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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여중생 매니큐어 살인사건


2003년 11월5일 오후 4시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소재 동남중학교의 학교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교문 앞으로 밀려나왔다.

짙은 초록색 상의와 체크무늬 치마로 된 교복을 입은 2학년 엄현아양(15)도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교문을 나섰다. 엄양은 집으로 가지 않고 4명의 친구들과 학교 근처의 반 친구 집으로 향했다.

한참 즐겁게 놀던 여중생들은 어둠이 밀려오자 각자의 집으로 귀가를 재촉했다. 엄양은 같은 마을에 사는 조 아무개양(15)과 송우리 추산초등학교 후문까지 동행했다.

이곳은 가로등 하나 없는 외딴 길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휴대전화를 꺼내든 엄양은 “엄마, 곧 들어 갈거야”라고 말한 귀 전화를 끊었다. 조양과 헤어진 곳에서 엄양의 집까지는 800여m,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엄양은 ‘지름길’로 방향을 잡았다. 추산초등학교 후문 경덕학원 뒷길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통일대 군인아파트로 가려는 생각이었다. 마을 사람들만 아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 지 “곧 집으로 들어간다”던 엄양은 밤 9시가 넘어도 귀가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연락두절 상태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엄양의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찰 수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찰은 엄양이 실종된 뒤 단순가출이나 교통사고, 유괴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엄마에게 전화한 후 실종된 엄양을 ‘단순 가출’로 본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도 없었고 엄양이 조양과 헤어진 도로는 폭이 2m에 불과한 농로임을 감안하면 유괴나 뺑소니 교통사고의 가능성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엄양은 2년동안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하고 친구관계도 원만했던 학생이었다.

경찰은 2004년 1월 부천 초등학생 납치 살해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경기지방경찰청까지 나서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선 전담반을 편성해 엄양이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이는 한편 탐문을 시작했다.

엄양의 부모는 전단지 15만장을 만들어 배포하고, 딸을 찾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장 155cm, 체중 38kg, 단발머리에 머리를 뒤로 묶음, 동남중학교 교복 착용, 흰색 운동화, 분홍색 머리띠 착용’이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엄양이 행방불명된 지 23일 만인 11월28일 엄양의 집에서 7.4km 떨어진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자양동 일대에서 소지품이 발견됐다.

가방, 양말, 교복넥타이, 노트, 털실장갑 등이다. 이상한 것은 엄양의 가방 안에 있던 학원수강증과 공책에서는 이름이 있던 부분만 찢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한 달 가량이 지난 12월22일 실종 47일째 의정부시 민락동 도로 확장공사 현장 인근의 쓰레기더미에서 엄양의 휴대전화와 운동화가 발견됐다. 실종 장소에서 15km 떨어진 곳이다. 휴대전화는 몸통과 배터리가 분리돼 있었다.


그런데 소지품이 놓여진 형태가 심상치 않았다. 범인이 다급하게 버리거나 숨기려고 했다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엄양의 소지품은 마치 경찰수사를 비웃듯 쓰레기더미 맨 위에 놓여 있었다. 범인이 의도적으로 연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엄양의 소지품이 발견되고 실종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생사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다. 경찰은 엄양의 신변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해를 넘겨도 성과는 없었다.

그사이 엄양의 통화내역을 조사해봤지만 특별한 단서가 나오지는 않았다. 엄양의 친구 등을 중심으로 탐문수사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제보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신빙성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자 현역 군인인 엄양 아버지는 소속 부대에 요청, 장병들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에 나섰다. 엄양의 학교와 집 근처는 물론 포천시 관내 야산과 남양주, 구리, 양주, 의정부 일대까지 야산을 중심으로 정밀 수색작업을 벌였다.

그러다 사건 발생 96일 만인 2004년 2월8일 오전 10시15분쯤 포천경찰서 남부지구대 이은영 경장에게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흘읍 이동교5리 축석낚시터 맞은 편 옹달샘가든 입구 우측 배수로 앞을 지나가다 사람의 발바닥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옷이 벗겨진 여자 변사체가 반듯이 누워있었다. 다른 한쪽은 29인치 TV를 포장한 종이상자로 가려져 있었다.

