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박 상병’ 18세 동거녀 살인사건
충남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는 박아무개 상병(22)이 살았다.
그는 육군 제32사단에서 상근예비역(집에서 출퇴근하는 병사)으로 근무했다. 박 상병은 김아무개양(18)을 만나 사귀게 됐고 얼마 후에는 동거에 들어간다.
2014년 2월 김양은 생리를 하지 않고 자꾸만 입덧을 하자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사실을 확인했다. 산부인과에서는 ‘임신 5주’ 진단을 내렸다. 김양은 애인인 박 상병과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의했다. 하지만 박 상병은 매몰차게 반응하며 “당장 낙태시키라”고 강요했다.
진지하게 대화를 원했던 김양은 박 상병의 이런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김양은 다음 달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수술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김양은 박 상병과의 동거를 끝내고 친구집으로 들어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김양은 박 상병의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그러자 박 상병은 온갖 상상을 하며 김양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것과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생각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비극의 싹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결국 박 상병은 김양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같은 해 4월18일 오후 박 상병은 상근예비역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이날 범행을 실행할 디데이로 잡았다. 김양에게 몇차례 전화를 걸어 가까스로 연결돼 오후 10시20분쯤 약속을 잡았다.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신문지에 둘둘 말아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박 상병은 범행하기 좋은 곳을 물색하다 논산시 노성면 장마루에 있는 한 팔각정을 떠올렸다.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깊은 밤에 범행을 해도 들킬 염려가 없었다. 얼마 후 김양이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박 상병은 자신이 의심하고 있던 것을 김양에게 물어봤다. “너 나한테 떠나려고 하느냐”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냐” 등등. 이에 김양은 “오해하지 말라”며 박 상병의 의심을 풀려고 했다. 박 상병은 오해가 풀렸는지 김양을 끌어안고 키스를 했고 성관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흥분이 절정에 이를 무렵 박 상병은 갑자기 식칼을 꺼내 김양을 찌르기 시작했다.
김양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박 상병이 휘두른 칼을 맞아야만 했다. 얼마나 세 개 찔렀던지 칼날이 부러질 정도였다. 김양의 몸에서는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몸에 박힌 칼날을 빼내려고 몸부림쳤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울부짖으며 박 상병의 이름을 불렀고,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박 상병이 잠시 방심한 듯 보이자 김양은 사력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흉기에 찔린 김양이 멀리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박 상병은 김양을 따라가 쇠파이프와 벽돌로 무차별 폭행했다.
김양은 그 자리에 쓰러져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박 상병은 김양의 핸드백을 뒤져 휴대전화를 챙겼고, 자신의 옷과 몸에 묻은 혈흔을 제거하기 위해 집으로 가서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김양은 다시 사력을 다해 팔각정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얼마 후 다시 범행현장으로 온 박 상병은 김양이 안 보이자 휴대전화 불빛을 이용해 찾기 시작했고, 팔각정 아래에 쓰러져 있던 김양을 발견했다.

이때까지도 김양은 살아있었다.
이미 피범벅이 된 김양은 박 상병을 보자 희미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살려달라”고 재차 애원했다. 박 상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김양을 팔각정 밖으로 끌어낸 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김양이 죽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이미 이성을 잃은 박 상병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다 피우고 나자 주변에 있던 벽돌을 들어 김양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 이어 김양의 몸에 박혀있던 칼날을 빼내 목에 꽂고 발로 밟아 살해하는 잔인성을 보였다.
박 상병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숨진 김양의 휴대전화 등을 산에 묻는 등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범행 직후 김양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김양의 변심을 확인하기 위해 유도질문을 던졌다. 마치 김양의 죽음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한 것처럼 조작해 범행을 합리화 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김양의 시신은 다음날 오전 7시40분쯤 팔각정을 지나던 마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주변 탐문조사를 통해 박 상병을 범인으로 특정하고 군 헌병대와 공조해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범행 33시간 만에 인근 야산에 숨어있던 박 상병을 검거했다.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 상병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재판부에 수많은 반성문을 제출했다. 또 법정에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군사법원은 징역 30년과 위치추적장치 20년 부착을 선고했다. 박 상병은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로 이어지면서, 대법원까지 가서야 형량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인 애인을 특별한 동기도 없이 단지 변심했을지 모른다는 일방적인 의심만으로 살인을 결심하고 무차별 폭행 후 살해한 것으로 그 범행이 매우 잔인해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여러 사정을 볼 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유족에게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도 형량을 정하는데 참고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보복이 두려워 일상생활이 어렵다”며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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