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파출소 조성호 경사 피살사건
1990년대 중반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바로 옆 대로변에는 ‘잠실1파출소’가 있었다. 이곳에는 파출소장(경위)을 비롯해 경찰관 19명과 방범대원 2명 등 모두 21명이 근무했다.
당시 서울 대부분의 파출소는 2교대가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1995년 12월부터 3교대 근무 시범 파출소로 선정돼 7명의 근무자들이 12시간씩 교대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청의 ‘외근경찰관 순찰근무강화’ 지시가 내려오면서 내근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순찰을 나가는 상황이었다.
1996년 8월 9일 새벽 5시쯤, 순찰을 나갔다 돌아온 정의석 순경(28) 등은 1층 안쪽에 있는 방범대원실에 들어갔다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바닥에는 부소장 조성호 경사(46)가 피를 흘린 채 신음하고 있었고, 방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정 순경은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잠자고 있던 임정종 소장(경위·50)을 깨웠다. “소장님, 큰 일 났습니다. 부소장님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임 소장은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1층 방범대원실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조 경사를 곧바로 강남시립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뒷머리의 상처에서 피가 많이 흘러내렸다. 의료진은 급히 응급처치를 하고 뇌수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심폐기능 저하로 이날 오후 4시 10분쯤 끝내 사망했다.
경찰은 사건발생 후 전 경찰서에 갑호비상령을 내렸다. 범인은 조 경사가 소지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총번 4941) 한 자루와 실탄 3발, 공포탄 2발, 탄띠를 탈취하고 달아난 상태였다. 무기를 소지한 범인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역과 터미널 등에 대한 순찰과 검문검색도 강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담반을 꾸려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당시 파출소 안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조 경사는 이날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정 순경과 동료경찰관 4명, 방범대원 2명이 관내 순찰중이어서 혼자 근무하던 중이었다. 또 파출소 2층에는 대기근무중이던 소장과 경찰종합학교 실습생 2명이 자고 있었으나 목격하지 못했다.
조 경사가 쓰러져 있던 파출소 방범대원실은 보통 아는 사람을 접대하는 곳으로 이용돼 왔다. 파출소 근무자들은 “피의자 등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곳”이라고 밝혔다. 당시 누군가를 조사했을 가능성도 열어뒀으나 그런 흔적이 없었다.

피의자가 파출소에 들어올 때 의무적으로 적도록 돼 있는 ‘소내 근무일지’에 인적 사항이 적혀있지 않았다. 즉 범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외부인이 아니라 조 경사와 평소 안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경찰은 “개인적 원한관계에 따른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발표했다.
조 경사의 양쪽 눈과 왼쪽 팔 등에 주먹으로 맞아 멍이 심하게 들어있었고, 왼쪽 눈썹 위 이마에도 자상을 입었다. 방범대원실 내벽 전체에 피가 흩어져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조 경사와 범인 사이에 상당한 격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다른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파출소에 있는 것을 사용했다는 것도 ‘우발적 범행’을 높게 본 요인이다.
범인이 조 경사를 살해하는데 사용한 흉기는 처음에는 소화기로 추정됐었다. 조 경사가 방범대원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방구석에 놓였던 소화기 4개 중 1개는 피가 묻은 채 조 경사의 오른쪽 머리쪽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을 통해 소화기가 아닌 권총 개머리판으로 바뀌었다. 조 경사의 사망원인은 ‘두개골 함몰에 의한 뇌손상과 과다출혈’. 직접적인 사인이 된 뒷머리의 치명상은 소화기 같은 둔기보다는 권총 크기의 흉기에 여러 차례 가격 당해 생긴 것으로 감정된 것이다.
경찰은 조 경사의 집과 가족의 동산, 부동산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재산파악에 나섰다.
또 국세청에서 조 경사의 부인 등 가족과 친인척 16명의 동산, 부동산 등 재산내역을 넘겨받아 공무원 재산등록 신고 내용과 대조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조 경사의 재산내역을 통해 재산증식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들여다 본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대대적인 인원을 투입했지만 경찰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범인이 조 경사로부터 빼앗아 간 권총 등을 찾기 위해 전경 300여 명을 동원해 10일 동안 파출소 부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허사였다.
사건 현장을 정밀 감식한 결과 머리카락을 발견해 유전자 분석을 했으나 조 경사의 것으로 나왔다. 외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 5개를 채취했지만 매우 희미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조 경사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지만 의심이 가는 인물이 없었다. 경찰이 밝혀낸 것은 조 경사의 재판파악을 통해 채무관계나 남에게 원한을 산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경찰은 유흥업소 단속 강화에 불만을 품은 업소 직원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펼쳤으나 역시 이렇다 할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권총 탈취를 위한 계획적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뒀으나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한때 조 경사와 30대 남성이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나 수사에 활기를 띠는 듯 했다.
파출소 인근의 자동차 수리업체 대표 윤아무개씨(50)가 유력한 제보를 해 온 것이다. 그는 “사건 당일인 9일 새벽 4시 20분쯤 교통사고처리 문제로 파출소에 들렀다. 당시 조 경사가 스포츠형 머리에 얼굴이 둥근 30대 초반의 남성 1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경찰에 알렸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들어가자 두 사람은 나누던 대화를 중단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30대 남성이 ‘형님, 그동안 뜸했소. 나 먼저 갑니다’는 말을 남기고 파출소를 먼저 나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윤씨가 목격했다는 30대 초반의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몽타주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다. 언론에도 공개해 용의자의 용모를 키 170cm 정도, 건장한 체격, 짧은 머리라고 밝혔다.
파출소의 집중 단속 대상이었던 유흥업소의 업주나 종업원, 속칭 ‘삐끼’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도 벌였다. 하지만 수사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피살된 만큼 경찰의 명예가 달려있다며 범인 검거를 자신했다. 당시 권지관 송파경찰서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필코 검거하겠다. 수사의 범위가 어느 정도 좁혀져가고 있다”고 말했으나 결국 공수표만 날리고 말았다.
이 사건은 언제든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일선 치안 최후의 보루인 파출소에 근무자 한 명 밖에 없어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파출소에는 권총 외에도 M16 소총, 실탄 등이 보관돼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조 경사가 차고 있던 무기고 열쇠까지 탈취했다면 더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파출소에는 CCTV가 설치됐다.


조 경사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안양공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했다.
그의 영결식은 사건 3일 후인 8월12일 서울 경찰병원에서 있었으며 경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공로장이 추서됐다. 그의 유해는 현재 국립 대전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돼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범인을 잡아도 처벌하지 못한다. 조 경사의 억울한 영혼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에게는 피맷힌 한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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