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가정주부 성폭행 살인사건
1998년 10월27일 오후 1시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부 문아무개씨(34)는 초등학생 남매의 하교를 기다리며 혼자 집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낯선 방문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집을 보러 왔다”고 말한 뒤 문씨가 혼자있는 것을 알고는 흉기로 위협하고 양손을 결박했다. 그리고 겁에 질려 있는 문씨를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했다. 숨진 문씨를 처음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은 11살 초등학생 딸이다.
범인은 문씨 남편의 체크카드를 훔쳐 10차례에 걸쳐 151만원을 빼내갔다. 관할 도봉경찰서는 형사‧강력팀 전체를 투입해 수사본부를 꾸리고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용의자의 체액 등을 확보해 이를 통해 혈액형(AB형)을 확인했다.
용의자가 체크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곳에서 흑백사진도 확보했다. 사건은 금방 해결될 듯 했다. 방송에서도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20대 후반으로 윤곽이 뚜렷하고 얼굴이 약간 네모난 편이며 최소한 170cm가 넘는 큰 키”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했다.
이렇게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수사는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2년 동안 수사를 벌였으나 끝내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수사본부도 해체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김응희 경위(54)는 사건 당시 도봉경찰서 막내 형사(경장)로 수사에 참여했다. 김 경위는 다른 경찰서로 전보되고, 수사본부가 해체되면서 더 이상 수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피해자 딸의 눈물과 절망하던 표정이 한 순간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2016년 초 김 경위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광역1팀으로 전근했다. 그는 ‘기회는 이때다’하며 18년 전 사건 파일을 다시 꺼냈다. 김 경위는 이 사건 용의자의 흑백사진을 지갑에 갖고 다니며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손으로 꼭 잡고 말거야”라며 검거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부터 18년 전으로 돌아가 용의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2013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강간살인의 경우 유전자(DNA)가 있으면 시효가 10년이 늘게 돼 있어 시간여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사건 당시에 비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고, 과학수사가 발전했다는 것에 큰 기대를 걸었다.
김 경위는 당시 용의자가 20대일 것으로 보고 1965년부터 1975년 사이 출생자 중 강력범죄 전과자를 전수 조사해 8000명을 간추렸다. 그 다음으로 빛바랜 흑백사진과 전과기록에 있는 사진을 대조하고, 혈액형이 같은 우범자 125명을 선별했다. 이중 우선순위 10명을 정해 추적에 들어갔다.
첫 번째 우범자부터 조사를 실시하다가 세 번째 우범자가 유력하게 용의선상에 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흑백사진의 얼굴이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바로 오아무개씨(45)였다. 김 경위가 오씨의 전과기록을 조회해 보니 절도‧강도는 있었으나 성폭행은 없었다. 당시에도 이런 이유로 오씨는 용의선상에서 배제됐었다. 문제는 오씨의 DNA 확보였다.
이를 위해 김 경위는 오씨의 거주지인 경기도 양주의 한 아파트에서 잠복했다. 오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버린 담배꽁초만 확보해 DNA를 대조하면 범인인지 아닌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오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김 경위.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체 오씨는 연신 담배연기를 뿜고 있었고, 어느새 휙 하고 꽁초 하나를 버렸다. 김 경위는 재빨리 꽁초를 수거해 DNA를 대조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일치했다.
순간 김 경위는 “이놈, 드디어 잡았다”고 탄성을 질렀다. 김 경위를 비롯한 광역수사대 형사대는 오씨의 주거지 인근에서 그를 검거했다. 이때가 11월18일, 사건 발생 18년 22일 만에 진범을 검거한 것이다.

피해자의 가정을 파괴한 후 태연하게 지내던 오씨. 그는 체포 순간까지 뉘우침은 커녕 오리발만 내밀었다. 경찰이 오씨를 에워싸고 “강간,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고 하자그는 “아니 무슨 말이세요?” 라며 마치 죄없는 사람을 체포하는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오씨는 아이까지 있는 가장으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오씨의 범죄행각은 변한 것이 없었다. 청소년 성매매 알선을 하고 있었으며, 여성을 상대로 한 특수강도 전력이 세 번이나 있었다. 지난 18년 동안 범죄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오씨는 경찰에서 “전셋집을 얻으려고 생활정보지를 보고 방문했다가 ‘보증금도 없이 집을 보러 다니느냐’는 말에 격분해 충동적으로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검찰은 2016년 12월 오씨를 강간 살인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오씨는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강간혐의는 인정했지만 살인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오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여 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씨는 단지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는 이유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숨진 어머니를 처음 발견한 딸이 겪어왔을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오씨는 이에 항소했고,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18년 동안 죄책감도 없이 일상생활을 했다”며 “여성을 성욕 해소 도구로 여기고 생명까지 빼앗은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김 경위를 1계급 특진시켰다. 이번 일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끝까지 추적해서 범인을 잡겠다는 김 경위의 끈질긴 집념과 과학수사의 발전이 구천을 떠돌고 있던 한 억울한 피해자의 한을 풀었다. 아울러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유족들의 억울함도 풀어줬다. 유족들도 김 경위에게 “범인을 잡아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이 적지 않다. 김 경위와 같은 경찰관이 많아져서 억울한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이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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