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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영유아 연쇄 유괴 살인사건


충남 보령시 대천동의 옛 지명은 ‘대천시 대천동’이다. 1995년 보령군과 통합되면서 지금의 지명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초반 대천동 구시마을에서는 영유아 연쇄유괴살해사건이 발생한다.

옛 장터였던 이 마을은 대천천과 장항선 철로를 사이에 두고 탄광 주변에 허름한 주택들이 모여 빈민촌을 형성했다. 당시만 해도 철길이 지나고 아래에 냇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은 대부분 막노동이나 소규모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주거형태가 불안정하다보니 주민들은 이사가 잦았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몰랐다. 주택은 단층으로 돼 있고, 대문이 허술해 외부 침입이 쉽고, 파출소가 한 곳도 없어 치안이 취약했다. 마을 청장년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가 순찰을 돌았지만, 범죄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1991년 8월16일 새벽 대천동에 살던 김아무개씨(33세)의 생후 2개월 된 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씨 부부는 전날 밤 아들을 사이에 두고 잠이 들었다. 새벽 5시45분쯤, 김씨 아내는 우유를 먹이기 위해 잠에서 깼다.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은 “한밤에 같은 방에 자던 아이를 잃어버리는 한심한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줬다. 갓난아이가 없어지자 마을은 잔뜩 긴장했다.

주민들은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날 아침 잡초제거 작업에 나선 주민들에 의해 아이는 대천천 둑방 잡초더미에서 발견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이는 풀 속에 버려져 있었고, 범인이 아무렇게나 던진 듯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온 몸이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상태였다. 경찰은 사건을 단순실종으로 취급하고, 수사에 나섰으나 범인을 찾지는 못했다.


김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집은 4가구 가 함께 사는 다세대 주택으로 아기가 있는 집은 우리뿐이었다. 범인이 사전에 우리 집을 범행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더구나 범인은 두 개의 대문 중 한쪽 대문이 잠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도주로로 이용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범인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현장 답사를 거쳐 범행에 나섰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확히 6개월 뒤에 대천동이 다시 술렁였다. 1992년 2월16일 새벽 2시쯤, 같은 마을에 살던 가아무개씨의 생후 15일된 아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에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고 있던 새벽에 유괴됐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이 총 동원돼 아이를 찾아 나섰다. 당시는 한 겨울 매서운 추위가 전국을 휩쓸 때였다. 생후 15일된 아이가 견디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몇 시간 만에 아이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2개월 만에 숨지고 말았다. 장시간 추위에 노출돼 폐렴 등 합병증이 온 것이 원인이었다.

경찰은 첫번째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모든 일이 두 번째까지는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다. 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면 ‘우연’이 아닌 누군가의 계획이나 의도에 의한 것이 된다.

2차 사건이 발생한 지 4개월 만인 6월4일 새벽 1시쯤, 같은 마을 주민 유아무개씨의 생후 4개월 된 딸이 실종된다. 이번에도 가족들과 잠을 자는 사이 새벽녘에 유괴됐다.

당시 범행장소 중 한 곳인 대천천 구시다리

경찰의 수색 끝에 아이를 찾아냈으나 온몸에 타박상이 있었다. 또 콘크리트 바닥에 집어 던져 머리가 많이 다친 상태였다. 유씨의 딸은 병원으로 옮겨져 3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사망했다.

도대체 누가 아이들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마을은 점점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3개월이 흘러갔다.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해괴한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범인의 생각은 달랐다.


9월7일 마을주민 김아무개씨(43세)의 집에 산모인 강아무개씨가 생후 5일된 딸을 안고 찾아온다. 김씨 집에 세 들어 살던 언니한테 산후조리를 하러 온 동생이었다. 다음날 새벽 마을이 또 발칵 뒤집혔다. 강씨의 딸이 똑같은 방식으로 사라진 것이다.

날이 밝자 주민들이 마을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이는 끝내 찾지 못했다.

1‧2‧3차 사건에서 범인은 아이를 마을 인근에 유기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언니 집에 산후조리를 왔던 강 씨는 하루 만에 아이를 잃어버리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망연자실해 했다. 그녀는 한동안 실성한 상태로 딸을 잃은 슬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아이의 생사는 지금까지도 불투명하다.

