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오원춘 살인사건’ 뒤에 숨은 무서운 음모

오원춘 사건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필자는 사건이 일어난 지 8일 후인 2012년 4월10일, 오원춘의 거주지를 찾아갔다. 이곳은 수원시에서도 주변 시세에 비해 집값이 저렴한 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다. 오씨의 집은 지동초등학교에서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폭 30m 정도의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로 양쪽에는 2~3층 높이의 낡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당시 이 곳은 ‘팔달 10 재개발 지역’으로 설정돼 있었다.

낮에는 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날이 저물어 길가 상점들의 불이 꺼지면 담벼락에 둘러싸인 골목길과 다름없게 된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나면 40~50m 간격으로 세워진 가로등이 이 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오씨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했다. 그가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대문 바로 앞에 있는 전봇대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환경 때문에 가능했다. 피해자 곽씨는 어두컴컴한 이 길을 걸어 집으로 가다 변을 당했다.

전봇대와 오씨 집의 대문까지 거리는 3m가 채 되지 않았다. 철재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비좁은 골목이 10m가량 이어지고 오씨 집의 현관문이 나온다. 범행 당일 피해자는 오씨에게 폭행을 당하며 이곳으로 질질 끌려왔다.

필자가 현장에 갔을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오씨의 집은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다. 담벼락 아래에는 건축 자재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옆집 담장에서 오씨 집을 바라보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귀를 쫑긋 세우면 집 안에서 나오는 웬만한 큰소리는 들릴 것 같은 거리였다.

사건 당시 오원춘이 거주했던 집의 대문. 오씨는 피해자를 이 대문으로 밀쳐 집안으로 끌고 갔다.

사건 발생 후 오씨 집 창문은 대형 합판으로 봉인된 상태였다. 그 위에는 경찰의 폴리스 라인이 겹겹이 둘러쳐 있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못질되어 있어 집안 내부를 전혀 볼 수 없었다. 경찰이 취재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취해놓은 조치였다.

오원춘은 피해자를 집안으로 끌고가 성폭행하려 했다. 피해자가 반항하자 살해 후 시신을 화장실로 옮겨 토막냈다.

오씨가 거주지를 수원으로 옮긴 것은 2010년 9월쯤이다. 건설 현장에서 알게 된 중국 동포(여·68)의 주거지에 주소만 등록해놓고 매교동과 남수동 여인숙에서 거주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거주지로 옮긴 것은 2011년 2월부터다.

오씨는 3층 다세대 주택의 1층에서 지냈다. 19.8m²(6평)짜리 단칸방을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을 내고 살았다. 뚜렷한 직업이 없이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오씨는 이곳에서 13개월 동안 지냈다. 그가 여기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오원춘은 피해자를 집안으로 끌고가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했다.

필자는 오원춘의 집에서 새로운 범죄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봤다.

집 안은 들어갈 수가 없어 담장 안에 있는 집 밖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건물 1층 외벽 하단에 직경 약 50cm의 녹슨 철재문이 있었다. 배관이 굴뚝 형태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봐서 물건 태우는 소각로 같았다.

철재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두 개의 뼛조각이 눈에 띄었다. 육안으로는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동물의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또 뼛조각이 이곳에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타다 남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주변에는 검은 재가 아닌 흰 재가 듬성듬성 있었다.

경찰은 4월5일 이곳에서 오씨를 데리고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정밀 감식도 했다. 그런데 이곳을 아예 수색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소각로를 열어 본 흔적조차 없었다. 집 안에만 수색하고 밖에는 아예 살펴볼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그만큼 경찰의 현장 검증도 부실투성이였다.

오원춘 집과 소각로에서 1차로 발견한 뼛조각.

곧바로 함께 간 사진기자에게 소각로와 그 안에 있던 뼛조각을 촬영하도록 했다. 현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뼛조각은 손대지 않았다.

