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총알 임신’ 사건
1874년 11월7일 미국의 의학저널 <메디컬 위클리>에 놀랄만한 기사가 실린다.
기고자는 제퍼슨 의과대학을 졸업한 현직 의사 르그랑 게리 케이퍼스 박사였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총알 임신’과 관련한 것이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53년 5월12일 케이퍼스 박사는 미시시피 인근의 남부 연합군 부대에서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부 연방군과 남부 연합군이 미시시피강의 통제권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일명 ‘레이몬드 전투’로 불리는 이 싸움은 한 농장 근처에서 벌어지는데 이때 농장 주인의 딸인 A씨가 총에 맞아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 실려왔다.
그녀는 왼쪽 복부를 지나 자궁에 총알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지만 여러차례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얼마 후 의사는 수술 경과를 살펴보다 A씨가 임신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그녀가 유부녀인 줄 알고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했는데, A씨는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라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검진결과 그녀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어떻게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것일까.
케이퍼스 박사는 이런 의문을 품고 A씨가 어떻게 임신한 것인지 조사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총상을 입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총상을 입고 실려 온 남부 연합군 병사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왼쪽 고환에 관통상을 입은 상태였다.
조사 결과 뜻밖에도 임신의 원인은 ‘총알’이었다.
케이퍼스 박사에 따르면 총알이 빗발치던 전투 상황에서 한 발의 총알이 군인의 고환을 관통했다. 이때 그의 정자가 총알에 실린 채 A씨의 자궁에 박히면서 그곳에 있던 난자와 만나 수정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A씨의 임신은 기막힌 우연이라고 했다.
그 후 A씨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군인과 이 여성은 이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 생각했고 이를 받아들여 결혼까지 했으며 두 명의 아이를 더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의학저널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총알 임신’이라고 했고, 총알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를 ‘총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A씨가 배란일이어야 하며 총알이 정자를 손상시키지 않을 적정 온도를 유지해 정자가 생존한 상태로 자궁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몹시 희박한 확률인데다, 심지어 A씨가 군인과 결혼했다는 다소 작위적인 스토리, 여기에 두 사람의 신상이나 사진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9년 ‘총알 임신’이 또다시 화제에 오른다. 총알 때문에 임신했다는 언론 보도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해당 여성의 이름 등 신상이 공개됐다.

UN 소속 간호사인 레슬리 코바이드는 1998년 2월28일 보스니아 내전 중 한 총격전 현장에 있었다. 당시 그녀의 옆에 경찰관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경찰의 고환을 관통한 후 레슬리의 자궁에 날아와 박혔다.
이로 인해 레슬리는 임신했는데, 실제 두 사람은 이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이후 레슬리는 딸을 낳았는데, 아이의 유전자 검사결과 두 사람의 것과 일치했다. 1963년 남북전쟁 당시 있었던 ‘총알 임신’에 이어 두 번째인 것이다.
이전과 같은 사례가 나오자 사람들은 실제 총알로 인한 임신이 가능하며, 두번의 사례 모두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총알 임신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시시피주 서부에 있는 빅스버그의 올드 코트 하우스 박물관에는 ‘총알 임신’과 관련한 케이퍼스 박사의 기고 내용이 사본으로 인쇄돼 전시되고 있다. 2019년 8월 MBC <신기한TV 서프라이즈>에서도 이 사연이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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