연이어 아이들이 없어졌지만 경찰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한 마을에서 같은 사건이 4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발생했으나 경찰은 비공개 탐문수사에 의존하다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다.

4차 사건이 발생한 후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사건의 악몽이 점차 잊혀지는 듯 했다. 꼭 잠갔던 문이 느슨해질 무렵인 1994년 8월16일, 김아무개씨(42)의 딸 A양(5)이 실종됐다. 1차 사건이 발생한 후 정확히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씨 집은 부엌과 안방, 뒷방이 일직선으로 배열된 월셋집이었다. 광부였던 김씨는 광산에서 일하다 진폐증(분진을 들이마심으로써 폐에 장애를 일으키는 병)에 걸려 방을 따로 쓰고 있었다. 김씨 가족은 이날 오전 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5시30분쯤 일어나보니 자고 있던 A양이 없어졌다. 가족이 잠자리에 든 후 3시간30분 사이에 누군가 A양을 유괴한 것이다. 출입문 앞에 세워둔 유모차가 옆으로 비켜서 있던 게 범인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김씨는 딸을 찾다가 오전 11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리고 아이는 12시간여만인 이날 오후 6시쯤 집에서 400여m 떨어진 궁촌동 태성식당 뒷논에서 논주인 조아무개씨(53)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A양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고, 예리한 흉기로 배 2곳이 찔린 상태였다.

경찰은 ‘부검의가 없다’는 이유로 이틀이 지나서야 시신을 부검했다. 사망원인은 목졸림이었다.

범인이 A양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예리한 흉기로 복부를 갈라 간의 일부를 적출했던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예리한 칼을 사용하고, 야간에 특정 장기의 일부를 떼어내기 힘든 점 또 장기를 적출하기에 필요한 만큼만 복부를 절개한 점으로 미뤄 전문 범죄꾼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부랴부랴 잘려진 간의 일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0일 후에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2m 떨어진 농수로에서 물위로 떠오른 잘라낸 간의 일부를 발견했다. A양 사건은 범행이 대담하고 엽기적인데다 끔찍해서인지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더 이상 쉬쉬하며 비공개로 할 수 없었던 경찰은 이때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 인근에서 과도와 여자스타킹, 면장갑을 지닌 채 주위를 배회하던 이아무개씨(34)를 붙잡았지만, 조사결과 혐의가 없어 석방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A양의 옷 등 유류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경찰은 유류품을 찾기 위해 근처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실종 장소(집)와 시신 발견 장소가 가까운데도 근처에서 옷가지나 흉기, 핏자국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범인이 시신발견 장소에서 A양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경찰도 “다른 곳에서 살해한 뒤 시신을 집 근처로 옮겨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렇듯 범인은 사건 현장에 전혀 증거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난치병 환자’나 ‘변태성욕자’를 의심했다. 특히 A양의 간 일부가 없어진 점을 들어 난치병 환자의 범행에 무게를 뒀다. 당시 “난치병 환자가 살아있는 사람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잘못된 속설도 있었다.


경찰은 관내 보건소에서 확보한 난치병환자 63명의 명단을 비롯해 호구조사와 탐문수사를 벌였다.

