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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팔보’ 배우 우봉식 사망사건

1971년 충남 예산에서 4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고, 안양예고를 졸업했다.

특전사 21기 11여단 출신이다.

우봉식은 13세 때인 1983년 MBC 드라마 <3840 유격대>를 통해서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뿐만 아니라 연극과 영화 등을 넘나들며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드라마 <갈채>(MBC, 1983), <미망인>(KBS2, 1984년), <남자의 계절>(MBC, 1985년), <무풍지대> (KBS2, 1989년) 등에 출연했다.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는 1989년 극중 복길 엄마의 친정 동생 역으로 나왔다.

이밖에도 <우리들의 천국>(MBC, 1990년~1993년), <유심초>(SBS, 1991년), <며느리 삼국지> (KBS2, 1996년), <자반 고등어> (MBC, 1996년), <임꺽정>(SBS, 1996년) 등에 출연했다.

연극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에서 연기를 펼쳤다. 영화 <싸이렌>(2000), <플라스틱 트리>(2003), <6월의 일기>(2005),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등에서도 열연했다.

그는 대부분 이름뿐인 단역부터 이름조차 없는 파출소 순경 역까지 소화했다. 때문에 대중들은 그의 이름조차 생소하다.

그나마 우봉식이 대중에게 얼굴 도장을 찍은 것은 CF였다. 그는 2001년 청정원 ‘순창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청년으로 나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우봉식은 연기 활동 외에도 1990년에는 극단 ‘한겨레’ 대표를 역임했으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약 3년간 솔트픽쳐스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에서 호위무사 팔보 역을 맡은 이후 방송 활동이 뜸했다. 작품 활동도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수입이 일정치 않으면서 아내와도 결별했다.

우씨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월셋집에 살면서 생계가 어려워지자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증상이 심해지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고 점점 막다른 길에 몰렸다.

지인들에게는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2014년 3월9일 아침, 우봉식의 친구는 그와 며칠 째 연락이 닿지 않자 주인집에 연락해 “친구 집 문을 열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집 딸은 우봉식의 집 방문을 열고는 기겁했다. 그가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무명의 설움을 극복하지 못한 연기자 우봉식은 이렇게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향년 43세.

그가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모두 기록해 둘 정도로 배우로서 자긍심과 애정이 많았다.

그의 부음 소식이 전해지자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우봉식 또한 다른 무명 배우들처럼 죽은 뒤에야 유명해진 배우가 됐다.

배우 김기천은 자신의 트위터에 “40대 배우가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 외로워 배우를 하는데 외로움 때문에 죽었구나. 부디 죽어서는 외롭게 살지 마라”는 글을 올려 우봉식의 죽음을 애도했다.

고인의 빈소는 유족의 뜻에 따라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발인은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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