함께 다정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던 것은 놀랍게도 엘레나의 시신이었던 것이다.
엘레나가 세상을 떠난 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엘레나의 묘를 찾은 코셀. 어느 날 그는 평소 엘레나가 좋아했던 노래를 불러주던 중 엘레나의 환영을 보게 된다.
코셀은 엘레나의 환영에게서 자신을 무덤에서 빼내 달라는 부탁을 듣게 되었고, 그 즉시 아무도 모르게 엘레나의 무덤에서 그녀의 시신을 꺼내 집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코셀은 몰래 가져온 엘레나의 시신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시신의 뼈를 피아노 줄도 단단히 고정한 다음 부패한 피부를 제거하고 실크와 왁스 등으로 가짜 피부를 만들어 붙였다.
눈에는 인형에 쓰이는 유리알을 끼워넣었다. 머리에는 엘레나의 가족에게서 얻은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씌웠다. 얼굴에 화장을 시켰으며 웨딩드레스를 입혀 신부처럼 꾸몄다. 악취를 가리기 위해 인형에는 짙은 향수를 뿌렸다.

코셀은 이렇게 만들어진 엘레나 인형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그 옆에 누워 마치 부부처럼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간을 엘레나의 시신과 지내는 엽기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엘레나의 언니 나나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코셀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코셀의 범죄가 드러났을 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금방 풀려나게 된다.
경찰은 엘레나의 시신을 묘지로 돌려보내기 전 대중에게 공개했다. 엘레나의 시신은 다시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이번에는 가족을 제외한 누구도 무덤의 위치를 모르게 조치했다.
경찰은 정신분석의들에게 코셀의 정신분석을 의뢰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정신상태는 ‘정상’으로 나왔다. 이에 코셀은 끝까지 “나는 엘레나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셀의 이런 행동에 대해 ‘네크로필리아 증후군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이것은 시신이나 유골에 사랑을 느끼는 증상으로 심할 경우 시신을 자신의 곁에 두려는 집착으로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엽기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코셀은 키 웨스트를 떠나 파스코 카운티로 이주한다. 그는 이곳에서 엘레나를 그리워하며 홀로 여생을 보내다가 1952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 옆에는 사람 크기의 엘레나의 데스마스크를 쓴 인형이 함께 눕혀져 있었다고 한다.
코셀이 죽은 지 18년이 지난 1970년, 엘레나의 시신을 부검했던 부검의들은 엘레나의 시신 성기 부분에 종이 튜브가 장착돼 있었다는 것을 공개하며 코셀이 시간을 저질러왔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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