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28사단 ‘윤승주 일병’ 폭행 사망사건
지난 2014년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977포병대대에서 최악의 폭행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윤승주 일병(당시 20세). 그는 악몽의 34일을 보내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윤 일병은 전남과학대 간호학과를 다니다가 2013년 12월 군에 입대했다. 원래는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자 취업이 잘되는 전남과학대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학과에서도 과대표를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키 162cm, 몸무게 50kg으로 몸집이 작고 왜소했다.
윤 일병은 2014년 2월28일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 받았다. 자대 배치를 받을 때도 굉장히 낙천적이고 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반복되는 폭행과 억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리면서 점점 어눌하고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그가 가혹행위를 당하기 시작한 것은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3월3일부터다. 사망한 4월7일까지 무려 한 달 이상 지속됐다.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 가혹행위가 있었다. 윤 일병에게 군은 생지옥이었고, 가해자들은 야만을 즐겼다.
3월3일은 윤 일병이 자대에 배치돼 대기기간이 끝난 뒤 첫 근무 날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됐다. 고참들의 시선도 윤 일병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얼마 뒤 윤 일병의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주범인 이찬희 병장(25), 공범인 하선우 병장(22), 지정현 상병(22), 이상문 상병(22)은 윤 일병이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가슴 부위를 때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들의 폭행은 매일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주범 이 병장은 마대자루가 부러지도록 윤 일병의 허벅지를 때렸다. 공범 이 상병은 부러진 마대자루로 다시 폭행했다. 이들 가해자 4명은 번갈아가며 윤 일병의 복부와 가슴, 턱과 뺨을 때렸다. 이 정도면 폭행을 ‘즐겼다’고 봐야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윤 일병이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들은 적게는 2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 기마자세를 강요했고, 점호가 끝난 시간이면 또 다른 가혹행위를 하며 잠을 못 자게 괴롭혔다. 심지어 잠들지 못하도록 돌아가면서 감시했다. 날이 밝으면 또 다시 무차별적인 폭행이 시작됐다. 가해자 중 주범인 이 병장은 다른 병사들에게 윤 일병의 폭행을 지시했고, 가장 잔혹하게 온 몸을 구타했다.
이 병장의 잔혹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3월17일 휴가 가는 날 새벽에도 윤 일병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를 폭행하고 휴가를 떠났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폭행으로 윤 일병이 다리를 절자, 이번에는 다리를 절뚝거린다는 이유로 다시 폭행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3월17일부터 25일까지 주범 이 병장과 공범인 하 병장은 8일간의 휴가를 떠났다. 윤 일병은 악마 같은 고참들이 휴가를 떠나 잠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의무반에 남아있던 또 다른 공범인 이 상병과 지 상병이 폭행을 이어갔다. 이 상병과 지 상병의 잔인함도 주범 이 병장을 능가했다. 이들은 이 병장의 폭행으로 다친 윤 일병의 허벅지를 찌르면서 반응이 웃긴다며 고통을 즐겼다.
특히 지 상병은 고참들의 폭행으로 인해 심하게 부어서 무릎의 형체가 사라진 윤 일병의 다리를 보고는 “무릎이 사라졌네. 존나 신기하다”며 윤 일병의 허벅지를 계속 찌르면서 괴롭혔다. 이들은 주범인 이 병장이 휴가에서 귀대할 때까지 윤 일병의 허벅지나 무릎 뿐 아니라 주먹으로 팔과 가슴 부위를 계속 폭행했다.
3월26일 휴가갔던 주범 이 병장이 복귀했다. 그는 윤 일병이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절룩거린다”며 주먹으로 가슴과 배, 허벅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4월2일에는 대답을 똑바로 못한다는 이유로 치약을 짜서 먹였다. 1.5리터의 물을 한꺼번에 마시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4월7일 윤 일병은 고통스런 지옥문을 나온다. 죽어서다. 4월5일 점호가 끝난 오후 9시45분부터 주범 이 병장은 윤 일병을 미친 듯이 폭행했다. 6일 오전 2시까지 무려 4시간 15분에 걸쳐 이어졌다. 이 병장은 자신이 윤 일병을 폭행하는 동안 다른 3명의 가해자들에게 망을 보게 하거나 폭행이 용이하도록 팔을 잡게 했고, 또 폭행하도록 지시했다. 윤 일병에게는 “잠을 마라”고 명령했다.
아침 7시30분쯤. 이 병장은 윤 일병이 “피곤해서 잠을 잤다”는 말을 듣고는 격분했다.
윤 일병의 뺨과 허벅지를 폭행한 것을 시작으로 오전에만 쉬지 않고 7회 이상 폭력을 행사했다. 오전 10시쯤에는 이 병장이 침대 밑으로 가래침을 2회 뱉으면서 그때마다 개 흉내를 내며 핥아 먹게 하는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또 윤 일병의 성기에 액체 안티푸라민을 바르며, 성적 수치심을 줬다.

