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심령·공포

영국 레인험 홀에 출몰하는 갈색 여인 유령

영국 잉글랜드 동부 노퍽에는 1637년에 지은 ‘레인험 홀’이라는 유명 저택이 있다.

귀족 가문인 타운센트 가의 소유로 한동안 상류층 사교의 장으로 사용됐다. 찰스 타운센드(1674–1738)는 첫 부인과 사별한 후 도로시 월풀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한다.

도로시는 영국 최초로 수상이 된 로버트 월풀(1684-1745)의 여동생이다. 찰스는 로버트 월풀과 함께 당시 국왕 조지 1세(1660-1727)의 총애를 받았다.

찰스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런 찰스에게 매력을 잃은 도로시는 또 다른 귀족인 와튼 백작과 가깝게 지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찰스는 도로시를 레인험 홀 그녀의 방에 감금한다.

1726년 3월 도로시는 40세의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시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 레인험 홀에 갈색 드레스를 입은 유령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1835년 크리스마스 날 레인험 홀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손님 중에는 로프터스 대령도 포함됐다. 그는 파티가 끝나고 침실에서 잠을 자려고 불을 껐다가 하얀 물체를 발견한다. 자세히 보니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로프터스 대령이 가까이 다가가자 유령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아침이 되자 자신의 본 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하지만 대부분 “헛것을 본 것”이라며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로프터스 대령은 다음날 밤 그는 또 다시 유령을 목격한다. 그는 유령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했다. 옷은 갈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눈이 없는 대신 시꺼멓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로프터스 대령이 다시 유령 목격담을 전하자 겁에 질린 레인험 홀의 몇몇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했다.

1836년 영국의 해군 장교이자 해양소설가인 프레드릭 매리어트(1792-1848) 대위가 레인험 홀에서 며칠 밤을 묶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가 머문 객실은 생전 도로시 월풀이 쓰던 방이었다. 그도 유령 이야기를 들은 터라 베게 아래에 실탄이 장전된 리볼버 권총을 두고 잠을 잤다. 처음 이틀 동안은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셋째날 일찍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타운센트가 남작의 조카인 두 명의 청년이었다. 이들은 “새로 구입한 총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매리어트는 흔쾌히 수락하고 옷을 입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길고 어두웠다. 이들은 복도를 걸어가다 반대쪽에서 불빛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말로만 듣던 ‘갈색 여인의 유령’이었다. 매리어트는 순간적으로 리볼버를 꺼내 유령에게 겨눈 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유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더 다가왔다. 그때 매리어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러나 총알은 유령의 몸을 통과해 반대쪽 벽에 박혔다. 유령은 한동안 일행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몇 초 후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매리어트 대위는 방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유령의 모습이 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유령을 함께 목격한 청년들과 함께 자신들이 본 내용을 지역 신문사에 제보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레인엄 홀의 유령은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 유령은 ‘레인험 홀의 갈색 여인’(Brown Lady of Raynham Hall)으로 불렸다.

1936년 9월19일 당시 영국의 유명한 잡지였던 ‘컨트리 라이프’(Country Life)는 갈색 유령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심층 취재에 들어간다. 우선 유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하고 사진 기자 두 명이 레인험 홀에 투숙했다.

이들은 이날 밤 레인험 홀의 곳곳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령이 자주 출몰하는 홀의 중앙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하얀 물체를 발견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여인의 모습이었고 이번에도 갈색 옷차림이었다.

기자들은 다음날 곧바로 필름을 현상했고, 희미하게 유령의 모습이 찍힌 것을 확인했다.

이들은 화학자 벤자민 론스에게 가지고 가서 사진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킨 다음 잡지에 실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찍힌 심령사진의 대표 사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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