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탈옥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 ‘최갑복 탈주사건’


2012년 9월17일 아침 대구 동부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유치장에 있던 피의자 최갑복(51·이명 최수환)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경찰이 유치장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최씨가 빠져나간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철창문도 잠긴 상태 그대로였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최씨는 대체 어디로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경찰은 유치장에 있는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최씨의 탈주 장면이 그대로 녹화돼 있었던 것이다.

이날 오전 4시56분쯤 유치장 안에서 꿈틀거리는 몸놀림이 감지된다. 바로 최씨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뒤척이며 유치장 내부를 살폈다. 반소매 티셔츠를 벗은 후에는 얼굴, 등, 목, 배에 무언가 바르기 시작한다.

그의 이상한 행동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철창 쪽으로 다가가더니 배식구 창살에도 이 물질을 발랐다. 탈출 이후를 대비해 모포 속에는 책과 옷을 넣어 마치 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

나갈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최씨는 엎드린 상태에서 머리를 배식구에 밀어 넣었다.

여의치 않자 다시 자세를 바꾸고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금세 머리가 배식구를 빠져나왔다. 이어 오른팔을 배식구 밖으로 꺼내고서 몸을 비틀어 어깨를 빼냈다.


왼쪽 어깨도 같은 방법으로 통과했다. 배 부분까지 나가자 엉덩이가 창살에 걸렸다. 그는 검은색 운동복을 엉덩이 아래까지 내리고 몸을 흔들면서 통과했다. 키 163cm, 몸무게 52kg의 최씨가 가로 45cm, 세로 15.2cm의 배식구를 빠져나온데 걸린 시간은 불과 34초에 불과했다,

배식구를 빠져나온 최씨는 경찰관이 잠을 자고 있던 감시대 책상을 오리걸음으로 지나 창문으로 갔다. 1층 벽면에 도달하자 2m 높이의 창문 환기구 창살을 잡고 몸을 끌어올려 창살 사이를 벌리고서 빠져나갔다.

환기창은 스테인리스 재질로 힘을 가하면 쉽게 간격이 벌어진다. 최씨는 채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유치장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CCTV를 보면 마치 연체동물처럼 몸놀림이 유연했다.

최씨는 유치장을 탈출하기 전 ‘出理由書(출이유서: 유치장을 나가는 이유)’라는 한자 제목으로 경찰에 메모를 남겼다.

경찰이 제공한 구속적부심 청구서 ‘청구 이유란’에 ‘미안합니다’를 세 번, ‘누명을 벗어야 하기에 선택한 길입니다. 선의적 피해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누구나 자유를 구할 本能(본능)이 있습니다. 救苦救難 南無觀世音菩薩(구고구난 나무관세음보살)’ 등의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고구구난 나무관세음보살’은 불경의 한 구절로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을 말한다. 즉 자신을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구원해 달라는 뜻이다.


최씨는 유치장에서 탈출한 후 경찰서 주변에 숨어 지내다 인근 주택에 침입해 EF쏘나타 승용차와 신용카드 등이 든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 탈주 당일 오후 10시13분 청도IC를 빠져나와 청도읍의 한 주유소에서 훔친 신용카드로 주유했다. 오후 11시8분 청도읍 원정리 한 편의점에 들러 삼각 김밤과 우유 등을 구입했다. 이때 편의점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신고했다.

경찰은 편의점 주위를 포위한 후 청도읍 초현리 새마을로 등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최씨는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 전방 200m 앞까지 접근했다가 낮 12시30분쯤 차를 버리고는 인근 화학산으로 도주했다. 그는 산을 타고 강물을 따라 밀양으로 넘어갔다. 사람의 눈을 피해 주로 밤에 이동했다.

탈주 후 최씨는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겼다. 5일 째인 9월21일 오후 7시10분쯤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농막에서는 주인의 친척인 박아무개씨가 도둑이 든 흔적을 발견했다.

농막 내에 누군가가 라면을 끓여 먹은 흔적이 있고, 서랍 속에 있던 과도가 없어진 것이다. 농막 안에 걸려 있던 달력을 찢어 뒷면에 ‘죄송합니다. 비강도(누명자) 최갑복’이라는 메모가 검은색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9월22일 오전 11시20분쯤 밀양시 하남읍의 한 웨딩홀과 새마을 금고 구간에서 전날 오후 7시30분부터 8시 사이 키 158~165㎝에 M자형 머리, 노란색 계통의 상의와 회색 개량형 한복 하의를 입은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같은 날 오후 4시20분쯤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서 한 시민이 112로 “우리 집에 최씨와 비슷한 사람이 침입했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해당 아파트로 출동했다. 그리고 아파트의 출입구를 봉쇄한 후 대대적인 포위망을 구축했다. 침입자는 최갑복이었다.


최씨는 아파트 옥상으로 내몰렸고, 보일러실 안에 있던 빈 라면 박스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오후 4시55분쯤 검거됐다. 도피행각에 지친 탓인지 큰 저항없이 경찰에 제압됐다. 세면과 면도를 하지 못해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는 등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로써 ‘6일간의 탈주 행각’도 막을 내렸다. 수시로 옷을 바꿔입으며 둔갑술의 달인임을 보여줬지만 시민들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최씨는 대구 동부경찰서로 압송돼 기자들 앞에서 “저는 절대로 강도질을 한 적이 없다. 사람을 해친 적이 없는데 경찰과 피해자가 죄를 덮어씌우기에 억울함을 벗으려 탈옥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검거되면서 그의 베일에 싸였던 행적이 하나 둘 드러났다. 최씨는 탈주를 감행하기 전 이틀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예행연습을 했다.

