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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


2009년 4월20일 전북 정읍에서 사채업을 하던 이아무개씨(37)가 실종됐다.

이날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간 그는 휴대전화가 꺼진 채 다음날 아침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씨의 아내는 남편의 전화로 수십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이씨는 친형이 운영하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면서 화물차 기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는 ‘쩐주’ 역할을 했었다. 친형인 이삿짐센터 대표 이씨(49)는 21일 오전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런데 평소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냉장고 문이 열려 있었다. 오전 10시쯤 동생의 아내에게서 이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버님, 애들 아빠가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아 걱정돼요”라고 했다.

이씨는 제수씨와 동행해 정읍경찰서 상동지구대를 찾아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역 주변의 여관과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씨는 저녁 때쯤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무실 바닥과 화장실 등에서 다량의 핏자국이 발견됐다. 이씨는 동생의 실종이 오버랩되면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씨는 곧바로 경찰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센터 사무실에서 10여점의 혈흔을 채취했으며 실종된 이씨의 것으로 확인되자 강력사건으로 전환했다.

정황상 이씨는 사무실에서 살해된 후 시신이 다른 곳에 유기된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탐문을 벌여 이씨가 실종 당일 오후 8시에 센터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를 찾아냈다.

이씨의 휴대전화는 오후 9시30분쯤 사무실이 있는 공평동 인근 기지국 관할구역에서 전원이 꺼졌다. 경찰은 이씨가 살해된 시간을 오후 8시~9시30분으로 추정했다.


며칠 후 이씨의 승용차는 번호판이 바뀐 채 정읍 아산병원에 세워져 있었다. 지문감식 결과 이삿짐센터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성치영(당시 39세)의 지문이 검출됐다. 경찰은 성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하고 그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먼저 이씨가 실종된 날 그의 알리바이를 캐물었다. 경찰은 성씨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아내 A씨를 불러 조사했다.

그런데 21일 새벽 2시30분부터 4시까지 성씨와 아내의 진술이 엇갈렸다. 성씨는 “집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고 했지만 아내는 “남편이 차를 타고 나갔다”고 했다.

경찰은 A씨에게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20일 성씨는 전주지방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평소 도박에 빠져있던 그는 빚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가족(부인과 딸 셋)을 부양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은 ‘파산’ 밖에 없었다. 성씨는 재판이 끝난 후 아내에게 “오후 5시20분쯤 정읍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A씨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가족들과 저녁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씨는 오후 8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았고, 언제 들어오겠다는 전화 한 번 없었다. 그러다 오후 9시30분쯤 성씨는 엉망인 몰골로 귀가했다. 머리카락과 바지가 흠뻑 젖어 있었고, 옷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마치 흙탕물에서 나뒹군 모습이었다. 손등에는 상처까지 있었다. “옷과 손이 왜 그러냐”는 부인의 질문에 성씨는 “넘어져서 다쳤다”고 말할 뿐이었다.

성씨는 샤워한 후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2시30분쯤 집을 나갔는데, 처음 보는 흰색 SM3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는 1시간쯤 뒤 들어와 다시 잠을 청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정황상 성씨가 이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살인했다는 물증이 없어 체포할 수 없었다. 성씨는 언제 시신이 발견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그러다 경찰로부터 “센터 대표와 함께 경찰서에 와서 조사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사망이 더욱 좁혀오자 그는 도피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성치영은 4월24일 정읍 신태인역 앞에서 부인과 세 딸들을 만났다. 이들은 부안으로 이동해 부안터미널 근처의 한 모텔에 투숙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성씨가 “2,3일 머리 좀 식히고 오겠다”고 말하자 아내는 현금 10만원과 현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를 건네고, 근처에서 양말과 속옷을 사주고 헤어졌다. 성씨가 잠적한 후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를 쫓았지만,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해 기소 중지했다.

이후 성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4년 7월 이삿짐센터 사무실에서 약 3㎞ 떨어진 공사장 폐정화조에서 공사를 하다 백골화 된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결과 실종된 이씨로 확인됐고, 10여 군데 흉기에 찔린 상태였다. 사체 좌우 늑골 10여 곳에 예리한 흉기 자국이 있었고, 걸친 옷에서도 흉기에 찔린 구멍이 있었다.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경찰은 성씨 소재 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런 사이 경찰의 추가 수사를 통해 살해 당시의 정황도 드러났다. 살해 전날 이삿짐센터에서는 도박판이 벌어졌다. 성씨는 갖고 있던 돈을 모두 잃자 전주인 이씨에게 50만원을 빌렸지만 또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다음날 이씨는 사무실에서 성씨를 보자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하지만 성씨가 “파산해서 못 갚는다”고 했고, 두 사람은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성씨가 이씨를 흉기로 살해했고, 다음날 새벽 이씨의 승용차에 다른 차 번호판을 훔쳐 달고 시신을 유기했던 것이다.

성씨는 현재 피의자 소재불명이라는 이유로 기소중지 상태다. 이 사건은 다른 미제사건과 달리 범인으로 확실시되는 유력 용의자가 존재한다. 즉 성치영을 잡는 순간 사건은 해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주 중인 성씨를 빨리 검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 제보가 절실하다. 그의 소재를 알고 있거나 비슷한 사람을 봤을 때는 전북경찰청 미제수사팀(063-280-9371)으로 제보하면 된다.

성치영은 누구인가

전북 부안 줄포면 출신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정읍에 정착해 잠적 전까지 화물차 기사로 일했다. 정읍에서 민간방범대원으로 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 누구보다 경찰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키 164cm의 왜소한 체격이다.
경찰은 성씨가 신분을 세탁해 국내에 살고 있거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외로 밀항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성씨의 생활반응이 국내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헤어질 때 받아간 현금카드를 쓴 기록이 없다.
특히 그는 희귀질환인 ‘베체트병’을 앓고 있다. 입안과 성기 등에 궤양이 발생하고,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
만약 약을 끊게 되면 증상이 악화되고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경찰은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의뢰해 이 병으로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을 전수 조사했지만 성치영으로 의심되는 인물은 찾지 못했다. 이걸로 보면 성치영이 국내에 없거나 이미 사망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피해자의 유족은 숨진 이씨가 키 170㎝, 몸무게 80㎏의 거구였기 때문에 왜소한 체격의 성치영 혼자 제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많았던 점 등을 들어 공범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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