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꽃을 든 살인마 ‘광주 세모녀’ 살인사건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살던 권아무개씨(여·41)는 광주의 한 공군부대 군무원이었다.

그녀는 2006년 남편과 이혼하고 중학생 딸(13)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권씨에게는 2010년쯤 광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연하남 김아무개씨(34)가 있었다. 광주가 고향인 김씨는 인천에서 자영업(행상)을 하며 생활했다.

2014년 9월29일 오전 김씨는 광주에 내려가 권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승용차로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권씨는 이날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있었던 말을 꺼냈다. 그녀는 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김씨의 생각도 궁금해서 넌지시 “우리 결혼은 언제 하지?”라고 물었다. 그런데 김씨의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다. “나는 따로 결혼할 여자가 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씨는 최근 다른 여성을 만나 사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권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결혼 상대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만났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내 말다툼이 벌어졌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권씨는 김씨를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왠지 권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권씨 집으로 향했다. 인근 꽃집에서 커다란 꽃바구니도 하나 샀다. 김씨는 이걸 들고 권씨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권씨는 김씨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너 같은 건 필요 없다,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만큼 권씨가 느끼는 배신감이 컸다. 자신은 결혼을 전제로 만났는데 김씨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결혼까지 하겠다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김씨는 그런 권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가라”는 말에 격분한 김씨는 권씨의 목을 조르고, 주방에 있던 랩을 얼굴에 감싸 질식시켰다. 시신에 이불을 덮어 현장 은폐를 시도했다.

이때 집 근처에 사는 권씨의 친정어머니 채아무개씨(68)가 아파트로 들어왔다. 권씨의 어머니는 딸이 직장에서 3교대를 하느라 저녁에 없을 때가 많자 종종 손녀의 저녁을 차려주러 방문했다. 사고로 오른쪽 손목을 잃었지만 학원에 다녀오는 손녀에게 한 손으로 밥을 차려주던 외할머니였다.


이날도 학원에서 공부하고 배고픈 손녀의 저녁을 챙겨주기 위해 찾아갔다. 김씨는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채씨를 주먹으로 마구 폭행하고, 주방에 있던 프라이팬으로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채씨의 숨이 끊어지자 시신을 작은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현장을 떠나려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찰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 7시40분쯤 문밖에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학원을 마친 전아무개양(16)이 들어왔다. 김씨는 황급히 안방으로 몸을 숨겼다.

살해된 채 발견된 모녀.

전양은 친구와 통화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할머니 신발도 안 보이고 엄마 신발도 안 보여. 아 무서워. 어, 근데 물소리가 들리네. 엄마가 목욕탕에 계신가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방문(작은방)을 연 전양의 눈에 띈 것은 외할머니의 시신이었다. 그때서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전양은 친구와 통화하던 것도 잊고 흐느끼면서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이내 김씨에게 붙잡혔다. 김씨는 전양의 목을 조르고 얼굴에 랩을 씌워 살해했다. 전양의 친구는 ‘흐느끼는’ 소리와 ‘우당탕’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다.

김씨는 이렇게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권씨는 물론 어머니와 딸까지 일가족 3명을 살해했다. 다음날 아침 전양이 학교에 등교하지 않자 담임교사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어머니 권씨도 마찬가지였다. 담임교사는 직접 전양이 사는 아파트로 찾아가서 초인종을 수차례 눌러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경비실에 가서 인터폰을 했는데도 받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112에 전화를 걸어 “전00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며 미귀가 신고를 했다.

경찰은 전양과 어머니 채씨가 마지막 통화한 기지국을 확인해보니 동일 기지국으로 나왔다. 집 인근이었다. 경찰이 아파트로 찾아가서 현관문에 귀를 대고 들어봤더니 TV소리가 났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봤더니 안에서 벨 소리가 났다. 모두 집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경찰은 모녀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119 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해 10층 베란다에서 9층 베란다로 로프를 통해 내부에 진입했다.

전양이 숨진 채 발견된 작은 방.

집 안에서는 세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권씨는 큰 방 침대 바닥에 엎어진 채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중학생 딸은 침대 위에서 하늘을 보고 숨져 있었다. 권씨 어머니는 엎어진 상태에서 이불에 엎어져 있었는데, 시신의 상태가 가장 참혹했다. 김씨에게 폭행당해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된 채 얼굴이 함몰돼 있었던 것이다.

광주서부경찰서는 강력반 형사를 총동원해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통해 출입자를 파악했다. 김씨가 꽃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들어갔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해보니 화순 등 전남 일대를 돌다 전북 고창의 한 야산에서 마지막 위치추적이 잡혔다.

경찰은 이 일대를 집중 수색했고, 사건발생 34시간 만인 1일 새벽 5시쯤 승용차 안에 있던 김씨를 발견해 검거했다. 차량 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던 것이다.

김씨는 경찰에서 “권씨가 내 사과를 받지 않아 화가 나서 저질렀다”면서도 “딸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후회한다”고 흐느꼈다.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한 김씨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모녀를 차례로 살해한 피고인의 범행 경위 및 범행 수법의 잔혹함 등에 비춰 그 죄책이 매우 중하다”며 “특히 13세에 불과한 피해자를 제압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살해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처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대담·잔혹성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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