9월12일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 3호실에 입감된 최씨는 14일 오전 6시21분 배식구에 머리를 들이밀어 46초간 귀 부분까지 빠져나왔다. 이어 오전 6시26분부터 28초 만에 머리를 빼내는데 성공했다 다음날 오전 5시27분부터는 4분18초 만에 상반신을 완전히 빼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근무 경찰관들은 잠을 자면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탈주할 당시 유치장 안에는 최씨 외에 두 명의 유치인이 더 있었지만 이들도 최씨의 탈주를 보지 못했다. 경찰이 최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것은 아침 배식을 하던 오전 7시35분이다. 도주한 지 2시간 35분이 지난 뒤였다.

최씨가 유치장 탈주 전 바른 물질은 상처에 바르는 ‘후시딘 연고’였다. 경찰은 처음에는 온몸에 비누 또는 샴푸를 발랐다고 했다가 후시딘 연고로 말을 바꿨다. 다른 유치인이 피부염 등이 심해 경찰에게 건네받은 것이었다.


이 유치인이 몸에 후시딘을 바르는 것을 본 최씨는 이날 후시딘을 빌렸으며, 이것을 몸에 바르고 탈주를 감행했던 것이다. 후시딘을 바르면 번들거리고 미끄러운 작용이 생기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유치장에서는 유치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하곤 모든 피의자들이 개인물품을 소지할 수 없다. 유치인이 소지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품은 경찰이 모두 압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경찰은 유치인에게 제공한 후시딘을 회수하지 않았다.

최씨의 삶은 ‘범죄’로 점철돼 있다. 1962년 8월 부산에서 태어난 최씨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가정이 평탄하지 않은 탓에 유년기에는 경북 고령군 덕곡면 외가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면서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가 전부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최씨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으나 행방불명됐고, 어머니 또한 일찍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최씨의 형은 구속 수감 중이었고, 누나는 행방불명 상태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탈주 당시 최씨의 나이는 51세였는데, 총 13차례에 걸쳐 모두 23년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사회와 격리된 채 갇혀 지낸 셈이다. 그는 16세 때인 77년 절도죄로 8개월 형을 선고받으면서 탈주 전까지 전과 25범이었다. 절도 10건, 마약 2건, 준강도 2건, 사기 1건, 강간 2건, 강도미수 1건, 여신법위반 4건, 폭행, 무면허 등이다. 마치 ‘범죄 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2008년에는 여중생을 성폭행한 전력도 있다. 당시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같은 병실 환자에게 면회 온 여중생(14)을 “취직시켜주겠다”고 유혹한 뒤 자신의 집에 붙잡아 두고 며칠간 성폭행했다. 법원은 고작 4년형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최씨는 2012년 6월쯤 대구 동구 효목동 상가에서 페인트 장사를 한다며 임대차 계약을 작성했다. 가게 입구에는 ‘신라페인트’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런데 가게에는 페인트 대신 시너(신나)를 쌓아두고 유사휘발유를 만들어 판매했다. 건물 주인은 “당초 약속과는 다르다”며 최씨에게 건물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건물에서 쫓겨난 최씨는 건물 주인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는 7월8일 새벽 2시30분쯤 건물 옥상에서 굵게 땋은 전선을 타고 2층 주인집으로 침입했다. 한 손에는 흉기 대신 골프채를 들고 있었다. 금품을 훔치려고 들어갔으나 창문이 삐걱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주인에게 들켜 격투를 벌이다가 도주했다.

경찰은 ‘강도상해 혐의’를 적용해 최씨를 수배했다. 약 2개월 정도 숨어 지내던 그는 9월12일 대구 달성군의 한 저수지에서 위장막을 치고 낚시꾼 행세를 하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당시 훔치려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임대차 계약서였고, 집주인한테 오히려 더 맞았고 골프채를 휘두른 것은 정당방위였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가 한 부씩 갖는 게 원칙이고, 계약이 해지된 마당에 그것을 훔치려고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최씨는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강도상해 혐의를 받는 것이 억울하다며 유치장에서 탈주를 결심했다.

최씨의 탈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 7월30일 대구 남구 대명동 금은방 슬레이트지붕을 뜯고 들어가는 등 3차례에 걸쳐 1300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됐다. 다음날인 31일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서 경찰호송버스를 타고 대구구치소로 이송 도중 탈출했다.


경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호송버스 쇠창살 틈 20cm를 통과했다. 버스 창문에는 가로쇠창살 13개가 설치돼 있었지만 쇠창살 1개가 없어진 상태였고, 추가로 1개를 더 뜯어냈다.

최씨는 탈주 31시간여 만에 애인을 만나려다 잠복 중이던 경찰과 맞닥뜨렸다. 그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격투 끝에 붙잡혔다. 이후 최씨는 특수도주 혐의로 3년간 복역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불교’와 ‘한문’에 심취해 독학으로 한자를 배웠다.

‘유치장 탈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씨는 도주와 준특수강도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준특수강도 미수’는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고 증거가 부족하다며 ‘특수절도 미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6년으로 감형했다. 최씨는 재심을 청구해 추가로 6개월이 더 감형됐다.

최씨의 탈주사건은 두고두고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에게는 요가대왕, 대구 통아저씨, 문어인간, 후시딘남 등의 별명이 붙었다. 종합편성채널인 JTBC는 최씨가 빠져나간 배식구와 똑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통아저씨 이양승’씨를 통해 탈출 실험을 했지만 실패했다. 이씨가 최씨보다 유리한 신체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경찰은 최씨가 탈주한 유치장 CCTV 공개를 극구 피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될 경우 해외 토픽으로 다뤄질 것이 우려돼 공개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한 방송사에 의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최씨가 탈주할 당시 근무했던 경찰관들은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다. 최갑복의 탈주 과정, 경찰의 무사 안일한 대응은 해외 토픽감이 되기에 충분했다.■GX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