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해 공군참모총장 헬기 추락 사망사건
현역 군 참모총장이 순직한 최초의 사건이다.
조근해 전 공군참모총장은 1938년 11월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1958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공사 9기의 선두주자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소위로 임관 후 공군 내 요직인 제15전투비행단장, 한미연합참모부장, 공군본부 감찰감(현 감찰실장), 작전참모부장, 교육사령관, 작전사령관, 국방정보본부장 등을 지냈다.
주로 작전과 정보 분야를 두루 거친 작전정보통으로 꼽힌다.
상훈으로는 보국훈장 삼일장(1979), 보국훈장 천수장(1986), 보국훈장 국선장(1991), 보국훈장 통일장(1993) 등을 수여받았다.
당시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F5기다. 조 총장은 동기생 중 제일 먼저 F5기를 타는 등 그의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생활 중 거의 전 기간을 F5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또 3천여 시간 비행경력을 보유했으며 장군이 된 후 전투비행단장을 하면서도 수시로 전투기 조종간을 잡은 빨간 마후라의 전형이었다. 한때 ‘탑건’의 영예도 차지했고, ‘날쌘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성품도 활발해 많은 후배들이 따랐다.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3년 5월 이양호 총장이 합참의장으로 영전되자 대장으로 진급한 뒤 제22대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업무처리가 정확하고 공사 구분이 분명하면서도 부하들과 대화에서는 계급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부하장교들의 직언을 잘 받아들여 공군뿐만 아니라 타군 장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그는 또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외동딸을 독일에 유학 보낸 뒤 분당신도시 사저에 생모(87), 양모(79), 장모(75) 등 3명의 노모를 모셨다.
양모는 조 총장의 숙모로 자식이 없어 노후에 혼자 쓸쓸히 보내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양어머니로 삼아 극진히 모셔왔다.서울 동작구 대방동 총장 공관에 거주해온 조 총장은 1992년 이 아파트를 분양받아 세 어머니가 함께 거주하도록 했으며 “군 제대 후 세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며 60평의 대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이같은 조 총장의 효성 탓에 이들 세 어머니는 사돈 및 동서지간에도 불구하고 친형제 이상으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1994년 3월3일, 조 총장에게는 운명의 날이다. 이날 오후 3시에 청주 공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는 공사 42기 졸업식 및 임관식 예행연습이 예정돼 있었다.
조 총장은 부인을 동반해 오후 2시25분 용산 미 8군 헬기장에서 공군 15전투비행단 소속 UH60(블랙 호크) 헬기에 탑승했다. 10분 뒤 조 총장이 탄 헬기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근삼리 백암종합고등학교 앞 야산 상공에서 갑자기 공중 폭발했고, 그대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조 총장(57)을 포함한 부인 조인화씨(48), 조종사 강성윤 소령(35‧공사31기), 부조종사 유영재 대위(28‧공사38기), 수행부관 이상훈 대위(31‧공사35기), 정비사 전해술 원사(35) 등 6명 전원이 사망했다.
조 총장이 탄 헬기는 오후 2시50분 공사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며 예행연습이 끝난 뒤에는 졸업 축하연이 계획돼 있어 부인과 함께 가던 길이었다.
국군 창군이래 현역 고위 장성이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하기는 1984년 7월12일 김홍한 육군 제2군사령관(대장), 1992년 2월14일 경북 선산군 상공에서 추락 사망한 이현부 육군 제7군단장(중장)에 이어 세번째며, 현직 참모총장이 재직 중 사망하기는 처음이다.
사고 직후 공군은 최동환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 정확한 사고원인 조사에 나섰다. 헬기 추락 원인은 최초 기체결함이 제기되었으나, 조사 결과는 달랐다.
공군사고조사위원회는 4월2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고헬기가 추락지점 4km 전방에서 급강하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도중 주 회전 날개가 뒷부분을 때리면서 뒤꼬리 날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추락했다”고 밝혔다.
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 정성규 소장(공군 감찰관)은 “이번 사고는 조종사가 시계비행을 하던 도중 날씨가 나빠지자 계기비행으로 전환해 구름 속을 날다가 일어났다”며 “사고가 갑작스런 기상악화, 항공기 속도감지 계통의 결빙 경고장치 자공 미비, 결빙 방지장치의 작동상태에 대한 조종사의 점검 소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고 말했다.

순직자들은 영결식을 거친 뒤 조 총장 부부는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합장되고, 나머지 탑승 사망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외동딸 조은주씨(22) 등 유족들은 헬리콥터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기체 결험보다는 계기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조종사의 책임이 더 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조근해 대장 묘비문
여기 잠들어 있는 우리시대의 큰 별 조근해 장군은 공군 장교가 되어 전투기를 조종한 삼십여년 동안 지극히 높은 뜻을 하늘에서 펴고, 후배 장병들의 가슴에다 심었다.
우리나라의 새 역사를 여는 문민시대에 들어서자, 마침내 공군참모총장의 중책을 맡아 조국통일이 영광된 미래를 위한 크나 큰 과업 선도하는 삶의 절정에서 하루 아침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니 온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고 슬퍼하며 이 돌에다 새겨 후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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