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악마가 된 전 남친 ‘송파 이별 살인사건’


요즘 신조어로 ‘이별 전쟁’이란 말이 있다. 헤어질 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실제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 이별 살인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2016년 4월19일 화요일은 화창한 봄 날씨였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김정은씨(32)는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고, 현관문을 열어 본 정은씨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 한아무개씨(32)가 출근 시간에 찾아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씨는 흉기를 들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그 순간 ‘악’ 하는 비명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울려 퍼졌다.

정은씨는 순간적으로 한씨를 피해 맨발로 아파트 야외 주차장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고 그만 주차장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한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다가가 흉기로 목, 심장, 옆구리 등 6곳을 찔렀다.

범행 당시 현장 CCTV 화면.

그곳에는 아파트 경비원과 입주민들이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한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경비원이 다가서자 “가까이 오면 찔러 죽인다”며 칼을 휘둘렀다. 한씨는 경비원이 주춤하는 사이 흉기를 아파트 쓰리기통에 버리고 준비한 오토바이를 타고 황급히 도망갔다.

정은씨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상처가 깊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파트 현관 입구의 폐쇄회로(CC)TV에는 비명을 지르며 건물을 빠져나가는 정은씨를 칼을 들고 쫓아가 주차장에서 찌르는 한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범행 현장에서는 한씨가 남기고 간 회칼, 로프, 나일론 끈, 염산 등이 발견됐다.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을 알 수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주변 CCTV 분석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한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관할 송파경찰서는 한씨를 검거하기 위해 강력 6개팀을 투입해,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 통신수사와 도주로 분석에 나섰다.

한씨는 범행 후 처음에는 송파구 문정동으로 도주했다. 이곳에는 정은씨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범행 현장에서 약 15km 떨어진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 비닐하우스로 도주했다. 이곳은 정은씨가 한씨를 만나기 전에 10년 정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의 집 근처였다. 경찰은 추적 끝에 이곳에 은신해 있던 한씨를 범행 하루 만에 긴급 체포했다.

정은씨 아버지는 “범인이 딸을 죽이고 엄마와 전 남자친구에게까지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심이 든다. 사건 이후 경찰에 이것을 밝혀달라고 했는데,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서로 압송된 한씨는 기자들 질문에 “(김씨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흉기는 자살하려고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씨는 정은씨를 살해하면서 부러진 칼날에 왼손을 심하게 다쳐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는 체포될 때부터 갖고 있던 흉기를 수술 후 감아둔 붕대 안에 숨겼다.

한때 다정한 연인이었던 두 사람.

경찰은 한씨를 체포하면서 몸수색을 했고, 커터 칼 하나를 찾아냈지만 그가 갖고 있던 또 다른 흉기인 과도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씨는 유치장에 입감하기 전 몸수색 당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는데, 붕대 속에 감춘 흉기를 들키지 않기 위한 꼼수였다.

그는 유치장에 입감된 다른 이들에게 흉기를 보여주며 자랑했고, 유치인 중 한 사람이 면회를 가면서 유치장 관리 직원에게 알리면서 탄로났다. 경찰은 유치장 모포 속에 숨겨둔 길이 23㎝(칼날 길이 12.6㎝) 짜리 과도를 발견했다.


한씨는 왜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가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 두 사람의 악연은 201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은씨는 지인의 소개로 한씨를 만났다. 처음에는 불타는 사랑을 했다. 거의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당시 한씨의 행동은 여자 친구를 위하는 애틋함처럼 보였다. 아침에는 회사까지 출근시켜 주고, 퇴근 후에는 집에까지 데려다 줬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였다. 한씨는 점점 정은씨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간다고 알려줘야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어쩌다 말을 못하면 “왜 나한테 말 안 해?” 하면서 병적인 집착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두 사람은 점점 다툼이 잦아졌고, 2016년 2월 정은씨가 결별을 선언했다. 한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함께 죽자”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등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씨는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씨에게 손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는 부부가 상대편을 부르는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낯부끄러운 말이지만 정은씨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던 것이다.

헤어진 후 한씨가 정은씨에게 보낸 편지.

이어 한씨의 협박과 잔혹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수시로 “죽여 버리겠다”며 위협했다. 쉴 새 없이 문자와 협박전화를 했다. “예전 여자 친구도 헤어질 때 죽이려다 실패해서 다리만 부러뜨렸는데 너는 실패하지 않겠다”며 협박 수위도 점점 높여갔다.

“내가 지금 너를 협박하려고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네가) 절실히 필요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죽이고 싶다 그랬지, 내가 언제 죽이겠다고 했니,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진심이라고 한건 거짓말 하나도 없었어”


그는 거의 매일 정은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나타났다. 보란 듯이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지켜봤고, 아파트 맞은 편 교회에 올라가 집안을 수시로 들여다봤다. 쉴 새 없이 문자와 협박 전화를 했다. 자신의 신변에 어떤 일이 생길 것에 대비해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이동저장장치(USB)를 보내 내용물을 인터넷에 퍼트리겠다고도 했다.

