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된 암석에서 발견된 살아있는 개구리
1733년 4월19일 스웨덴 고틀란드 완링게보(Wamlingebo) 마을 근처의 한 채석장에서 작업자인 앤더스 하프워더와 올로프 시그라푸어는 사암 블록(사막 지하에서 발견되는 토양 블록)을 자르고 있었다.
한참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이들은 한 단단한 암석을 자르는데 성공한다. 작업자 중 하프워더가 두 동강이난 암석을 살펴보다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바위 안 움푹 들어간 곳에 살아있는 개구리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입 주변에는 노란색 막이 보였다.
그는 다른 작업자들을 불러와 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암석 자체가 최소 수백년이나 된 데다가 개구리가 단단한 돌속에 기어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감독관인 요한 그로버그에게 보고했다. 그는 작업자들을 따라 채석장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개구리가 살아있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개구리는 무기력한 상태였고, 삽으로 들어올리거나 자극해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감독관인 그로버그는 개구리가 불길하다고 생각했던지 그만 삽으로 내리쳐 죽이고만다. 얼마 후 그로버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개구리 사체를 회수한 후 다양한 학자들에게 연락한다.

이중 의사이자 박물학자인 요한 필 박사가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로버그는 개구리 사체를 들고 스톡홀롬의 필 박사에게 찾아갔다. 그는 암석과 개구리를 분석한 결과 알에서 부화한 올챙이가 암석의 작은 구멍속으로 들어가 성체 개구리가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필 박사는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써서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됐으나 오히려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현재 이 논문은 스톡홀롬 기록보관소에 있으며 그로버그의 설명, 채석장의 지질학적 부분과 개구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판화가 포함된 발췌문이 출판됐다.
이후 개구리의 사체는 칼 구스타프 테신 백작 소유의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됐다가 1760년 이후 사라졌다.
암석에서 살아있는 동물이 나온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16세기 프랑스에서도 채석장의 암석에서 거대한 두꺼비가 발견됐다.
1865년 영국 하틀풀에 있는 석회암 덩어리 안에서도 두꺼비 한 마리가 나왔다. 당시 지역신문은 “구멍은 몸보다 크지 않았고 그것을 위해 주조된 것처럼 보였다”며 “두꺼비의 눈은 특이한 광채로 빛났고, 해방에 대한 생기로 가득차 있었다”고 보도했다.

1876년 남아프리카에서는 널판지로 쓰려고 나무를 자르다 작은 두꺼비를 발견했다. 이를 취재한 지역신문에는 “주위는 모두 노란 나무였는데. 두꺼비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고, 얼마나 오래 있었으며, 어떻게 음식이나 공기없이 살 수 있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 텍사스의 일부 사람들은 뿔이 있는 도마뱀은 동면 상태에서 100년 동안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텍사스주 이스트랜드시의 서기인 어니스트 우드는 이 이론을 시험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1897년 3월 이스트랜드 법원 청사를 신축하면서 뿔 달린 도마뱀 한 마리를 법원 초석에 넣고 봉인했다.

31년 후인 1928년 법원이 철거되면서 봉인한 초석을 열어보기로 했다. 지역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시에서는 가짜 도마뱀을 몰래 들여놓는 것을 막기 위해 카운티 판사와 세명의 성직자를 입회시킨 가운데 초석을 열었다.

놀랍게도 뿔 달린 도마뱀은 그때까지 살아있었다. 이 도마뱀은 ‘올드 립'(Old Rip)이라고 불리며 유명세를 탔지만 약 11개월 뒤 죽었는데, 사인은 불명이다.
지금까지 이 현상들에 대해 무수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는 않았다. 개구리나 두꺼비 등이 암석 안에서 수백년 동안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는 여전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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