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한판 ‘왕자의 난’ 우암각 습격사건

김정일은 생전에 다섯 명의 부인을 뒀다. 조강지처는 홍일천이다.

1966년 홍일천과 결혼해 딸 김혜경을 낳았으나 3년 후 이혼한다.

둘째는 북한의 유명배우 출신 성혜림이다. 김정일 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원래는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의 부인이었지만 김정일이 강제로 이혼시키고 빼앗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다. 성혜림은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식 부인이 되지 못했고, 김일성도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은 혁명가 집안 출신인 김영숙이다. 김정일의 유일한 공식 부인이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뒷방으로 밀려났고, 김정일과의 사이에 김설송과 김춘송 두 딸을 뒀다.

넷째부인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고용희다. 김정일의 부인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부터 암으로 사망한 2004년까지 동거하며 사실상 안주인 역할을 했다. 고용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아들 정철과 정은, 딸 여정을 낳았다.

다섯째 부인은 김정일 보다 스물 두 살 적은 김옥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서기실(비서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김정일을 보좌했다. 항간에는 김옥이 김정은의 생모라는 설도 있다.

김정일은 한때 장남인 김정남을 후계자로 염두에 뒀다. 그러나 2001년 5월 일본 밀입국 사건이 불거지면서 후계구도를 새로 짠다.

당시 김정남은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들고 나리타 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다 추방됐다. 이전까지 북한의 황태자였던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의 눈 밖에 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이후 중국 베이징과 마카오에서 칩거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평양을 방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정남은 당‧군‧내각 등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외곽 작업을 계속했다.

2006년부터 이복동생인 김정은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샛별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진다. 그해 12월부터는 ‘청년대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8년 김정일이 뇌혈관 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사실상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된다.

2009년 1월부터 김정은은 북한 핵심권력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작전부를 지휘했다. 이때부터 ‘김 대장’으로 불린다. 이 시점에 북한 내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 찬양가요 ‘발걸음’은 “척척척 우리 김 대장 발걸음”이라며 김정은을 지칭했다.

군과 보위부를 장악한 김정은은 곧바로 김정남 세력의 정리작업에 들어간다. 북한 평양 중심가 중구역에는 특각(별장) 우암각이 있다. 납북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평양에 살면서 머물던 고급 주택이다. 부부가 탈출한 뒤 초대소로 사용돼 오다 1997년쯤부터 김정남의 아지트가 됐다.

김정남은 해외에 체류하면서 평양에 들어갈 때마다 묵으며 우암각에서 지지세력들을 모아 ‘비밀파티정치’를 벌였다. 지난 2009년 4월 초 김정남 입국을 앞두고 그의 측근들이 우암각에 모였다.

그런데 이날 밤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우암각을 급습했다. 이들은 별장에 있던 김정남 측근들과 관리원들을 모두 연행하고 샅샅이 수색해 중요 서류들을 압수해갔다.

김정은이 잠재적 위협인 김정남과 그 추종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벌인 습격 사건이다.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지면서 김정남 측근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후 이 사건은 북한판 ‘형제의 난’으로 불렸다.

당시 김정남은 마카오에 있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최측근으로부터 연락 받은 김정남은 싱가포르로 몸을 피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남은 북한 내부에 있던 자신의 수족들이 모두 잘리면서 해외를 떠도는 신세로 전락한다.

2010년 9월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가 내려졌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에는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라는 표현과 함께 ‘영도자’로 격상되며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김정은은 집권한 뒤 정보기관에 ‘스탠딩 오더'(반드시 처리해야 할 명령권자의 명령)를 내린다.

결국 김정남은 2017년 2월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공작조에 의해 암살되면서 ‘비운의 황태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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