오후 3시30분쯤 냉동식품을 사와서 함께 먹을 때 쩝쩝거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가슴과 턱, 뺨을 폭행해서 음식물이 튀어나오자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핥아 먹게 했다. 이후 4명의 가해자들은 윤 일병의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폭행하고, ‘엎드려뻗쳐’를 시킨 상대에서 폭행을 계속했다.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30분쯤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쓰러지자 “꾀병을 부리냐”며 이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이 뺨을 때리며 가슴과 배 부위를 폭행해서 넘어뜨렸다. 이후로 윤 일병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윤 일병은 연천의료원과 양주병원을 거쳐 의정부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지만 다음 날인 4월7일 결국 숨을 거뒀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사상태에 빠진 후 깨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주범인 이 병장을 비롯한 공범들의 폭행은 34일 동안 거의 매일 지속됐다.
윤 일병은 24시간 동안 폭행에 노출돼 있었다. 가해자들은 이렇게 오랜 동안 어떻게 폭행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군인권센터는 28사단 의무대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이곳 의무대는 병사들의 복무현장이자 생활관이었다. 의무대의 특성상 윤 일병은 24시간 가해자들과 한 공간에 방치됐던 것이다.
본대와 다소 거리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용이했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을 24시간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폭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해자들은 입원 병사들이 보고 있어도, 간단한 처방을 받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드나들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군인권센터는 “이런 의무대는 이 병장의 제왕적 권력 아래 병사들이 사병화를 넘어 조직폭력배와 같은 양태를 띠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병장의 제왕적 폭력 앞에 의무대지원관인 유경수 하사도 구타 가혹행위를 방조하고, 본인 또한 윤 일병에게 화풀이로 폭행을 자행하기 까지 했다.
여기에 유 하사, 이 병장, 하 병장은 휴가 중 창원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윤 일병은 고립무원의 의무대에서 누구한테 고통 한번 호소하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이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사망하기 전부터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공범인 이 병장은 구타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이를 위해 기독교 집안인 윤 일병이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가족 초청 운동회에는 윤 일병의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것을 방해했다. “점수가 부족해서 윤 일병은 가족을 초청할 자격이 없다”며 윤 일병과 가족들의 접촉을 차단했다.
사망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가해자들은 증거인멸에 나섰다. 윤 일병이 병원으로 이송되자 연천의료원 주차장에서 주범 이 병장은, 동행한 공범 하 병장과 이 상병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 또 부대에 귀대한 이 병장과 이 상병은 남아 있던 지 상병에게 함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폭행 전 과정을 목격한 입실 환자인 병사에게는 “00씨는 자고 있던 거에요”라며 입을 다물라고 압박했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을 맞췄다. 나아가 의무대에는 구타나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으며 평소에 화목했다고 주장했다.
주범인 이찬희 병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한 조폭이라면서 가혹행위를 가하는 후임들에게 “만약 이 일을 고발하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피해자 윤 일병에게는 “니 애비 사업을 망하게 하고, 니 에미는 섬에 팔아버리겠다”는 협박도 일삼았다. 사실 이 병장의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생이 되기 이전에 가출해서 오래전부터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조폭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허풍을 고등학교 때부터 떨어왔던 것이다.
사건 다음날인 4월7일 오전 9시쯤 하 병장은 증거인멸을 위해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서 수첩 2권을 찢어서 버렸다.
이 사실을 이 병장은 알고 있었고, 분리수거장에는 이 상병과 이 일병이 미리 대기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처음에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주장을 계속하다가 수사하던 헌병대가 “윤 일병이 깨어날 것 같다”고 하자 그제서야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망 당일 아침부터 사망 직전까지 수액을 주사한 2시간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집단폭행을 당한 윤 일병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를 해왔다. 살해 의도성이 짙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30일 1심 법원인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찬희 병장, 하선우 병장, 이상문 상병, 지정현 상병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45년, 징역 30년, 징역 25년(이 상병과 지 상병)을 선고했으며 유경수 하사, 이00 일병에게는 폭행죄 등을 적용해 징역 15년, 징역 3년(집행유예 6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윤 일병의 유가족과 군검찰은 살인죄 적용이 안 됐다는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
다음해인 2015년 4월 9일 2심 법원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이 병장,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에게 모두 살인죄를 적용하고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에게 징역 35년, 이외 3명에게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유 하사와 이 일병은 폭행죄 등을 적용받아 각각 징역 10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2심에서 형량이 줄어든 것은 가해자 측이 유가족 위로금을 공탁한 점이 참작됐다.
이후 2016년 8월 대법원은 윤 일병 사망사건의 주범 이 병장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으며, 함께 기소된 하 병장과 이 상병, 지 상병에게는 각각 징역 7년 확정 판결을 내렸고, 유 하사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병장의 경우 군교도소에 수감 중 감방 동료들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추가 드러났다.
그는 “코를 곤다”는 이유로 감방 동료를 구타하고 몸에 소변을 보고 종이를 씹어 삼키게 하거나 식사 시 밥 없이 반찬만 먹게 하는 등 엽기적인 가혹행위를 했다.

한편, 고 윤승주 일병의 유족들은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국가보훈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이 제출한 진술기록의 서명이 대필된 것으로 알려져 조작과 졸속심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다 2017년 12월13일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윤 일병이 의무병으로 24시간 의무대기한 점 등을 감안, 국민의 생명보호와 관련해 복무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국가유공자(순직군경)에 해당한다고 재의결했다.
2018년 1월4일 보훈처는 윤 일병을 국가유공자(순직군경)로 등록하고 유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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