바로 엄현아양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축석검문소에서 광릉수목원 방향으로 500m, 엄양 집에서는 6㎞정도 떨어져 있고, 왕복 2차선 도로에서 20m 안으로 들어간 한적한 곳이었다. 앞서 엄양의 유류품이 발견된 곳과는 2㎞ 정도 떨어져 있다.


발견 당시 시신은 길이 7.6m, 지름 60cm의 배수로에 실종 당시 입고 있던 교복과 속옷 등이 모두 벗겨진 채 알몸 상태였고, 양손은 얼굴 쪽으로, 다리는 배쪽으로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었다. 시신은 얼굴에서부터 가슴까지 부패가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포천경찰서 관계자가 엄양의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를 감식하고 있다(연합뉴스) . 현재 배수로는 터널 공사로 철거됐다.

그런데 경찰관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엄양의 시신의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던 것이다.

매니큐어는 매우 조잡한 상태로 칠해져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에도 번져 있는 상태였다. 엄양은 평소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았고, 다니던 중학교의 규율에도 매니큐어를 칠하고 등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칠했다는 것인데, 그건 바로 범인의 짓이었다.

경찰은 엄양의 시신을 소흘읍 우리병원 영안실에 안치했다. 시신이 발견될 당시 엄양의 부모는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우리 아이를 꼭 찾아 달라”며 딸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경찰로부터 “여중생으로 보이는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은 부모는 한걸음에 우리병원 영안실로 달려와 시신을 확인했다. 부모는 심하게 훼손된 얼굴로는 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른쪽 팔과 배를 살펴봤다. 불에 데인 팔의 화상 흉터와 아랫배에 난 맹장수술 자국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딸임을 확인했다.

어머니 이 아무개씨(42)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딸의 처참한 모습에 “내 딸을 살려내라”고 몸부림을 치며 남편을 끌어안고 통곡하다 실신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배수로 일대에서 유류품 수색작업을 벌였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6m 떨어진 지점에서 콘돔 1개와 정액이 묻은 휴지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엄양의 시신을 감식한 결과 외견상 결박이나 목졸림 등의 외상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시신상태로 보아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 후 살해된 뒤 버려진 것으로 추정했다.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엄양의 시신은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결과 시신의 상체가 심하게 부패돼 있어 정확한 사인을 가려내지는 못했다. 국과수는 “목 부위가 심하게 훼손돼 목졸린 흔적이 있었는지 감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또 “오른쪽 머리(뇌) 부위에 약간의 출혈현상이 발견됐지만 사인과의 관련성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하체는 비교적 깨끗했으나 성폭행 흔적이나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배수로 인근에서 발견된 콘돔과 정액이 묻은 휴지는 이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엄양의 시신에 칠해진 매니큐어는 살아있을 때가 아닌 살해된 후에 칠해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범인이 엄양에게 매니큐어를 칠했을 경우 얼굴에 화장을 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부검결과 그런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나오지 않으면서 의문점은 더욱 증폭됐다.

경찰 수사는 계속해서 헛돌았다. 매니큐어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판매처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변태 성욕자와 불량배, 우범자 등에 대한 수사도 진전이 없었다.

이렇듯 경찰의 광범위한 수사로 수명의 용의자가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진범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엄양의 실종을 전후해 엄양을 봤다는 목격자 2명을 상대로 최면수사을 벌인 결과 실종 시간인 저녁시간대 스타렉스 승합차가 주변에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했다.


