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최악의 살인조직 ‘지존파’ 연쇄 살인사건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에 살던 김기환(26)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해 초등학교 내내 우등상을 받았으며 2·3학년 때는 반장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1학년 때는 148명 중 5등이었다. 2학년 재학 중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형마저 병에 걸리자 가출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돌며 막노동을 했다.

처음에는 돈을 버는 대로 어머니께 보내는 등 성실하게 살았다. 학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 틈나는 대로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김기환은 어느 순간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기 시작했다.

죽으라고 일해도 더 이상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절망과 좌절에 빠졌다. 그러다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도 포기한 채 고향인 영광으로 돌아왔다. 하는 일 없이 도박에 빠져 지냈다.

급기야 자신의 처지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가진 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을 품게 된다. 1992년 말, 김기환은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살해하는 범죄조직 결성계획을 세운다.

탄광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조아무개씨와 도박장에서 알게 된 다른 세 명을 포섭했다. 하지만 범죄계획에 ‘살인’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안 이들이 탈퇴하면서 첫 번째 조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해체됐다.


1차 계획이 실패한 후 김기환은 도박장을 전전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범죄 조직 결성’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첫 번째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더 못 배우고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훨씬 강한 자들을 포섭하려 했고, 실패 요인을 없애기 위해 대화술 관련 서적까지 탐독했다.

그리고 1993년 3월, 고향 후배인 강동은(21)을 만나 자신의 뜻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강동은이 적극적으로 합류의사를 비추자 그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23), 후배 송봉우(18)도 동의해 세 사람은 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김기환을 제외한 세 명은 전주로 이동해 함께 생활하며 조직 결성과 범죄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였던 백병옥(20)이 천안에서 막노동을 하다 추가로 합류한다. 문상록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강문섭을 강동은에게 소개해 포섭했다.

김기환과 친분이 있던 이주현은 평소 “은행 강도가 되고 싶다”던 김현양(22)을 소개해 조직에 합류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7명을 주축으로 같은 해 4월 지존파가 결성된다. 두목은 김기환이 맡았다. 조직원들은 김기환을 ‘두목’ 대신 ‘왕’이라는 뜻의 ‘지존’으로 호칭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김기환은 조직 기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들의 행동강령을 보면 조직의 결성 목적과 내부 기강이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존파는 ▲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신자는 죽인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었다.

김기환은 평소 조직원들에게 “배신한 자는 지옥까지 쫓아가 죽이겠다”며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자에게 용서란 없으며 조직에 합류한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지존파는 범죄 도구와 아지트를 마련하기 위해 5월부터 대전에 있는 ‘둔산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7월18일 조직원 중 송봉우, 강동은, 백병옥은 살인예행연습을 한다며 충남 논산(현 계룡시)의 두계역(현 계룡역) 부근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오후 11시쯤 퇴근 후 홀로 걸어가던 은행원 최미자씨(23)가 지나가자 송봉우가 그를 위협해 인근 다리 밑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이어 강씨와 백씨도 최씨를 윤간했다. 계획에 없던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고민하던 강동은은 숙소에 있던 두목 김기환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김기환은 포터를 몰고 김현양, 강문섭과 함께 범행 현장으로 갔고, 최씨를 차에 싣고 숙소에서 삽을 챙긴 뒤 논산의 한 야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도착해 최씨를 강간한 김기환은 김현양에게도 성폭행하도록 지시한 뒤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준다”며 최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조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곡괭이 등으로 구덩이를 파고 최씨를 암매장했다. 그렇게 이들은 ‘살인 연습’을 했고 최미자씨는 첫 피해자가 됐다.

의기양양하게 실전 연습까지 했던 지존파. 그러나 이들은 막상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씨를 납치 강간하는데 앞장섰던 송봉우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으로 괴로워했다. “귀신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고 두려워하며 조직 가담에 회의를 가진다.

결국 송씨는 8월, 2천만 원이 입금돼 있던 조직의 예금통장에서 현금 300만원을 몰래 빼내 도주했다.

김기환은 송봉우의 누나로부터 동생의 거주지를 알아낸 후 “조직에 다시 합류하면 용서해준다”고 설득한다. 마지못해 다시 조직에 들어오기로 한 송봉우. 두목 김기환은 “개를 잡아 단합대회를 한다”며 그를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인근 야산으로 유인한다.

하지만 김기환과 조직원들은 태도를 바꿔 ‘배신자’ 취급을 했다. 이들은 단검으로 송봉우의 온 몸을 찌르며 한동안 고문한 뒤 가져간 곡괭이로 머리와 등을 내리쳐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의 시체는 살해현장 근처에 암매장했다.

1994년 5월 김기환은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의 어머니가 살던 초가집을 허물고 살인 아지트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대전에서 막노동을 해 모은 돈으로 자금도 확보했다. 김씨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과 이웃에게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새로 짓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노인이 아들을 잘 둬서 호강하게 됐다”고 부러워했다.