필자는 재직하고 있던 <시사저널> 제1174호(2012년 4월17일자)에 오원춘의 집에서 발견한 뼛조각 사진을 공개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의 현장감식과 현장검증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뼛조각을 필자가 찾아내면서 ‘오원춘 의혹’에 새로운 불씨가 됐다. 그리고 일파만파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런데 기사가 보도된 후인 4월23일 정형외과 전문의인 정아무개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씨는 “지금까지 절단 수술만 100회 이상 시행해 본 경험으로 보면 사람의 조직을 쉽게 절단할 수 없고, 칼을 갈아가면서 절단한 점, 뼈에서 살점만 발라낸 점 등을 보면 단순히 은폐하거나 유기하기 위한 범행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며 시사저널에 실린 뼛조각을 살펴보니 정형외과의 소견으로 보면 사람의 경추(목뼈)나 흉추(등뼈) 같다. 원본 사진이 있거나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있으면 사람의 뼈인지 동물의 뼈인지, 또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필자와 정형외과 의사가 주고받은 대화내용.

필자는 취재 당시 촬영한 해상도가 높은 사진 여러 장을 정씨에게 메일로 전송했다. 그랬더니 “사진 상으로 볼 때 큰 뼈는 사람의 경추 7번 또는 흉추 1~2번과 비슷하다. 원근법 등을 적용해서 계산해보니 얼추 맞다. 작은 사진은 요추(허리뼈)로 추정된다. 큰 뼈는 모양으로 봐도 동물 뼈는 아닌 것 같다. 요추로 추정되는 사진은 사람 것보다 작은 것 같은데 정확한 크기를 알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듯하다”고 했다.

필자는 4월30일 오후, 사진기자와 함께 수원의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았다. 오씨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훼손한 집 안은 여전히 봉인돼 있었고,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집 밖은 이전에 찾았을 때보다 정리 정돈이 잘 된 상태였다.

소각로를 찾아 철재문을 열었더니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지난번에 찾았을 때는 소각로 바닥에 뼛조각과 흰 재, 비닐봉지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1.수원 살인 사건의 현장인 오원춘의 집 2.건물 1층 하단에 설치된 소각로(쓰레기 배출구) 3. 소각로 철제 문을 반쯤 연 상태 4.소각로 내부에 뼛조각(원 안)이 보인다. 5.소각로에 남아 있는 있던 뼛조각 6.뼛조각 확대 모습.

소각로 안에 뼛조각 하나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소각로 안 바닥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기 때문에 실수로 뼛조각을 수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뼛조각을 남겨 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사진기자에게 소각로에 있는 뼛조각을 촬영하도록 했다. 이어 이번에는 뼈를 수거해 비닐봉지에 넣고 회사로 복귀했다. 근접 촬영한 사진을 정형외과 전문의인 정씨에게 다시 보냈다. 정씨는 “사람의 뼈로 보기에는 크기가 작은 것 같다”는 소견을 밝혔다.

그는 “왜 큰 뼈는 수거하고 작은 뼈는 놓고 갔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큰 뼈의 경우 다른 정형외과 전문가들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공통적으로 사람의 뼈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소각로에 남겨진 뼈와 4월10일 촬영한 사진을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두 개의 뼛조각 중 작은 뼈와 아주 비슷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경찰이 일부러 수거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필자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검찰에 뼛조각에 대해 아는지를 물어봤다. 당시 수원지검 2차장 검사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시사저널 보도 직후 우리 수사팀에서 그 내용을 봤다. 그래서 사건을 맡고 있던 수원중부서 강력7팀장에게 현장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경찰에서 ‘뼈를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에도 정식 취재요청을 보냈고, 경기경찰청은 답변 자료를 통해 “오원춘의 집 건물 외벽에 설치된 것은 소각장이 아니라 쓰레기 배출구다. (시사저널 기사가 보도된 후인) 4월20일에 쓰레기 배출구 등 주변에 있는 뼛조각 11점을 수거해서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당시 배출구 내부까지 수색해 뼛조각을 모두 수거했다. ‘양념통닭 후라이드치킨’이라고 쓰인 흰 비닐봉지가 있었고, 뼈는 닭 뼈로 추정된다. 부실 수사 또는 실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찰 측 답변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4월30일 필자가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 소각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 뼈가 놓여 있었다. 개나 고양이가 문을 통해 들어갈 수도 없는 구조였다. 또 양념치킨 봉지가 있다고 해서 닭 뼈로 추정하는 것도 섣부르다. 필자가 발견한 뼈의 모양과 크기로 비교해 볼 때 조류의 뼈보다는 포유류의 뼈에 가까웠다.