이런 사실을 정은씨는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혼자 해결하려고 두 달간 노심초사하며 지냈으나 허사였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자 모든 것을 부모에게 털어놓았다.

이것을 빌미로 한씨의 협박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가족들은 집을 나설 때마다 한씨의 차량이 있는 지를 습관적으로 살펴봐야만 했다. 이렇게 한씨는 한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한씨의 스토킹과 협박 때문에 정은씨 부모의 걱정과 근심도 커져만 갔다.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랬다가는 정말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딸이 “무섭다”고 하자 아버지는 한 달 정도 출퇴근을 함께 했다. 지하철을 탈 때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내리는 시간과 출구를 알려주고 만나서 집에 왔다.

사건 당일 정은씨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갔다. 얼마 동안 한씨가 집 앞에 나타나지 않자 스토킹이 잠잠해졌다고 방심했던 것이다. 한씨는 이것을 노렸다. 어머니가 미용실에 가고, 아버지까지 운동을 나가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출근하는 정은씨를 기다렸다가 살해했다.

정은씨 아버지는 단 하루 집을 비웠던 그 날에 대해 자꾸만 죄책감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정은씨는 사건 전날 어머니가 운영하는 송파구 문정동의 미용실에 갔다. 이곳에서 어머니에게 머리 손질을 맡기고 대화를 나눴다. 이것이 모녀의 마지막 대화였다.


정은씨가 미용실에 들어와서 머리를 손질하고, 휴대폰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미용실 안 CCTV에 그대로 찍혔다. 어머니는 이 모습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그때 손님이 와서 딸과 함께 퇴근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다.

한씨는 왜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 것일까. 한씨의 성장과정에서 문제를 엿볼 수 있다. 한씨는 13살 때인 1997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미국 시민권까지 취득했지만,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 결국 3년 만에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씨는 10년을 홀로 살았다. 아주 예민할 때인 사춘기 시절을 외톨이처럼 보냈다. 동생이 잠시 한국에 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정은씨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동생이 미국으로 돌아간 날 혼자 있게 됐는데, 너무 두려웠어. 지금 나 걸레 조각된 느낌인 거 알아? (동생이 간 날)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거든”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 여성을 사귀게 되면 여성에게 병적 집착을 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씨는 자신의 직업도 속였다. 처음에는 S은행에 다닌다고 했으나 그의 실제 직업은 의류업에 종사했다. 그곳에서도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대인관계를 맺지 못했다. 정은씨와 사귈 때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한씨는 정은씨에게 340만원을 빌리기도 했는데, 이를 빌미로 협박까지 일삼았다.


정은씨는 “(너에 대한) 마음이 와장창 깨졌는데, 깨진 접시를 붙여서 다시 우리가 만나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 된 거잖아”라고 말했지만, 한씨는 여자 친구를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했다.

딸이 살해된 아파트 주차장 바닥을 어루 만지는 어머니.

사랑하는 딸을 비명에 잃은 부모의 상처는 컸다. 1남1녀 중 장녀였던 정은씨는 부모의 든든한 딸이었다. 대학졸업 후 일본 유학을 했다. 그곳에서 배운 일본어 실력으로 한 치과병원에 통역사로 취업했다.

그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코디를 공부해 이 병원의 총괄실장 자리에 올랐다. 병원의 인테리어나 소품 배치, 환경관리부터 효율적인 진료, 예약, 수납, 진료상담까지 맡는 등 병원의 운영에 꼭 필요한 업무를 했다.

혼자서 결혼자금을 만들고, 가계에도 큰 보탬이 됐다. 정은씨는 어려웠던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할 만큼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고, 부모에게는 인정 많고 속이 깊은 딸이었다. 이런 딸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면서 부모의 가슴은 천근만근 찢어지고, 사는 게 지옥이 됐다.

정은씨 부모는 매일 딸이 살해당한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야 한다. 이곳에는 한동안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이것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지며 주차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우리 딸,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하며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본다.

한씨는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경찰에 긴급 체포된 후 “우발적 이었다”며 계획범죄를 부정했다. “스토킹이 아니라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이었다”며 “칼은 겁만 주려고 했고, 칼로 찌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끝까지 피해자나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변호사를 4명이나 선임했고, 변호인은 한씨가 지병을 앓았다며 정신감정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형량 줄이기에만 혈안이 됐던 것이다. 한씨는 살인과 협박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아울러 전자발찌 20년 착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계획적인 점, 중대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지 않고 책임을 면하려 해 중형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사형은 도저히 사회가 인내할 수 없을 정도의 범죄에 대해서만 최대한 제한해 선고하기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한씨는 항소하면서 우울증 및 정신이상 감정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한씨의 상태를 검사한 결과 ‘이상 없음’으로 판정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형량을 인용했으나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하지 않았다. 한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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