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포로체험 훈련 질식 사망사건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는 유사시 육지, 공중, 바다의 다양한 루트로 적진에 침투해 게릴라전, 교란작전, 정찰, 정보수집,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구출 등 각종 특수작전을 수행한다.
특전사령부의 부대 단위는 군단이며 특전사령관 역시 보직분류상 군단장으로 분류된다.
현재 예하 부대로 6개의 공수 특전 여단과 1개의 국제평화지원단이 있고 이들 예하 부대들의 부대장은 준장이 맡는다. 각 여단은 4개의 대대와 3개의 직할대(시설대, 통신대, 본부대)로 구성돼 있다.
충북 증평에는 1973년 7월에 창설된 제13공수특전여단(흑표 부대)이 주둔하고 있다. 2017년 12월에는 북한 지휘부를 공격하는 참수부대로 개편됐고, 정식 명칭은 ‘제13특수임무여단’이다.
특임여단은 2011년 5월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넵튠 스피어 작전)을 수행했던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6팀(일명 데브그루)을 모델로 했다.
2013년 10월 전인범 중장이 특전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전 사령관은 부임이후 특전사 훈련을 대폭 강화했다. 그 일환으로 포로체험 훈련을 도입했다.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됐다는 가정 아래 머리에 주머니를 씌우고 손발을 묶은 상태에서 독방에 가두는 특전사 고문 훈련이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의 특수전 부대에서 주로 이뤄지는 이 훈련은 전쟁 중 적군에 포로로 붙잡혔을 경우 고문 등에 대비한 것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고문 저항 훈련’이 있었으나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중단됐다. 그러다 전인범 사령관이 10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2014년 4월3일 특전사에서 열린 ‘전투영화제’에서 전 사령관은 여단장들과 영국 특수부대를 다룬 영화 <브라보 투 제로>를 관람했다.
이후 전 사령관은 간부들과 차를 마시면서 영화에 나온 ‘특성화 훈련’을 언급하며 “우리는 포로로 잡혔을 때 살아오는 훈련은 시행하지 않고 있지. 우리도 하자”고 제안했다.
특전사령부는 닷새 뒤인 4월9일 예하 여단에 생존기술 등 특성화 훈련을 지시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해 9월2일 오후 9시부터 제13공수특전여단 예하부대에서 포로체험 훈련이 실시됐다. 당시 특전사 요원들은 부사관과 장교 등 24명이 훈련에 참여했다. 이중 10명은 포로체험 훈련을 받았고, 또 다른 10명은 지원을 맡았으며, 나머지는 교관이었다.
이들은 부대 내 훈련장인 포로결박실에서 무릎을 꿇고 팔을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에 두건을 쓰고 끈으로 조였다. 이런 상태로 1시간 이상 버티는 형식으로 훈련이 진행됐다.
8명은 독방에 2명은 2인 1실에 감금됐다. 통제관 4명은 복도와 통제실에서 훈련을 지휘했다.
오후 10시40분쯤 대원들이 갇혀 있던 독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통제관들이 독방에 들어갔을 때는 상황이 심각했다. 이중 이유성 하사(23)와 조용준 하사(21), 전아무개 하사(23)가 고통을 호소하다 쓰러져 응급치료 후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러나 이 하사와 조 하사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각각 오후 11시15분과 11시24분에 사망했다. 전 하사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을 입었다.
육군은 정확한 사망원인과 훈련 통제과정의 문제점 등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감찰실장을 중심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 훈련 매뉴얼도 없이 주먹구구식 운영이 화를 불렀던 것이다.
먼저 대원의 얼굴을 가렸던 검은 두건은 방수처리가 돼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었다. 이것 조차도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인근 문방구에서 2000원짜리 신발주머니를 훈련용으로 구입해 사용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포로훈련을 위해 독방 등이 산재해 있는데도 훈련 장소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로인해 훈련 통제관이 통제실에서 정확한 훈련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CCTV가 있었다면 대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교관들도 감독에 소홀했다. 당시 책임 교관이었던 유부남인 김아무개 원사는 내연녀와 통화하는데 정신이 팔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 원사는 오후 10시부터 30분간 상황실 안팎을 오가며 내연녀와 통화했던 사실이 군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때 독방에 갇혀 있던 대원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대원들의 풀어달라는 요구를 받은 교관들이 이를 보고하려고 했지만, 김 원사의 통화가 길어져 보고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로 끝났다.
군 당국은 훈련을 지도했던 현장 교관 4명을 입건한 데 이어, 훈련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관리·감독한 김아무개 중령(46)과 김아무개 소령(43)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현장 교관들은 1심인 보통군사법원에서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인 고등군사법원에서 군 검찰의 항소가 기각돼 벌금형이 확정됐다.

두 영관급 장교는 보통군사법원에서 각각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고등군사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김 중령 등이 업무상 주의 의무를 일부 위반했더라도 피해자들의 사망 및 부상과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김 중령은 여단 작전참모로 포로체험 훈련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부서의 장이었으며, 김 소령도 같은 여단 작전처 교육훈련계획 장교로 실무 책임자였다. 이로써 이번 사고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게 된 상황이다.
더욱이 최고 책임자인 전인범 특전사령관은 1군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당시 13공수여단장이던 정재학 준장(학군 24기)도 후에 소장으로 진급했다. 순직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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