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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성폭력 괴물 ‘중곡동 주부 살인범’


서진환은 1969년 전남 구례에서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일러 수리와 노동일로 전전하며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는 풀빵 장사를 하며 생계를 잇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서씨의 학창시절은 사실상 방치된 삶이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정서가 불안하고, 차림과 행동이 불결하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곧잘 싫증을 낸다”고 적혀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성(性)에 집착했다. 초등학교 때 옆집 여자애를 집으로 데려와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동네 근처의 2살 연상 여성과 처음 성관계를 가졌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86년에는 남의 집에서 돈을 훔친 혐의로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심심하면 가출해 거리를 떠돌며 비행청소년으로 지냈다.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규칙을 지키지 못한다”고 기록돼 있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한 서씨는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을 다녔다. 그는 월급 대부분을 사창가를 출입하는데 썼다. 17살 나이에 매월 10여 차례 사창가를 출입했을 정도다.

방위병 복무 중이던 1990년 선배의 아내인 20대 여성을 강간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때부터 출소하면 또 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1997년 8월에는 고향 마을 인근에서 30대 여성 성폭행했다. 이것으로 징역5년을 복역했다.

2004년 4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20대 여성을 또 다시 성폭행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 11월 출소할 당시 5차례에 걸쳐 총 18년의 징역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범죄욕구는 억제되지 않았다. 출소 7개월 만인 2012년 8월7일 중랑구 면목동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 했다. 그가 여성과 정상 연애를 한 것은 32살 때 10살 연상의 이혼녀와 1년5개월 정도 사귄 것이 전부다. 서씨의 발에는 반복된 성범죄로 인해 전자발찌가 채워졌다.

서진환의 머릿속에는 온통 성적인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여성을 성폭행해 안 잡히면 좋고, 잡혀도 교도소 들어가 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2012년 8월20일 서진환은 여느 때처럼 새벽까지 밤새워 음란 동영상을 즐겼다. 야동을 보고도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그는 아침 일찍 성폭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피해자를 결박할 공사용 테이프와 얼굴을 가릴 청색 마스크, 과도까지 챙겼다. 서씨는 평소 스트레스성 발기부전 증상이 있었다. 범행 시 발기가 잘 되도록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 두 알까지 복용했다.

이제 범행 대상을 물색해 성욕을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자신의 거주지인 서울 광진구 중곡동 주변을 배회했다. 오전 9시20분쯤, 두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주기 위해 집을 나서는 주부 이아무개씨(37)를 발견했다.

이씨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직감한 서씨. 그는 몰래 이씨의 집에 들어가 안방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과도가 들려있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이씨는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을 들어가려는 순간 서진환이 과도를 내밀며 “꼼짝마”라며 위협했다.

서씨는 주부 이씨를 바닥에 눕히고 배 위로 올라가 주먹으로 얼굴, 옆구리, 배 등에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씨는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씨가 저항하며 빠져나가려고 하자 서씨는 가슴을 입으로 힘껏 물어뜯었다.


서진환은 이런 상태에서도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때 아래층에 살던 주민이 ‘쿵쾅’하는 소리와 신음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두드리자 이씨는 사력을 다해 현관으로 도망쳤다. 서진환은 이씨의 등 뒤에서 흉기로 급소 4군데를 찔렀다. 주민이 근처 치안센터에 신고하면서 서진환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씨는 근처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곧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피해자 이씨의 모습은 참혹했다. 얼굴 대부분이 피멍으로 검게 부어올라 유족조차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벽과 바닥에 머리를 얼마나 찧었던지 두개골이 깨지고 한쪽 동공이 함몰된 상태였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서진환은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양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전자발찌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 등 마치 전자발찌가 자신의 성범죄 원인제공을 한다는 것처럼 말했다.

이씨를 무차별 폭행 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는 수많은 여자를 강간해왔지만 그렇게 심하게 반항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면서 모든 것을 피해자 탓으로 돌렸다. 여경 프로파일러에게는 “네가 사회에서 보는 마지막 여자다. 교도소 가면 네 생각 할 테니 편지 써 달라”며 농락하기도 했다.

경찰에 검거됐을 당시의 서진환. 왼발에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다.
서진환에 대해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부족하게나마 반성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유족은 지나치게 관대한 선고라고 반발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과연 도대체 몇 명을 죽여야 되고, 얼마만큼의 큰 살인을 저지르고, 얼마만큼 잔인하게 죽여야 살인인거죠?”라며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재판부를 질타했다. 서진환의 ‘살인’은 충분히 막을 수가 있었다. 서진환은 전과 11범이었고, 그중 세 차례가 성범죄였다.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출소 후 3년 이내에 같은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중 처벌된다는 법에 따라 그는 최소 10년 이상을 선고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이 특례법이 아닌 일반형법을 적용해 7년형을 받고 3년 일찍 출소했다. 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서씨는 살인을 저지르기 2주 전쯤 중랑구 면목동에서 30대 주부를 성폭행했다. 경찰은 이때 서씨의 DNA를 확보했지만 일치하는 정보가 없어 피의자 특정에 실패했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2004년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서진환의 DNA를 채취해 보관하고 있었다. 만약 검찰과 경찰(국과수)이 DNA 정보를 공유하고 서씨를 조기 검거해서 2차 범행을 막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두 기관의 공조는 없었다.

또한 서씨는 2011년 11월 출소할 때부터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서씨의 두 차례의 범행이 발생한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이 때문에 전자발찌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다.

아내와 엄마를 잃은 유족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남편은 죽은 아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수사기관의 과실을 근거로 국가에 책임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실수는 인정하나 고의성은 없었으며 사건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사의 관대함이 괴물로 키웠다

서진환은 상습 성범죄자다. 서씨의 범죄에 대해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 적게는 2년, 길게는 7년을 선고했다. 만기 출소해 사회로 돌아오면 범행 대상을 물색해 무차별 폭행하거나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했다. 2004년부터는 미리 준비한 노끈으로 피해자를 결박한 후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이렇듯 서씨의 범행은 날로 진화를 거듭하는데 형량은 2년~7년에 불과했다. 매번 판결문에는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으므로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했다. 법원이 서씨를 괴물로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도 법원의 행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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