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모방한 살인조직 ‘막가파 사건’
1994년 9월19일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국은 충격에 빠졌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살인공장까지 만들어 놓은 이들은 ‘부자들을 증오’하며 행동강령까지 만든 후 5명을 납치‧살해했다. 지존파 조직원 6명 전원에게는 사형이 선고되며 사회와 격리됐다. 그러나 이들이 뿌려놓은 범죄의 씨앗은 짧은 시간에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았다.
1996년 7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이 주연을 맡은 영화 ‘보스’가 개봉된다. 조씨가 18세에 범죄조직을 결성해 세력을 키우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조직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범죄영화다.
경기도 화성에 살던 최정수(20)는 이 영화를 보고 조양은을 깊이 흠모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존파 같은 살인조직을 만들고, 조양은 처럼 세력을 키워 전국적인 범죄조직의 ‘보스’가 되기를 꿈꿨다.
최씨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4살 때 어머니가 가출해 홀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아버지와 자주 싸우면서 집을 나와 있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범죄의 늪에 빠져들며 폭력 등 전과 8범이 됐다.
최씨는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와 불만으로 가득했다.
96년 9월 중순 최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박지원(20·전과 3범), 정진영(20·전과 7범) 등과 만났다. 이들 세 명은 지존파를 흉내내 ‘막가는 인생이란 뜻’의 ‘막가파’를 결성했다. 최정수가 두목, 박지원은 부두목, 정진영이 행동대장을 맡았다.
얼마 후 경기 성남 모란시장의 한 단란주점에는 기존 3명 외에 유삼봉(20)과 김진오, 박종남 등 6명이 추가로 모였다. 이들이 막가파에 합류하기로 하면서 조직원은 총 9명이 됐다. 하나같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거나 졸업한 뒤 절도·폭행 등의 전과가 있었다.
막가파는 전국 규모의 폭력조직을 만들기 위해 자금부터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주로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납치해 돈을 빼앗고 죽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존파처럼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배신하는 사람은 죽인다 ▲화끈하고 멋있게 살다가 죽는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기로 맹세한다 등이었다. 이들은 범행에 앞서 서울 청계천에서 회칼 등의 흉기를 구입했다.
같은 해 10월5일 최정수와 박지원, 정진영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한 빌라 앞에 잠복하고 있었다. 3일 전 외제 승용차를 몰고 가던 김아무개씨(여·41)를 우연하게 보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전 2시쯤 김씨가 승용차(혼다 어코드)를 몰고 나타나자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납치하자는 뜻이었다. 김씨는 논현동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영업을 끝내고 귀가하던 참이었다.
막가파 일당은 김씨를 흉기로 위협해 훔쳐 타고 다니던 소나타 승용차로 납치했다. 겁에 질린 김씨의 눈을 가리고 청테이프로 손을 묶어 승용차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김씨가 갖고 있던 현금 40만원과 현금카드 4개를 빼앗아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이들은 수원으로 차를 몰고 가 김씨를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이후 다시 서울로 와서 김씨의 승용차를 훔쳐 오전 9시쯤 제일은행 수원지점 앞에 도착했다. 은행 영업이 시작되자 김씨의 신용카드로 900만 원을 찾았다.
막가파 일당은 김씨를 경기 화성군 송산면 고정리 염전지대에 있는 소금창고로 끌고 왔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차량 한 대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도로가 좁아 평소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곳이다. 최씨 등은 미리 준비한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김씨의 옷을 회칼로 모두 찢었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김씨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한 김씨는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때 최정수가 담배 2개피를 꺼내 김씨에게 주며 피우게 하고 “돈이 더 있냐”고 물었고, 김씨가 “더는 없다”고 말하자 그대로 흙을 덮어 생매장했다. 이렇게 김씨는 막가파 일당들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대구가 고향인 김씨는 3남1녀 가운데 큰딸로 태어났다.
1986년 상경해 경양식집을 운영하다 95년부터 단란주점을 인수해 업종을 바꿨다. 여기서 번 돈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남동생이 분식점을 내도록 도와주고, 대구에 있는 부모에게 꼬박꼬박 용돈을 챙겨주던 착한 딸이었다.
김씨가 타고 다니던 외제승용차는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2천7백만 원을 주고 구입해 직접 운전해 타고 다녔다.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녔다고는 하나 그가 살던 집은 9평짜리 원룸이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독신으로 혼자 살았다. 김씨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가족들은 실종 7일째인 10월12일 밤 11시쯤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10월28일 새벽 3시30분쯤 두목 최정수 등은 숨진 김씨의 혼다 승용차를 몰고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인근을 지나다 검문 중인 경찰과 마주쳤다.
경찰은 이들이 탄 차량번호를 조회해보고 범죄용의차량으로 신고 된 차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관이 “경찰서로 같이 가줘야겠다”고 말하자 최정수는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잡아가느냐”고 가볍게 항의하고는 순순히 따라갔다.
경찰은 최씨 등을 심문했는데 의외로 범행을 쉽게 자백했다.
김씨를 살해한 사실과 생매장한 장소까지 실토했다. 경찰은 화성 염전지대의 소금창고에서 숨진 김씨의 주검을 발굴했다. 소금창고에는 가로 1m 세로 2.5m의 나무판자가 창고입구 오른쪽에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땅을 판 듯 흙더미가 30cm 가량 쌓여 있었다.
경찰은 막가파 일당 소탕에 나서 조직원 9명을 모두 검거했다.
최정수는 김씨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살려주면 신고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또 흉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막상 칼로 찌르려고 하니 옷에 피가 묻을까봐 그냥 묻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증오하며 잘 사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싶었다”며 증오심을 드러냈다.

막가파 일당은 살인과 사체유기, 범죄단체 결성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재판은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갔으나 살인에 직접 가담한 세 명 중 두목 최정수는 사형, 부두목 박진영과 행동대장 정진영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나머지 6명에게는 가담 정도에 따라 징역 6년에서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항소심 선고 후 정진영은 퇴청하는 재판부를 향해 “×새끼야, 네가 판사냐” “우리가 평생 징역 살 줄 아느냐. 나가면 죽여 버리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최정수의 사형집행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사형집행은 김영삼 정부 때인 97년 12월30일에 있었으나 최씨는 대상에서 빠졌다. 그는 지금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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