아지트 완공을 얼마 앞두고 지존파는 뜻하지 않는 상황에 맞닥트린다. 김현양의 생일날인 6월17일 지존파 일당은 술을 마시며 파티를 벌였다. 밤중에 돌연 “아는 선배의 집에 보일러 수리를 하러 가겠다”며 일어난 김기환은 선배의 집에서 자고 있던 선배의 중학교 1학년 조카를 강간해 구속된다.

이 일로 김씨는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김기환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해 조직을 이끌게 했다. 두목 김씨의 위상은 교도소 수감 중에도 ‘법’이나 다름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살인 공장’을 완공한 지존파. 지하에는 3천만 원을 들여 사재 감옥과 시체 소각장 등을 설치했다. 이들은 태연히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본격적인 범행에 들어가기 전 지존파는 지리산에 들어가 지옥훈련을 받기로 한다. 일주일간 물 한 병과 칼 한 자루로 버티는 담력 훈련까지 했다.


지존파는 범행에 앞서 김현양의 중학교 후배이자 무기 브로커인 이주현에게 다이너마이트, 공기총, 군용 대검 등을 구입해 범행 도구들을 완비한다. 또 범행 대상 물색을 위해 전 현대백화점 신용판매부 직원(여)에게 백화점 고액 거래자 150명의 명단을 입수한다.

준비가 다 됐다고 판단한 강동은은 김기환을 면회해 범행에 착수할 것을 허락받는다. 조직원들은 평소 김기환이 말했던 대로 벤츠나 그랜저 등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1994년 9월5일 낮 12시쯤, 아지트를 떠나 서울로 출발한 뒤, 당일 밤 서울 워커힐 호텔 부근에서 1박을 하고 7일에 범행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바로 경기 양평군 양수리 국도로 장소를 옮겨 차를 주차한 뒤 도로 밑에서 범행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했다.

8일 새벽 3시쯤 악사 이종원씨(남‧36)가 운전하는 그랜저승용차가 나타나자 지존파는 자신들의 르망승용차와 포터화물차로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조수석에는 이씨와 같은 술집에서 일아는 종업원 이아무개양(27)이 타고 있었다.

지존파는 차문을 열고 이들에게 가스총을 난사해 실신시킨 뒤 테이프와 끈으로 손과 발을 결박한 뒤 고속도로와 국도 등을 이용해 영광 아지트로 납치했다.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을 지하 감옥에 감금했다. 날이 밝자 지하실에 내려와 이씨에게 돈을 요구했으나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먼저 조직원들이 돌아가며 여성인 이양을 성폭행했다.

그런 다음 악사 이씨의 입에 강제로 소주를 들이 부어 취하게 했다. 그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자 이씨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공포에 질린 이양에게 거들도록 지시했다. 지존파는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양마저 살해하려고 했으나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애원하자 다시 지하 감옥에 가뒀다. 지존파는 살해한 이종원씨를 음주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커다란 골프백에 넣은 다음 그랜저에 싣고 전북 장수군 반암면 교동리까지 이동했다.

이들은 트렁크에 있던 이씨의 시신을 꺼내 운전석에 앉히고는 차를 계곡 아래로 굴려버렸다. 도로에는 스키드 마크까지 남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지존파의 계획대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범행을 마친 후 아지트로 복귀한 조직원들은 이양을 또 한 번 집단 윤간한다.


지존파는 다시 범행 대상을 물색하러 다니다 9월13일 오후 5시쯤 경기 성남시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 주차된 그랜저 승용차를 발견한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온 경남 울산 온산공단의 삼정기계사장 소윤오씨(42)와 부인 박미자씨(35)부부가 타고 온 차였다. 지존파는 성묘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 소씨 부부에게 가스총을 쏴서 실신시켰다.

이들은 소씨 부부를 포터화물차의 짐칸에 실어 납치한 후 영광의 아지트로 끌고 가 종전 수법대로 지하실 철창 안에 감금했다. 14일 새벽, 소씨 부부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몸값으로 1억 원을 요구한다.

소씨는 회사에 전화해 직원에게 현금 8천만 원을 갖고 오후 10시30분까지 광주 광산터미널로 나오라고 시켰다. 지존파는 소씨를 이곳으로 끌고 가 돈을 받도록 했다. 이때 지존파 일당은 주변 50m쯤 떨어진 곳에 승용차를 대기시켜 놓은 채 감시하고 있었다.

소씨는 아지트에 인질로 납치돼 있는 부인의 안전을 우려해 지존파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했다.

지존파는 소씨를 끌고 다시 아지트로 돌아온 뒤 “비밀을 위해 할 수 없이 죽어줘야겠다”며 부부를 철창 밖으로 끌어냈다. 강동은은 “고통없이 죽여주겠다”며 소씨에게 강제로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악사 이씨의 동행녀인 이양을 불러내 공기총을 손에 쥐어주며 직접 쏘도록 명령했다.

