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군대사건

‘9명 성폭행’ 아들 앞에서 엄마 강간한 육군 장교


손상헌(남·26)은 실내 장식업을 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사병으로 군에 입대했다가 사관후보생에 지원해 1998년 10월1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같은 해 10월7일 육군 제11사단에 부임해 사단 예하 20연대 소속 작전항공장교로 근무했다. 이 시기에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그는 부내 내의 인터넷교관으로 활동하며 임무수행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중위로 진급했다.

대인관계도 원만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모범 생활도 잠시 뿐이었다. 1999년 여름부터 일탈하기 시작했다. 부대 근무시간이 끝나면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심야까지 인터넷과 PC게임에 푹 빠져 지냈다. 이로 인해 부부간 말다툼이 잦았고, 동료들과의 대화도 줄어들었다.

급기야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포르노 동영상에 심취했다. 음란물을 탐닉하면서 무분별한 성적 망상과 충동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손씨의 성적 충동은 망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실행해 나선다.

첫 피해자는 15세의 어린 여학생이다. 손씨는 소녀를 자신의 성적 욕구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후에는 더욱 대담해졌다. 여동생을 묶어놓고 그 언니를 강간하고, 약 3개월 후 동일한 피해자를 찾아가 재차 강간했다. 어린 아들을 이불로 뒤집어 씌워놓고 엄마를 강간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손씨는 이렇게 극악한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유린했다.

그의 범행은 약 1년6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무려 9명의 여성을 총 10회에 걸쳐 연쇄 강간했다. 낮에는 나라 지키는 장교, 밤에는 연쇄 성폭행범으로 이중생활을 했던 것이다.

손씨는 범행이 탄로 나면서 군 수사기관에 체포됐다. 성폭행 등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군 교도소에 수감된 손씨는 범행을 반성하고 참회하기 보다는 호시탐탐 탈옥 기회를 노렸다.

교도소 담장을 넘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밖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그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교도소 밖으로 나간 다음 군 병원에서 탈옥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2001년 5월15일 손씨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교도소 측은 손씨를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 입원시켰다.

다음날 새벽 손씨는 자신을 감시중인 사병이 졸고 있자 이 틈을 이용해 병원 밖으로 도주했다. 일단 도주에 성공한 손씨는 도피 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그는 일단 부천으로 잠입했다. 도주 다음날인 5월16일 범행대상을 물색하다가 혼자 살고 있는 여대생을 점찍었다. 이날 오후 6시쯤 손씨는 원미구 심곡동에 있는 박아무개양(19)의 하숙집에 침입했다.

방 안에 있던 박양은 손씨를 밀치고 밖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 순간 손씨는 이불과 베개로 박양의 얼굴을 눌러 질식사 시켰다. 손씨는 범행 후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박양이 잠을 자는 것처럼 위장해 놓았다. 방 안에 남아 있을 증거도 없앴다. 수건으로 발자국을 지우고 강취한 물건은 박양의 가방에 넣어 범행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손씨는 자신의 도피를 도와줄 친구 신아무개씨(26)를 불렀다. 도주 3일째인 5월17일 오후 6시20분쯤 부천 소사에 있는 한 은행에 들러 박양의 카드로 100만원을 인출했다.

손씨는 그 돈으로 신씨와 함께 용산에 가서 컴퓨터 한 대를 구입했다. 신씨에게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알리바이 조작을 지시했다. 손씨는 구입한 컴퓨터로 신씨의 집에서 태연하게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

경찰은 박양의 금융거래내역을 조회하다가 사용흔적을 발견했다.

용산 컴퓨터 상가를 탐문했더니 컴퓨터를 구매할 때 신씨의 주민번호가 기재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신씨의 집 주소를 파악해 덮쳤더니 손씨가 있었다. 경찰은 두 사람을 경찰서로 연행해 조사를 시작했다.

손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정신이상증세가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임했다. 경찰은 친구 신씨를 집중 추궁하며 손씨를 압박했다. 결국 손씨는 박양을 살해한 것을 시인하고 말았다. 경찰은 손씨의 신병을 육군 수도군단 헌병대에 인계했다.

1심과 2심은 손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데다 성장과정이 건실하고 범행 전에는 부대에서 충실하게 군대생활을 해 온 점으로 미뤄 교화의 여지가 있는 만큼 사형은 과중하다”고 밝혔다.


이후 숨진 박양의 가족 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억84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