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동 ‘만취’ 육군 일병 총기 난사사건
지금의 ‘서울 강서구 공항동’ 일대는 원래 경기도 김포군 송정리에 속해 있었다.
1963년 서울시 확장계획에 따라 김포비행장이 들어서자 서울시 영등포구 공항동으로 개칭돼 편입됐다. 1977년에는 강서구 공항동으로 분구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 영등포구 공항동에는 육군 모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1974년 4월30일 저녁 김원재 일병(25)은 동료 사병과 부대 앞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둘은 대화 도중 말다툼을 벌였고 감정이 격해지자 허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뽑아들었다. 한동안 대검을 휘두르던 두 사람은 주변의 만류로 간신히 싸움을 멈췄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김 일병은 오후 11시쯤, 부대로 들어간 뒤 카빈 소총을 꺼내 장전했다. 그는 평소 사이가 나빴던 선임하사를 찾아 부대 막사로 들어갔다가 카빈총을 난사해 동료 2명을 사살했다.
혼비백산한 다른 동료들이 부대 밖으로 달아나자 김 일병은 그 뒤를 추격했다.
김 일병은 부대에서 약 50m 떨어진 현학용씨(57)의 외딴 집에 접근했다. 이때 라디오를 듣다가 총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현씨와 마주쳤고, 김 일병은 현씨에게 총격을 가해 쓰러뜨렸다.
현씨를 뒤 따라 나온 그의 아내 금옥씨(55)와 큰딸 효순양(17)이 쓰러진 현씨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자 김 일병은 욕설을 퍼부으며 모녀에게 총을 난사했다.
이로써 현씨 일가족 3명은 그 자리에서 참변을 당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현씨의 장남 명철군(중2)은 비닐하우스 안으로 숨어 들어가 화를 면했다.
김 일병은 다시 부대로 들어가던 중 자신을 찾아나온 소대장 이승범 소위를 쏴 죽이고, 다른 막사에 들어가 동료 8명에게 총기를 난사 이중 3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김 일병은 부대 안 벙커안으로 들어가 은신했다.
비상이 걸린 부대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기동타격대를 현장에 출동시켰다. 무장한 군경 200여명이 김 일병이 은신해 있던 벙커 반경 500m 이내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김 일병은 5월1일 새벽 2시쯤, 자신의 목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끊었다.

이번 총기 난동으로 6명의 군인과 민간인 3명 등 총 9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김 일병이 입대 전 공항동에 있는 S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공분을 샀다.
한편, 제주도가 고향인 현씨 일가는 약 4년 전인 1970년 12월 서울로 이사왔다. 73년 8월부터는 사고가 일어난 공항동의 외딴 농막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비닐하우스와 정원수 묘목 재배, 포도재배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술 취한 군인에게 일가족이 돌이킬 수 없는 참변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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