이양이 울부짖으며 거부하자 강동은은 “너도 죽고 싶으냐”고 협박했다.

겁에 질린 이양은 엉겁결에 총을 쏘아 소씨를 숨지게 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소씨의 아내 박씨는 거의 실신상태가 됐다. 일당들은 이런 박씨를 칼로 난자했으나 숨이 끊어지지 않자 다시 도끼로 내리쳐 살해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지존파는 숨진 소씨 부부의 시신을 칼과 도끼로 훼손했다. 이 과정에서 김현양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박씨 사체의 일부를 먹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일당은 소씨 부부의 사체를 지하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소각장에 넣고 태워버렸다. 시체가 타는 동안에는 마당에 나가 돼지고기를 구워 냄새와 연기를 위장했다.

이들은 이 돼지고기를 마을주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9월15일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실수로 폭발을 일으켜 손과 발 등에 상처를 입었다. 김씨는 영광군 영광종합병원으로 치료를 하러 가면서 악사 이씨와 함께 있었던 이양과 동행했다. 김현양은 이양에게 연정을 품어왔다.

그는 자신이 치료를 받는 동안 휴대전화와 치료비에 쓰기 위해 가져간 돈 50만원을 이양에게 맡겼다. 이 틈을 타 이양은 영광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울로 택시를 바꿔 타며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 끝에 16일 새벽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신고했다.

비상을 건 경찰은 이양이 가져온 휴대전화 소유자를 추적, 17일 형사대를 전북 장수로 급파했으나 소유자인 이종원씨가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됐음을 확인했다. 같은 날 부두목 강동은은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애인이자 영광의 주점 종업원 이경숙(23)을 합류시켰다.

강씨는 이씨가 주점 사장에게 진 빚 1600만원을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그사이 경찰은 이양의 도움을 받아 9월19일 범인들의 아지트인 영광에 도착, 차례로 지존파 일당을 일망타진한 뒤 세상에 알렸다. 이날은 추석 마지막 날이었다.

김현양은 검거 당시 서울의 부유층 청소년들인 오렌지족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드러내며 “돈 많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 압구정동 야타족 등을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아지트에서는 대량의 무기들이 나왔다.

소씨를 살해하는데 사용된 수렵용 공기총에는 정밀조준을 위한 망원렌즈까지 부착돼 있었다. 이와 함께 전자봉 1개, 전자충격기 1개, 다이너마이트 21개와 뇌관 14개가 발견됐다.


이중 다이너마이트는 강원 삼척의 광산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현양의 친형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만약의 경우 자폭하기 위해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무기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70cm 정도의 위장 등산용 지팡이다. 이 지팡이 한쪽 끝의 뚜껑을 뽑으면 날 길이 15cm의 날카로운 칼이 드러났다.

이밖에 희생자들의 입을 막고 결박할 때 사용한 청테이프와 노끈, 시체를 토막 낼 때 사용한 손도끼와 톱, 시체유기에 쓴 곡괭이 등도 있었으며, 무전기와 무선호출기 등 첨단 통신장비들도 압수됐다. 범죄 자금은 소씨로부터 빼앗은 8천만 원 중 3천800만원이 남아 있었다. 

지존파의 본래 명칭은 ‘마스칸’(헬라어로 ‘야망’)이었지만 이들을 체포한 당시 서초서 고병천 강력반장이 “너희들 조직 명칭을 ‘지존파’라고 하는 게 어떠냐”라고 제안했고, 이들이 “마음에 든다”고 동의하면서 세상에 그대로 통용됐다.

‘지존파’라는 명칭은 조직원들이 담력훈련 할 때 이마에 ‘지존’(至尊)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고 반장이 지은 것이다. 두목 김기환의 별명 역시 ‘지존’이었다.

이들의 추가 범행계획도 드러났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이 구속되자 영광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한 뒤 MBC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살인, 강도, 사체유기,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존파는 1심에서 대법원까지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두목 김기환은 사형이 선고되자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난 왜 유죄인가”라며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검찰은 불가항력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탈출하여 신고한 이양을 불기소처분하고 지방에 집과 직업을 마련해 주었다. 또 이경숙은 가담한 지 이틀 만에 전원 검거돼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1998년 석방됐다.

검거 당시 이씨는 강동은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1997년 12월13일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조직원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로써 지존파는 한국 범죄사에 가장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집단’으로 기록됐다.

지존파 검거한 고병천 서초서 강력반장

지존파는 서초경찰서 고병천 강력반장이 일망타진 했다.
고병천 반장은 1976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고, 30년 동안 강력반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재직 중 미제사건을 단 한건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베테랑 형사였다. 고 반장은 2002년 한성대 마약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2007년에는 수필집도 출간했다.
2009년 혜화경찰서 청문감사관(경정)을 끝으로 33년간의 정든 경찰을 떠났다.


퇴임 후에는 광운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업을 이어갔고, ‘범죄조직(지존파)에 의한 연쇄살인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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