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부인에게 빼앗긴 ‘배우 진도희’ 이름 도용 사건
연예인들의 이름은 변화 무쌍하다.
본명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나 상당수는 가명이나 예명으로 활동한다. 본명이 촌스럽거나 어감이 좋지 않을 경우,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있는 경우도 중복을 피하기 위해 예명을 사용한다.
연예계에서 같은 이름의 중복을 피하는 것은 불문률이나 다름없다.그런데 후배가 선배의 예명을 도용해 자기 예명으로 사용한 어처구니 없는 ‘예명 도용사건’이 있었다. 이름 도용의 주인공은 유명 에로배우인 ‘진도희'(본명 김은경)다.
그는 1993년 배우이자 영화제작자인 한지일을 만나 에로배우가 된다. ‘진도희’라는 예명을 지어준 것도 한지일이다. 문제는 이 이름은 이미 원로배우 김태야가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걸 알면서도 한지일은 한참 어린 후배에게 ‘진도희’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각기 다른 두 명의 배우가 같은 예명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새파란 후배가 22살이나 많은 대 선배의 이름을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
부산 출신인 진도희(김태야)는 중앙대 전신인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후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편입했다. 재학 시절 MBC 4기 탤런트 공채에 응시해 합격했다.
1972년 영화 <자크를 채워라>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대추격>(1972), <늑대들>(1972), <체포령>(1972), <일요일에 온 손님들>(1973) 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신성일, 신일룡, 신영일 등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서구적인 마스크와 훤칠한 외모로 인기를 얻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김태야는 당시 조흥은행 창업주의 직손인 정운익씨와 열애로 은막을 떠났다. 이후 외식사업과 무역회사 중역으로 미국을 오가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다 1995년 에로영화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대히트하면서 ‘진도희’라는 이름은 에로배우의 대명사가 된다.
진도희는 방송 3사의 토크쇼마다 불려나갔고, ‘젖소부인의 사회현상’을 다른 시사프로그램도 만들어졌으며, 케이블TV에서는 그녀의 24시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제작자인 한지일은 돈방석에 앉았고, 주인공 진도희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진도희는 한국 에로비디오계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발돋움했다.

이때 김태야는 에로배우가 자신의 예명을 도용한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미국에 있는 한지일에게 전화해서 “딸 보기에 민망하다”며 김은경의 예명(진도희)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한지일은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김태야는 원로배우 윤일봉을 통해 ‘진도희’를 못쓰게 해달라고 했으나 젖소부인 진도희가 울며 “계속 쓰겠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인해 배우 인생을 진도희로 보냈던 김태야는 사회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과 피해를 입게 된다.
결국 김태야는 2015년 6월 6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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