또 특이질환자 등 100여 명에 대한 행적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또 A양 가족과 원한관계에 있는 특정인의 사주를 받은 전문가의 소행일 가능성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용의자의 윤곽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수사가 답보상태에 이르자 경찰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였다. 동네의 불량배, A양 부모 주위 사람들, 이웃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불려가 알리바이를 대야했고, 그들 부모와 어울리던 사람들은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에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밤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면 애들 잡아가는 사람 귀신이 어슬렁 거린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마을사람들은 열대야 속에서도 문을 열지 못했다. 잠자는 아이를 다시 보느라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주민들은 하나 둘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A양의 가족도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는 진전이 없이 헛바퀴만 돌았고 결국 미궁으로 빠졌다. 2009년 8월 마지막 5차 사건의 공효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3년 동안 4명의 아이가 납치되고 한 명의 아이가 살해됐는데도 ‘완전 범죄’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범인은 지금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지도 모른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영유아들만 집중 노렸다.
1차에서 4차까지의 피해자들은 모두 태어난 지 4개월 미만의 영유아들이다. 1차(2개월), 2차(15일), 3차(4개월), 4차(5일)다. 범인이 왜 언어구사력이 없는 아기들을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반면 5차 피해자인 A양의 나이는 5살이다. 이걸 두고 1~4차 사건과는 다른 별개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유괴 당시 잠자던 방의 구조와 잠든 순서를 보면 범인이 A양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A양이 자던 안방은 아주 비좁았다. 잠든 순서는 방문을 기준으로 A양, 동생(12개월), 엄마 순이었다. 3명이 몸을 눕히기도 빠듯할 정도였기 때문에 셋이 밀착해 잠을 자고 있었다.
만약 엄마 옆에서 자고 있던 남동생을 데려갔다면 가족들이 눈치 챌 수도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범인은 동생을 유괴하지 못하고 방문에서 가장 가깝게 자고 있는 A양을 대신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1차·2차·5차 범행 ’16일’에 일어났다.
1~5차까지의 범행 중 1차(91년 8월16일), 2차(92년 2월16일), 5차(8월16일)의 날짜가 공교롭게도 ’16일’에 일어났다. 더욱이 1차 범행 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2차 범행이 일어났고, 정확히 3년 후에 5차 범행이 발생했다. 이런 것을 볼 때 ’16’이라는 숫자와 범인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 수 있다.

3.’새벽 시간’을 노렸다.
1차에서 5차까지의 범행은 모두 자정에서 새벽 5시 사이에 일어났다. 이 시간대는 사람들이 가장 깊게 잠에 빠져있을 때다. 범인은 거리에 인적이 드물고 범행이 용이한 새벽 시간대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4.범행 대상이 모두 반경 300m이내였다.
피해자들이 유괴된 장소는 모두 대천동 반경 300m 안에 위치하고 있다. 1차 김씨와 2차 가씨 집의 거리는 200m, 2차와 3차 유씨 집과는 100m, 3차와 4차 산모(강씨)가 있던 집은 100m였다. 5차 A양의 집도 반경 300m 안에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모든 구역을 표시해 원을 그리면 반경 300m가 채 되지 않는다.

5.피해자가 대천천변에서 발견됐다.
1~3까지 유괴됐던 아이들이 발견된 곳은 대천천변이었다. 4차는 생사가 불투명하다. 5차 A양은 천변 인근의 논에서 발견됐다. 범인이 아이들 유기 장소로 왜 대천천변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6.가랑비가 내리던 날에 범행했다.
범행이 일어난 날은 모두 가랑비가 내렸다. 우연이라기보다는 범인이 일부러 이런 날씨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비오는 날에 사람들의 이동이 적고,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기 때문에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을 수 있다.

7.대천시내 K산부인과 출생했다.
피해자 중 한 명만 빼고는 모두 대천시내의 K산부인과에서 출생한 것도 특이한 공통점이다.

8.범행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1~5차 사건 중 유일하게 1차 피해자만 목숨을 건졌다. 2차 장시간 추위 노출 사망, 3차 온 몸에 타박상 입고 사망, 4차 행방불명, 5차 장기적출 후 살해. 이처럼 횟수가 거듭될수록 범행이 잔혹해진 것을 알 수 있다.

9.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
1~5차 까지 한 번도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 대천동이 빈민촌 지역인 것을 감안하면 금전을 노려 납치한 것도 아니다. 경찰 수사가 미궁으로 빠진 원인도 범행의 목적과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었다.


10.범인은 마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은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 대담하다. 특히 집 안으로 침입해 아이들을 유괴한 것을 보면 범행에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범인이 마을 사정에 훤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범인은 구시마을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마을의 지형, 피해자들 집안의 구조, 아기가 있는 집도 알고 있었다. 특히 4차 피해 영아의 경우 산모가 언니 집에 온 지 하루도 안 돼 유괴됐다. 이것은 범인이 피해자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니면 마을주민 중 공범이 외부의 범인과 내통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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