특히 필자가 처음 뼛조각을 발견했을 때 그곳에는 물건을 태운 재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중에는 뼛조각을 태울 때 생기는 흰색의 재도 적지 않았다. 쓰레기 배출구라는 경찰의 설명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수거해 온 뼛조각은 경찰에서 인수증을 쓰고 가져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것인데도 국과수의 뼛조각 감정결과는 시간을 질질 끌었다. 오원춘의 행적과 범행 수법 등으로 볼 때 여죄 가능성이 충분했으나 검‧경은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일단락 했다. 검찰은 4월26일 오씨를 살인과 사체 유기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리고 오원춘 재판을 이틀 앞둔 6월13일 수원지검은 기자 간담회를 개최하고 “오씨 집 쓰레기 배출구(시사저널은 소각로로 보도)에서 발견된 뼛조각 11점을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닭과 돼지 등 동물 뼈’라며 여죄 수사를 종결 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오원춘의 여죄는 없고 단독 소행이며, 집에서 발견된 뼛조각은 사람뼈가 아닌 동물뼈로 밝혀졌기 때문에 수사를 끝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발생한다. 경찰과 검찰의 발표가 앞뒤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 발표에 앞서 6월7일쯤 시사저널 대표에게 수원중부서 강력7팀장이 보낸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수원 중부경찰서 강력7팀장이 시사저널 대표에게 보낸 정정보도 요청서. 여기에는 ‘개뼈’라고 나와 있다.

시사저널에서 보도한 ‘사람 뼈 의혹’은 사실이 아니니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정정보도 요청 이유를 보면 “4월20일경 수거한 뼛조각 5점은 닭 유전자형, 6점은 개 유전자형과 동일한 것이며, 5월14일 시사저널 기자에게 회수한 뼛조각 1점도 사람의 뼈가 아닌 것으로 회신되었다”는 내용이다.

수원중부경찰서장이 아닌 강력팀장이 언론사 대표에게 정정보도를 요청한 것도 이상하다.

수원 중부서 강력7팀장은 11점 중 6점이 분명 ‘개 뼈’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 뼈를 ‘돼지 뼈’라고 했다. 개와 돼지가 포유동물인 것은 맞지만 뼈의 크기와 구조 등은 엄연하게 다르다.

국과수의 감정결과도 이해 안 되지만 같은 뼈를 놓고 검찰은 ‘돼지 뼈’ 경찰은 ‘개 뼈’라고 밝힌 것은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오원춘 집에서 사람의 뼛조각으로 의심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방송 등에서도 출연요청이 많았다.

여기서 필자는 ‘섬뜩한 음모’가 떠올랐다.

오원춘 사건을 빨리 덮으려다 필자가 ‘뼛조각’을 발견하면서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닐까. 차라리 처음 뼛조각을 발견했을 때 수거한 후 정형외과에 정식 감정의뢰를 했더라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은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원춘 토막살인사건

중국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오원춘(우위안춘‧43)은 경기도 수원시 지동의 한 주택에 살고 있었다.
2012년 4월1일 저녁, 오씨는 대문 앞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지다가던 곽씨(여‧28)를 납치해 집안으로 끌고 갔다. 성폭행을 시도하다 반항하자 살해한 후 시신을 화장실로 옮겨 훼손했다. 살점을 완전히 도려내 해체한 뒤 14개의 검은비닐봉지에 담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인육 및 장기밀매’나 여죄 가능성이 의심됐으나 경찰이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오원춘은 납치,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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