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된 항아리에서 나온 멸종 호박씨의 진실
수년 전부터 국내외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뜨겁게 달군 미스터리한 기사가 있었다. 2008년 미국 위스콘신주의 한 고고학 발굴 현장, 800년 된 토기 항아리 속에서 멸종된 고대 호박 씨앗이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이를 캐나다의 호기심 많은 대학생들이 끈질긴 노력 끝에 발아시켜 ‘오코소민’이라는 거대 호박을 부활시켰다는 극적인 스토리였다.
당시 이 뉴스는 “시간을 뛰어넘은 기적”, “현대 과학이 깨운 고대의 맛”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감동적인 드라마는 절반의 사실과 절반의 왜곡이 뒤섞인 ‘도시 전설(가짜 뉴스)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인터넷이 만든 짜릿한 거짓말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800년 된 토기에서 씨앗을 발견했다’는 부분이다. 이 소문이 확산되자 실제 이 호박을 연구하고 재배했던 캐나다 위니펙 캠프 대학(CMU)의 연구진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켄턴 로브 교수는 연구진의 공식 발표를 통해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흙 항아리나 점토 공이 발견된 적도 없으며, 그 안에서 씨앗이 나온 적도 없다. 어디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졌는지 우리도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 호박은 단 한 번도 지구상에서 멸종된 적이 없다. 따라서 ‘멸종된 종자를 현대 대학생들이 기술로 부활시켰다’는 것 역시 완벽한 허구다.
어떻게 이런 구체적인 거짓말이 탄생했을까. 발단은 이 호박을 세상에 처음 알린 위스콘신 대학의 데이비드 원 명예교수의 과거 인터뷰가 와전된 데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 켄터키주의 깊은 동굴 속에서 발견된 수천 년 된 고대 호박 씨앗을 얻어 실제로 심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동굴 속 호박은 작고 맛이 없어 상품성이 없었다.
이후 원 교수가 원주민에게 받아 성공시킨 ‘크고 맛있는 호박’ 이야기와 과거의 ‘동굴 속 고대 씨앗 발견’ 이야기가 종자 보존 단체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묘하게 뒤섞였고, 누군가에 의해 ‘800년 전 토기 항아리’라는 자극적인 설정이 덧붙여지며 전 세계를 속인 가짜 뉴스가 완성된 것이다.

‘토기 속 우연한 발견’이라는 판타지를 걷어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인간의 위대한 집념과 노력이 남는다. 이 호박이 수백 년의 세월을 버티고 오늘날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땅속에 묻혀 있어서가 아니라, 북미 원주민들이 손에서 손으로 씨앗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 호박의 진짜 고향은 북미 원주민 부족인 ‘마이애미 부족'(Miami Nation)의 정원이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다른 호박 품종과 섞여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도록, 다른 작물과 엄격하게 격리된 환경에서 이 호박을 재배했다. 가뭄이 들거나 부족이 이동해야 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매년 가장 크고 튼튼한 호박에서 씨앗을 채취해 보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백인들의 이주 정책과 근대화 속에서 부족의 문화가 말살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원주민들은 이 씨앗만큼은 목숨처럼 지켜냈다. 그러다 1995년, 마이애미 부족의 원주민 어르신들이 원주민 역사를 연구하던 데이비드 원 교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이 소중한 씨앗을 선물했다.
이후 원 교수가 인근 정원사들과 종자 보존 단체(Seed Savers Exchange)에 씨앗을 나누었고, 이것이 캐나다의 대학생들에게까지 전달되어 대량 재배에 성공하게 된 것이 진짜 전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와 경이로운 맛은 ‘진짜’
스토리는 와전되었을지언정, 기사에 묘사된 호박 자체의 놀라운 특징들은 모두 가감 없는 사실이다.
이 호박의 정확한 품종 명칭은 ‘오코소민’이 아니라 ‘게테 오코소민(Gete-Okosomin)’이다. 북미 원주민 언어(아니시나베어)로 “오래된 멋진 호박(Big Old Squash)” 혹은 “정말 멋진 고대 호박”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크기와 맛 모두 현대 품종을 압도한다.
단순히 관상용 거대 작물이 아니라 맛과 질감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조리법도 다양하다. 서구권에서는 이 호박을 이용해 파이를 굽거나 구이, 수프를 만들며, 현대의 밍밍한 호박 맛에 실망한 셰프들과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천상의 맛’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현재 ‘게테 오코소민’은 북미 지역의 유기농 농가와 종자 보존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절찬리에 판매 및 재배되고 있다. 단순히 “신기한 고대 호박”을 넘어, 종자 다양성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상징적인 작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농작물은 생산성과 유통의 편리함을 위해 유전적으로 단일화되어 있다. 이는 치명적인 병충해가 돌 경우 한 번에 멸종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반면 수백 년 전 원주민들의 정원에서 거친 환경을 버텨낸 ‘게테 오코소민’ 같은 고대 종자들은 현대 작물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기후 적응력과 병충해 저항력을 품고 있다. 과학계와 농업계가 이 호박에 대한 연구를 지금도 지속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800년 전 토기에서 깨어난 기적”이라는 인터넷의 거짓말은 달콤했다. 하지만 그 거짓말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진실은, 척박한 역사 속에서도 조상들의 위대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매년 씨앗을 심고 거두었던 원주민들의 끈질긴 집념이었다.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게테 오코소민’은, 인간의 돌봄과 노력이 있다면 그 어떤 귀중한 가치도 멸종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