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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미모의 아나운서와 영화배우

1980년대와 90년대 한창 잘 나가던 미모의 아나운서와 영화배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남겨진 흔적이 전혀 없어 ‘증발’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결국 두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다.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모델 겸 영화배우 윤영실

윤영실은 22살 때인 1977년 모델로 데뷔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80년대 여자성인의 평균키는 155cm 정도. 윤영실은 당시만 해도 거인에 속하는 174cm였다. 2000년대 톱 모델인 장윤주 보다 1cm가 더 컸다.

윤씨는 서구적인 외모와 세련미 넘치는 이미지로 일약 모델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언니 오수미의 후광까지 얻으며 ‘자매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윤영실은 승승장구했다.

모델 데뷔 첫해에 영화배우로도 데뷔해 단번에 홍파 감독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의 주연을 맡았다. 1977년 이원영 작가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로써 윤영실은 패션모델 출신 여배우 1호가 됐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TBC 동양방송 드라마에도 첫 출연했다. 1983년에는 ‘부러진 화살’로 유명한 정지영 감독의 데뷔작인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에서 언니 오수미와 나란히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극중 배역도 자매로 나온다.

윤영실은 화장품‧의류 광고에 단골 출연 모델, 배우, 드라마, 광고 등에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83년 6월에는 패션모델 등 6명과 함께 오늘날 패션모델 양성의 산실인 ‘(주)모델라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윤영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윤씨는 언니 오수미가 사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25평)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1986년 5월 윤영실의 연락이 두절됐다. 정확히 언제 인지는 알 수 없다.

오수미는 동생과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자 직접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집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얘가 집에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언니는 걱정하는 마음이 커졌다.

일단 동생이 집 안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오씨는 건물 경비실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열쇠기술자를 부른 다음 경비원을 대동하고 동생 집 현관문을 강제로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살림살이도 그대로 있었다. 평소 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누군가 침입했다면 살림살이가 어지럽혀 있고, 몸싸움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집 안은 너무도 깨끗했던 것이다.

최소한 윤영실이 집안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갔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또 현관문 열쇠가 안에서 잠겨있었고, 누군가 강제로 문을 딴 흔적도 없었다.

윤영실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당시 윤씨는 모델, 배우, 광고 등을 넘나들며 바쁜 나날을 보냈고, 동료 모델과 회사까지 설립해 후배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한참 잘 나가던 윤영실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스스로 잠적했을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한때 ‘자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사전 징후도 없었고, 유서로 추정할만한 것도 없었다.

언니 오수미는 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역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처럼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통신수사 등 과학수사기법이 발달되지 않아 단서를 찾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윤영실은 유명인인데다 큰 키와 서구적인 외모로 인해 어디를 가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런데 실종 이후 윤씨를 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영실의 친구, 모델 동료, 연예계 지인 등 누구도 윤영실의 마지막 행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윤영실이 국내에 살아있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이 신기에 가까웠다. 경찰이 출입국 기록을 조사해봤지만 해외로 출국한 사실도 없었다.

경찰도 윤영실 실종수사에 소극적이었다. 톱 모델이자 주목받던 배우가 사라졌는데도 수사에 적극성을 띄지 않았다. 언론에는 수사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거나 별도의 브리핑도 없었다. 유명 연예인이 실종됐는데도 경찰은 쉬쉬하며 진행됐던 것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이 실종됐다면 지금 같으면 연일 매스컴의 주요 기사로 다룰 것이 분명하다. 종편의 경우 해당 모델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서 패널들이 다각적인 분석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당시 언론은 침묵했다. 필자가 언론의 보도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윤영실 실종’으로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경향신문>의 기사 단 두 건이 검색됐다.

이마저도 사건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 86년 12월 ‘레이디경향’에 윤영실 실종과 관련한 기사가 나온다고 예고한 것이며, 또 하나는 실종 9개월에 접어든 윤영실이 서울 변두리에 숨어 살고 있다는 독자제보가 있었다는 짤막한 내용이다. 윤영실 실종을 직접적으로 다룬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는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서슬퍼런 5공화국 시절이었다.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은밀하게 시달했고, 이를 통해 정부는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여기에는 각종 사건이나 상황, 사태 등의 보도도 포함됐다. 윤영실 실종에 대해 정권 차원의 ‘보도지침’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결국 윤영실 실종은 미궁으로 빠지며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녀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확인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 연예계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유명 연예인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권력 희생양설’도 끊이지 않았다.

교통방송 김은정 아나운서

1991년 9월21일 교통방송(TBS) 김은정 아나운서(35)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 아나운서는 이날 오후 4시쯤 퇴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자신의 집으로 귀가했다.

그녀는 밤 9시에 집에서 나와 50여m쯤 떨어진 고모 집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고모에게는 “새벽부터 있을 추석 생방송 때문에 일찍 쉬어야 겠다”고 말했다.

그런 김 아나운서가 자신의 집에 돌아온 후에는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당일 시내 한 병원에 입원중인 친구의 병문안을 가기로 돼 있었다. 그녀는 평상복 차림이었고, 상의는 진한 쑥색 바탕에 꽃무늬 블라우스와 점퍼를 입었다. 하의는 쑥색 바지를 입었다.

핸드백 안에는 월급으로 받은 현금 100만 원(현재 가치 약 500만 원 상당)이 있었다. 김 아나운서는 친구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그 뒤 행방불명됐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날은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추석과 설날 명절이다. 교통방송은 이날 특별생방송을 편성해 고향 길 운전자들에게 교통정보 등을 제공한다.

TBS는 추석 당일인 22일 여느 해처럼 특별생방송을 편성했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될 생방송의 진행은 김은정 아나운서가 맡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생방송을 코앞에 두고 진행자인 김 아나운서가 출근하지 않았다. 그녀는 TBS에 재직한 후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낸 적이 없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담당자들이 이리저리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김 아나운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찰은 다각도로 수사를 펼쳤다. 김 아나운서가 잠적이나 은둔해 있을 가능성도 있어 전국의 수녀원, 기도원, 사찰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해외 도피 가능성에 따른 출국자 명단도 조사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또 납치나 인신매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낙도와 유흥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으나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뺑소니 차량이나 강도·피살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서울외곽 야산을 수색했으나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종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족들의 걱정과 고통도 그만큼 커졌다. 지금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실날같은 기대를 걸고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김은정 아나운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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