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갔다 4개월만에 식물인간이 된 안준현 하사
부산에서 태어난 안준현씨는 2010년 동의과학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군 입대를 마친 후 학업에 정진하기 위해 같은해 3월13일 공수특전단에 자원입대한다.
기초 훈련을 마친 그는 3개월 후인 6월25일 하사로 임관 후 인천의 제9공수특전여단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이후 ‘주특기 훈련’에 참여한다.
안준현 하사는 자원입대한 만큼 ‘특전사 대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누구보다 훈련에도 열심히 임했다. 어느덧 5주의 주특기 훈련기간도 막바지에 왔다.
훈련 마지막 주인 7월10일 금요일 아침 동료 대원들과 교관들이 연병장에 집합해 힘찬 구령과 함께 체력단련 구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전 8시57분쯤 구보하던 대원 한 명이 갑자기 연병장에 쓰러진다. 그가 바로 안준현 하사다. 훈련교관인 이아무개 중사가 안 하사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이 중사는 온 힘을 다해 60여 회에 걸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안 하사는 깨어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는 훈련 중인데도 응급상황에 대비한 의무차량이나 후송차량이 배치돼 있지 않았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훈련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나 대비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1초가 다급했던 때에 후송차량이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군은 부대 의무대로 후송된 안 하사에게 즉각적인 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
동료 병사들을 동원해 얼음으로 열을 식히며서 손발을 주물러줬을 뿐이다. 군의관은 외상이 있는지만 살피면서 침대에 눕혀놓았고, 상급 병원으로 신속히 후송하지도 않았다. 안 하사의 상태로 보면 얼음찜질이나 주물러서 될 상황이 아닌데도 군은 무사 안일하게 대처하며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던 것이다.
안 하사의 경우 심폐소생술을 실시해도 깨어나지 않은 응급상황이었다.
그러나 군은 안 하사가 쓰러진 지 1시간 후인 오전 9시58분쯤(군의 주장)에야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했다.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골든타임’은 초기 1~2시간이다. 심폐소생술의 경우 최소 5분에서 최대 10분 이내 실시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할 뿐 아니라 살린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수도병원은 응급환자로 후송된 안 하사에게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 담당 군의관은 CT촬영을 하고 출혈 등의 외상이 있는지만 살펴보며 아까운 시간을 보냈다.
심폐소생술을 해도 깨어나지 않는 안 하사를 부대에서 무려 1시간이나 방치한 것도 이해 안 되지만 의식이 없이 후송돼온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은 수도병원도 이해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하사의 어머니는 “준현이가 몸을 비틀며 몸부림치자 1층 중환자실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결박시키고, ‘미세하게 자가 호흡을 하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하다가, 토요일이라고 오후 2시쯤 간부 군의관들이 다 퇴근했다고 한다.

간부들이 퇴근 후에 김아무개 군의관의 지시로 3층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여전히 침대에 결박한 상태로 눕혀 놓는 것 외에 다른 조치는 없었다”며 기가 막혀 했다. 부대에서 안 하사 부모에게 연락한 것은 쓰러진 지 3시간 후인 정오(12시)쯤이다. 이아무개 중대장(대위)은 안 하사의 사고 사실을 알렸으나 상태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안 하사의 어머니는 “중대장에게 전화가 왔기에 ‘준현이 상태가 어떠냐? 위중하냐? 숨은 쉬냐?’고 재차 물었더니 ‘위급하거나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단숨에 수도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었던 안 하사의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형 재귀씨에게 연락했다. “형님, 준현이가 수도병원에 있다는 데 먼저 가주세요. 저도 곧 채비하고 가겠습니다.” 안 하사의 큰아버지는 이동 중에 수도병원에 연락해 조카의 상황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위험하거나 응급상황은 아니다”는 말을 들었고, ‘큰일은 아닌가 보구나’하며 택시가 아닌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해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2시쯤 수도병원에 도착한 작은 아버지는 조카의 상태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별 것 아니다’고 했던 조카는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몸을 뒤틀고, 동공의 초점이 없었으며 몸에서는 열이 나고 호흡이 미세하게 감지됐다. 도무지 살아있는 사람으로 볼 수가 없었다.
재귀씨는 “조카를 시설이 좋은 민간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급한 가족의 목소리에 군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민간병원 후송 요구를 했는데도 3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 안 하사의 몸에서는 고열이 났고, 고통스러운지 침대에서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재귀씨는 조카를 “빨리 큰 병원으로 후송시켜 달라”고 재차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때서야 퇴근했던 병원장, 군의관, 학생단장이 나타나서 보호자와 동료 병사들을 퇴실시키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 다음 보호자 결제를 받고 군 내부 결제 등의 절차를 밟은 후에야 군 협력병원인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후송했다. 민간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이미 골든타임은 지난 상태였고, 너무 늦은 후송이었다.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후 안 하사의 머리 뒤 부분에서 빨갛게 충혈된 외상을 발견했다. 뇌압이 계속 올라가자 내과에서 뇌신경과로 옮겼고, 주치의 집도로 머리를 열어보는 수술을 진행했다.
이때 대뇌 부분에서 푸르스름한 멍 자국이 발견됐다. 다시 머리를 닫았으나 뇌압이 계속 올라갔고, 주치의는 머리 뒤 양쪽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고, 이 과정에서 머리에 고여 있던 물을 주사기로 빼내기도 했다.
안 하사의 수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두 달 후 제거한 머리뼈를 덮는 수술을 진행했으나 이것이 감염됐다며 다시 머리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머리 뒤 보호 뼈가 없는 상태로 1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가 인공뼈로 다시 봉합수술을 했다.
안 하사의 머리 양쪽이 움푹 패인 모습인 것도 이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안 하사의 어머니는 “준현이는 CT 진단을 받은 결과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대뇌 상태로 봐서 소리를 듣는 기능은 살아있으나 판단능력이 없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다. 음식은 관을 통해 식도에 투입해 섭취시키고 있으며, 대·소변은 배출시 받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뇌척수 액이 배출되지 않아 뇌압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뇌에 관을 연결해 뇌척수 액을 복강까지 흐르게 한 뒤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션트수술’을 해 놓은 상태다.
안 하사가 정상인으로 돌아가기에는 머리 부분이 너무 많이 손상됐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회복은 어렵다”고 진단한 상태다. 그 후 안 하사는 서울대병원에서 나와 수원에 있는 베데스다 요양병원으로 옮겨 6년 넘게 통원치료를 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부산에서 가까운 창원 소재 요양병원으로 내려왔다. 안 하사의 어머니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6년 넘게 간병을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혈압 약을 먹고 있는데, 신경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우리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의 곁에는 어머니 정양심씨가 지키고 있다. 안씨는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식물인간’ 상태다. 곁에 있는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하고, 병실 천정을 바라본 채 눈만 깜빡일 뿐이다. 대뇌 손상이 돼서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다.

준현씨는 가끔 무엇엔가 놀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입술을 깨무는 일이 있는데, 이때 빨리 조치 안 하면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흥건하게 나온다.
이럴 때마다 어머니는 “준현아! 준현아!” 를 부르며 놀란 가슴을 쓸어 담는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있다.
안 하사의 부모는 국가에 아들 사건을 재조사해 진실을 규명해 달라는 ‘재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서를 넣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팽개치는 국가라면 어느 누구의 가슴에서 충성심이 우러나올 수 있을까. 국가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사고를 당한 군인들에 대해 억울함이 없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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