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심령·공포

사람 피 빨며 8일간 9명 살해한 ‘최초 뱀파이어’


지난 1725년 헝가리 키실로바의 농부인 페테르 폴로고요비치가 62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한다. 그의 아들은 시신을 지역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그런데 다음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죽었던 페테르가 살아 돌아와 아들에게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아들은 무서워 도망쳤는데, 그 다음날에도 나타나 계속해서 먹을 것을 찾았다. 페테르가 살아온 후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한결같이 피를 빨린 창백한 모습이었다. 페테르가 주민들에게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 방법으로 죽였던 것이다. 8일간 9명이 죽었다. 페테르가 아들에게 나타날 때마다 입에는 피가 묻어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주민들은 죽은 페테로가 살아 돌아와 사람들을 죽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결국 주민들은 페테로의 무덤을 파내 확인하기에 이른다. 놀랍게도 시신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고, 오히려 살이 더 쪘으며 머리카락, 수염,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입가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주민들은 페테로의 아들을 설득해 시신 화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페테로의 아들도 여기에 동의해 시신을 화장했는데, 이후 더 이상의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헝가리를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공국의 카를 6세(재위기간 1711년~1740년)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와 사람들을 죽였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듣고 진상파악을 위한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했다.

조사단은 수소문 끝에 페테르의 시신을 직접 확인한 사제가 적은 기록을 보게 된다. 조사단의 보고를 받은 카를 6세는 사건 당사자의 이름을 따 ‘페테르 플로고요비츠 사건’이라 명명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마귀나 악령을 뜻하는 ‘밴피르'(vanpir)라는 단어를 썼다. 그런데 1732년 이 사건을 연구한 프랑스 연구기록에서는 ‘밴피르’를 ‘뱀피르'(Vampyre)로 바꿔썼다. 같은해 영국의 한 신문에 실렸을 때는 다시 ‘뱀파이어’(Vampire)로 바뀌어 있었다.

이 사건이 바로 ‘뱀파이어’ 명칭을 탄생시킨 최초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존재를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이 사건이 실제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18세기 역사학자 마이클 랜프트는 “뱀파이어를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충격으로 공항상태에 빠져 순간적으로 환각을 경험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뱀파이어를 연구한 결과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발표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기온이 영하인 곳에서는 오랫동안 시신이 부패되지 않으며, 사람의 시신은 사망 직후 세균이 뿜어내는 기체로 인해 복부가 팽창하고 그때 몸 안의 피가 밖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시체가 살아서 돌아다니며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으로 착각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 사건이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에 관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세르비아 메드비지아에 살던 농부 나르놀트 파올레. 그는 1726년 건초 마차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뱀파이어가 됐다. 파올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과 가축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마을은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사건 또한 1731년 12월 공식 조사에 들어갔고 자세한 보고서를 남겼다. 물론 지금까지 뱀파이어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현재 뱀파이어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대중문화의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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