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 실존 인물 조봉행의 최후

‘수리남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북쪽에 있는 나라다. 1975년 11월 네델란드에서 독립했으며,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 인구는 약 59만명이다. 전 국토의 90%가 원시자연림이며 해안선을 따라 비옥한 연안평야가 펼쳐져 있다.

2022년 9월9일 수리남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이 공개돼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수리남에서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조직을 만들어 마약왕이 된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마약왕 조봉행 사건’을 자세히 살펴봤다.

조봉행은 1952년생이다. 그는 1980년대 선박냉동기사로 일하면서 수리남과 인연을 맺는다. 당시 8년간 수리남에 체류한 조씨는 누구보다 현지 사정에 밝았다.

1994년 5월 국내에서 빌라 건축을 미끼로 10억원 정도를 가로챈 조씨는 수배령이 떨어지자 수리남으로 도피한다. 1995년에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린다. 당시 수산물 가공업자에게는 면세유가 제공됐는데, 조씨는 이것을 빼돌려 파는 것이 주수입원이었다.

중국인을 유럽으로 밀입국 시키는 사업도 병행했다. 유가상승과 단속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자 다른 사업을 모색하게 되는데 바로 ‘마약’이었다.

이를 위해 콜롬비아의 범죄조직이자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는다. 조봉행은 수리남에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해 규모를 키우기 시작한다.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치인, 관료, 군과 경찰 등에 인맥을 구축한다. 당시 수리남은 정부 고위층에서 군‧경찰까지 광범위하게 마약 거래에 가담하고 있었다.

조씨는 육군 출신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2010년 대통령에 취임한 데시 보우테르세 대통령과도 오랜 친분이 있었다. 보우테르세는 2000년 네델란드 헤이그의 항소 법정 궐석 재판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마약거래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조봉행은 명실상부한 마약왕에 등극하자 활동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수리남 현지 출신 마약 조직원들을 통해 남미에서 코카인을 사들이고, 한국인들을 마약운반책으로 삼아 이를 유럽으로 밀반입했다.

조봉행은 수리남 내 한국 교포들을 포섭한 뒤 이들을 국내에 보내 운반책을 모집하라고 지시한다.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으로 100여명을 모았다.

주로 가정주부, 결혼준비 여성, 미용실 종업원, 대학생, 조경기술자, 용접공 등 생활이 넉넉지 않아 돈을 필요하고 해외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을 포섭했다.

이들은 2006년 11월 대서양의 프랑스령에서 검거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마르트닉섬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이 중 주부 장아무개씨(37) 등은 2004년 10월 조씨 측이 보석 원석이라며 건네준 가방을 들고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입국하려다 파리공항에서 체포됐다. 보석 원석 속에는 코카인 37kg이 숨겨져 있었다.

페루에서 검거된 이아무개씨(46)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5년간 수형생활을 하다 특별사면으로 석방되기도 했다.

조봉행은 2005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오른다. 그는 일본에 마약거래선을 확보한 후 국내 공급 판로 확보에 나섰다.

2007년 10월, 국정원은 조씨가 국내 마약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를 검거하려고 했지만 여러 난관에 부닥친다.

수리남과 1975년 수교를 맺었지만 현지 대사관이 없었고, 수리남 관련 업무는 주 베네수엘라 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었다.

수리남과 범죄인 인도조약도 체결되지 않아 조씨를 현지에서 검거해도 국내로 송환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조봉행과 수리남 고위층, 경찰 등이 연결돼 있어 현지 치안당국의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같은 해 11월 수리남에서 사업하던 K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온다. 그는 조봉행 때문에 사업을 망친 피해자였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국정원은 K씨와 접촉한다. 40대 중반인 그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매가 매우 날카로운 강인한 인상이었다.

그에 따르면 직장에 다니던 K씨는 2006년 초 친한 친구가 수리남에서 선박용 특수용접봉을 판매하는 사업이 유망하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K씨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사업자금 2억원을 모아 그해 4월 용접봉을 컨테이너에 싣고 수리남으로 갔다.

