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짝사랑’ 울산 자매 살인사건
1986년 울산에서 태어난 김홍일(27)은 부모가 일찍 이혼하면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김씨는 어머니를 따라 경기 성남, 충남 천안, 부산, 울산 등을 떠돌아다녔다.
2008년 4월 전투경찰(전경)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울산 중구의 한 주점에 들렀다가 주인 부부의 큰딸 이아무개씨(27)에게 한 눈에 반했다. 가게에서 부모를 도와 일하던 이씨에게 호감을 느낀 김홍일은 같은 해 7월부터 약 5개월 간 이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김홍일은 이씨에게 무섭게 집착하며 일방적으로 구애했다. 이씨는 단호하게 김씨의 구애를 뿌리쳤다. 김홍일은 여기에 앙심을 품고 이씨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불붙는 기름’, ‘총 구할 수 있는 곳’ ‘주방용 칼 파는 곳’ 등을 검색했다. 2012년 7월19일 김씨는 다니던 회사를 무단결근한 뒤 부산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를 했다.
이어 울산으로 가 중구의 한 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13분쯤 성남동의 한 원룸으로 가서 가스 배관을 타고 자매 집에 침입했다. 당시 원룸에는 이씨와 여동생(23)이 자고 있었다.
김씨는 미리 준비해 간 흉기로 자매 중 한 명의 목을 마구 찔렀다. 언니 이씨인 줄 알았으나 흉기에 찔린 사람은 동생이었다. 김홍인을 곧바로 달아났고, 언니는 피를 흘리는 동생을 부여안고 119에 전화해 “동생이 죽어가고 있다. 살려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밖으로 나왔던 김홍일은 언니의 비명을 듣고 약 1분후 원룸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는 언니를 칼로 잔인하게 찔러 살해했다. 무려 12번을 찔렀다. 동생을 죽인 칼로 언니까지 죽인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떨어뜨렸던 모자를 챙겼다.

김씨가 자매를 살해하는데 걸린 시간은 3분20초. 미리 치밀한 계획범행을 세우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김씨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다. 당시 자매의 부모는 근처 주점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119 구급대와 경찰이 원룸에 도착했을 때 자매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범행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CC)TV를 찾아 녹화된 테이프를 돌려봤다. 거기에는 흉기를 든 한 남자가 원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경찰은 가족과 지인들을 상대로 범인의 신원을 파악하고,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김홍일을 지목했다.
김씨가 타고 다니던 검은색 모닝 승용차가 울산 북구 강동 일대에서 사라진 것도 확인했다. 주변 야산과 국도 CCTV 등을 통해 김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나섰지만 좀처럼 그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김씨가 살던 집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고, 7월23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김씨의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고 체포영장도 발부받았다.

범행 직후 잠적한 김홍일은 자신이 졸업한 부산지역 대학교 주차장 내 승용차에서 이틀을 보냈고, DMB로 자신의 공개수배 사실을 파악한 뒤 함박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함박산 6부 능선 등산로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은신했다.
산 중턱의 송전탑 공사현장 등에서 근로자들이 남긴 음료수와 캔 커피, 빵 등을 훔쳐 먹으며 생활했다. 그는 산의 위쪽에서 주로 지내면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경찰의 수색 동선을 파악해 미리 이동했다.
경찰이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김씨가 검거되지 않은 것은 산속에 깊숙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도주 50일째인 9월13일 영지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산 속을 다니던 70대가 마대를 깔고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신고한 끝에 검거됐다.
검거 당시 김홍일은 36개의 캔 커피와 31병의 생수, 캔 사이다 2개 등을 갖고 있었다. 김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 순간에 두 딸을 잃은 부모는 분하고 원통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라며 꿈이기를 바랐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피해 자매의 부모는 범인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두 딸을 죽인 범인을 반드시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자매 부모는 생계도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섰다. 자매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김홍일이 검거된 후 울산, 부산, 서울, 군산, 청주 등 각지를 돌아다니며 ‘김홍일 사형촉구 서명운동’을 벌였고, 2만5000여명의 서명과 30명의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도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 잔혹하고 엽기 범죄가 빈발하는 데다 평소 믿은 피고인의 계획범행에 두 딸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참담한 심정 등을 헤아려 볼 때 국민 공분과 염원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인간 생명을 부정하는 극악한 범죄 예방을 위해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사형은 불가피하다”며 사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1심 재판부에 여러 차례 ‘반성문’까지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반성과 참회가 진심인지 진실성이 의심스럽다”라고 했다. 재판장이 “피고인 김홍일 사형”이라고 판결하자 자매 어머니는 법정 밖에서 오열했다.
유족과 친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자매 아버지는 법원 앞에서 기자들 앞에 섰고 “대다수 국민의 정서에 맞는 판결로 재판부에 감사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씨는 1심 판결이 내린 지 3일 만에 사형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2심에서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모든 기소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시인한 점, 나이와 성장 과정, 사회 경력 등으로 볼 때 교화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하여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순간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은 재판부를 향해 거칠게 항의했다. 유족들은 “어떤 죄를 지어야 사형을 선고하느냐”며 오열했다. 검사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한 순간에 사랑하는 딸 둘의 목숨을 앗아간 잔혹한 살인범. 부모가 마지막으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은 ‘김홍일의 사형’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교화 가능성이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부모의 상처와 고통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살인범은 교도소에서 편히 먹고 자고 있을 때 피해자의 부모는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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