경찰은 엄양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수거한 TV 포장박스가 경기 남양주시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확인하고 구매자 신원 파악에 나섰고, 포장박스의 유통경로를 추적한 결과 이 박스에 담겼던 TV가 2003년 8월 인근 남양주시에서 판매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추적에는 실패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려 1년간이나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현장 근처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데다 다른 단서나 제보도 없어 수사는 장기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 또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범인을 검거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한편, 엄현아양은 2005년 6월26일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운악산 내 현등사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당시 군부대에서 사망한 홍익선씨.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엄양이 실종된 후 홍씨의 어머니가 자신의 일처럼 현수막을 걸고 홍보전단지를 돌리는 등 발벗고 나섰다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영혼결혼식에는 엄양과 홍씨의 가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엄양의 이름이 찢겨졌다
엄양의 소지품(유류품)은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엄양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노트와 학원수강증에 있는 이름이 적힌 부분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분명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두 가지다. 하나는 이것이 엄양의 것인지 쉽게 알 수 없게 의도적으로 훼손했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범인이 엄양을 알고 있다는 증거, 즉 스스로 면식범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범인이 엄양의 이름이 알려지면 자신이 지목될 수 있다고 생각해 미리 찢어버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면식범이라면 엄양의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배터리가 분리된 휴대전화
사건 이후 발견된 엄양의 휴대전화는 본체와 배터리가 분리돼 있었다. 누군가 강제적으로 분리했다. 휴대전화는 전원을 켤 때와 끌 때 그리고 통화중일 때 기지국에서 휴대폰 단말기의 위치가 등록된다. 그러나 배터리를 분리하면 그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 지금은 이런 정보를 왠만하면 다 알고 있지만 당시만해도 일부만 아는 전문지식이었다. 때문에 범인은 이와 관련한 전문지식이 상당하거나 범행 전에 이런 것까지 치밀하게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다.


3.끝내 발견되지 않은 교복과 속옷, 스타킹
엄양의 소지품 중에 끝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이 있다. 교복 넥타이는 발견됐지만 정작 교복과 속옷 그리고 스타킹은 흔적이 없었다. 범인이 이것들만 따로 버렸다기 보다는 ‘수집’했다고 보는 것이 근접하다. 이에 대해 범죄전문가들은 ‘물품 음란증’ 환자로 보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속옷이나 양말 등에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주로 여성의 속옷, 스타킹, 브래지어, 팬티, 거들, 헤어핀, 또는 밴드, 손수건 뿐만 아니라 때로 음모, 머리카락, 손톱, 발 모양, 성기구 등을 수집한다.
처음에는 작은 물건에 만족감을 느끼다 점차 여성의 몸 자체를 원하게 되는 성도착증의 일종이다. 만지거나, 문지르거나, 냄새 맡으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성교시 상대방에게 그런 물건을 착용하도록 요구한다. 즉 범인은 엄양의 교복, 속옷, 스타킹을 통해 범행 당시의 쾌감을 느끼거나 자위행위를 하는 변태성욕자일 가능성이 크다.

4.발가벗겨진 시신,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엄양의 시신은 상체는 부패상태가 심했으나 하체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엄양이 발견될 당시 알몸상태였기 때문에 경찰은 엄양이 납치돼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부검결과 시신에서 성폭행 흔적이나 정액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엄양을 성폭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으로 판단됐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 바로 범인이 성불능 환자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매니큐어는 왜 칠했을까
물품음란증의 연장 선상이다. 엄양의 손톱과 발톱에는 진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아주 조잡하게 칠했고, 사후 칠한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왜 엄양을 살해한 후 매니큐어를 칠한 것일까. 이에 대해 범죄 전문가들은 범인이 변태성욕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품음란증 환자 중에는 시체를 속옷 같은 소유물로 생각하고 시신에 립스틱이나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 화장을 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살인자는 두 얼굴을 하고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평상시에는 정상적으로 생활하지만 ‘물품 음란증’ 증상을 보이며 여성의 속옷 등을 수집하며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변태성욕자일 가능성이 크다.
또 휴대전화 배터리를 분리할 정도로 치밀하거나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다. 또 엄양이 마을사람들만 아는 지름길에서 사라졌고, 공책과 학원수강증의 이름 적힌 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봐서 범인은 면식범일 수도 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 범인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또 다른 비극 ‘담당 수사반장’의 자살

2004년 4월 16일 오전 11시30분쯤 포천군 신곡리 깊이울 유원지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된다. 등산객이 신문지 위에 누운 채 숨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다름 아닌 엄현아양 사건을 수사하던 포천경찰서 강력1반장인 윤석명 경사(47)였다. 윤 반장의 옆에는 제초제가 담긴 농약병과 그가 쓰던 업무수첩이 발견됐다. 수첩에는 부인과 모친, 자녀 앞으로 ‘1년간 힘들었다. 못난 사람 만나 고생이 많았다. 싫다 소리도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당시 함께 수사했던 동료가 수사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동료 형사가 죽어있는 자리엔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고, 마음이 아팠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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