당시 친구의 현지 사업파트너가 조봉행이었다. K씨는 수리남에 들어간 뒤 수도 파라마리보 외곽에서 조씨 일행과 함께 생활했다. 조씨가 용접봉 판매 중개를 했는데, 그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 큰 손해를 입었다. K씨는 달리 방도가 없자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국정원은 K씨에게 “조봉행을 꼭 잡아야겠는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며 도움을 요청한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에 K씨는 한동안 고심하다 받아들인다. 그는 “나중에 내 아이들(1남2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아빠이고 싶다는 생각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조봉행 체포작전을 수리남의 유명 호수 이름을 딴 작전명 ‘블롬메스테인’으로 명명했다. K씨는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봉행 사이의 마약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K씨는 조봉행에게 접근해 신뢰를 얻는다. 조씨는 K씨를 자기 집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K씨 주변에는 늘 조씨의 부하들이 따라다녔다. 그는 신변 안전을 위해 권총을 지니고 다녔고, 잠잘 때도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국정원 측과는 비밀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정원과 통하하다 조씨의 한국인 부하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급해진 K씨는 그를 한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에 나섰고 국정원과 통화도 시켜줬다. 가까스로 그의 마음을 돌려 개과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그가 K씨를 배신하면서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며칠 후 A씨는 덩치 큰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던 것이다. 다급했던 K씨는 흑인들에게 끌려가며 조봉행을 불러 달라고 소리쳤다. 얼마 후 조씨가 나타나자 “장난이었고 나를 못 믿겠거든 알아서 하라”며 기지를 발휘했다.

당장 마약거래를 위해 K씨가 아쉬웠던 조봉행은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는 의심을 거둬들인다.

2008년 초 국정원은 조씨를 현지에서 검거하기 위해 작전을 편다. DEA에 도움을 요청했고, 유사시 특공대까지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마약이 보관돼 있는 장소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 임무는 K씨의 몫이었다.

K씨는 비밀창고에서 마약더미를 확인하고 국정원에게 알렸다.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지만 처음 약속과는 달리 적극 나서지 않았다.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씨를 현지에거 검거하려고 했던 국정원과 K씨의 계획도 틀어졌다.

같은 해 9월 K씨는 조봉행에게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한다. 조봉행 일행은 K씨를 차에 태워 눈을 가린 후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K씨를 태운 차량은 약 20분 정도 시내를 가로질러 한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실내로 들어서자 코가인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1.2t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거래가로는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10월에 K씨는 조씨에게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며 일시 귀국했다. 그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국정원, DEA와 함께 조봉행을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잡기로 새 작전을 짠다. 미국령 ‘괌’을 대상지로 정했지만 조씨가 쉽게 넘어올리 없었다.

K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중개했다. 가공의 미국 마약상을 내세워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조씨를 애타게 만들며 괌으로 유인했지만 예상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계획을 수정해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했다.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고 현지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K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자”며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에서 접선하기로 합의했다. 1차 접선지는 수리남에서 가까운 도시 벨렘으로 정했으나 수리남 마약조직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어 상파울루 과률류스 공항을 최종 접선지로 바꿨다.

수리남 밖으로 나오는 걸 한사코 거부하던 조씨를 설득해 유인하는데 성공한다.

2009년 7월23일 오후 5시쯤 브라질 상파울루의 과률류스 국제공항. 권총과 방탄조끼로 무장한 브라질 연방경찰들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해 있었다. 사업가로 위장한 국정원 요원과 K씨가 입국장 앞에서 조씨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브라질 경찰이 철수하겠다고 하자 K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조봉행 측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K씨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늦는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리자”며 브라질 경찰을 설득했다. 사실 이 통화는 철수를 늦추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다시 초조하게 2시간쯤 기다리자 마침내 조봉행과 조직원 2명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대기하고 있던 브라질 경찰이 순식간에 덮쳤다.

이로써 약 2년간의 작전 끝에 조씨를 검거할 수 있었고, 여기에는 국정원, 미국‧브라질 당국, 민간인 협력자 K씨가 참여한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범죄인 인도 결정으로 조씨는 체포된 지 약 2년 만인 2011년 5월 국내로 압송돼 법정에 섰다.

조씨는 국내에서 일반인을 운반책으로 모집해 대량의 코카인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밀수한 혐의(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관한특례법위반)가 적용됐고, 같은 해 9월30일에 열린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에 벌금 1억원을 선고받는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수리남 국적을 갖고 있고 외국에서 발생한 범행이라 해도 범행이 계획적, 조직적이며 사회적 해악이 크다”며 “운반책들이 체포돼 수감되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한 점을 고려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봉행은 전남 해남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지병인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수감 5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난다. 광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돼 2016년 4월19일 사망했다. 당시 나이 64세였다.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가 사건 13년만에 드라마 ‘수리남’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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