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일본 여대생 실종사건
일본 나고야시에 사는 오마사 유미(24)는 지역의 미에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고고학과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오마사는 평소 한국의 고적 답사가 꿈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1991년 3월27일 오전 8시30분쯤, 5박6일 일정으로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행 페리호를 탔다.
오전 10시쯤 부산에 도착해 동서여행사 부산지사를 통해 경주와 다음 여행지인 부여의 유스호스텔 숙박 예약을 했다. 이날 오후 경주에 도착한 오마사는 천마총 일대를 관광하던 중 길을 헤매다 시내 천마공원식당 영업부장 임준식씨(38)의 안내로 불국사 근처 계림유스호스텔에 투숙했다.
이어 임씨를 포함한 그의 동료직원 4명과 충효동 금강가든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밤 9시20분쯤 호텔 입구에서 임씨 등과 헤어진 후에는 혼자 214호실에 투숙했다. 이튿날인 28일 오전 10시쯤 호텔 프론트에 방 열쇠를 맡긴 그녀는 홀로 경주 관광길에 나섰다. 옷차림은 흰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청색 모자를 썼으며 허리에는 백을 찼다.
그로부터 6일 후인 4월3일 오전, 동서여행사 직원은 호텔을 찾아 오마사의 숙박비 6만6000원을 지불했다. 이때 호텔 직원에게 “남겨놓은 짐이 있으니 본인에게 연락해 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여행사 직원은 오마사에게 알려주려고 그녀를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4월9일 일본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돌아올 때가 됐는데 연락이 없다”는 문의 전화를 받고 이날 오후 관할 경주경찰서 불국사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여행사측은 법무부를 통해 오마사의 출국 여부를 조회했으나 출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부산, 김해, 제주 등 항공, 선박편을 확인했으나 예약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오마사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해 불국사 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행적 추적에 나섰다. 먼저 숙소에는 일본 돈 3천엔이 든 손지갑과 양말 8켤레, 속옷 3벌이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탐문수사에 들어가 오마사가 호텔을 나간 당일 오후 3시30분쯤, 경주시내 금강가든에서 냉면을 먹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녀의 더 이상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해외여행으로 한국을 처음 온 오마사는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마사는 실종 당시 여행사와 숙소의 연락처와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음식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주문할 정도로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만약 길을 잃었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여행사와 숙소에 연락할 수 있었지만 행적이 뚝 끊겼다.

경찰 수사는 크게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첫째, 오마사가 안내자 없이 혼자 숙소 부근 토함산에 널려있는 사적지를 답사하다 실족사 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헬기를 동원, 불국사 일대 야산에 대한 수색을 벌이는 한편 목격자를 찾기 위한 탐문수사도 병행했다.
둘째, 인신매매단 등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관광지 주변 조직폭력배와 불량배 등을 상대로 사건발생 전후 행적조사를 벌였다.
셋째, 성폭행을 당하거나 강도를 당한 뒤 살해돼 외진 곳에 버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넷째,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거나 사망해 사체가 유기됐을 경우 등 다각도로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실종이후 2개월 동안 오마사가 접촉했거나 용의점이 있는 200여명을 조사하고 경주 일대 야산과 관광지 등 2천800곳에 10만 명을 동원해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마사의 가족으로부터 사진을 입수한 후 인상착의를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으나 사건해결의 결정적 제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키가 150㎝이고 몸매는 다소 통통한 편이었다.
오마사의 부모도 외동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주를 찾았다. 그녀의 가족은 북한에 의한 납치가능성에 무게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마사가 북한으로 납치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행방불명된 시간이 대낮인데다 유적지 부근의 시내라 관광객의 통행이 비교적 많은 점, 평범한 일본 대학생을 구태여 경주에서 납치할만한 이유를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일본으로 돌아간 오마사의 부모는 1992년부터 해마다 3월이면 수사에 진전이 있는지를 묻는 편지를 경주경찰서로 보내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경찰이 성의껏 수사를 해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만 아직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며 “딸아이의 사진이라도 다시 한 번 눈여겨 봐 달라”고 적었다.

부모는 또 한동안 주말마다 경주를 찾아 이국땅에서 사라진 딸의 흔적을 더듬었다. 결국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오마사의 부모는 지금도 딸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딸이 쓰던 방을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스스로 잠적했거나 사고 가능성 낮다.
오마사가 스스로 잠적했거나 사고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낮다. 여권(번호 5014837)은 물론 여행사와 숙소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없이 연락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당시는 관광철이라 실족 등으로 사망했을 경우 쉽게 발견될 수 있었다. 경찰의 수색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것도 실족 등 사고 가능성을 낮게 한다.
2.인신매매 등 범죄 희생 가능성 높다.
당시는 승합차 등 차량을 이용한 인신매매가 횡행하던 시기였다. 마지막 행선지인 식당을 나선 후 더 이상의 목격자가 없다는 것도 인신매매 가능성을 높게 한다. 인신매매단이 오마사에 접근해 차량에 태워 납치한 후 살해했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시 경찰도 인신매매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
3.살아있을 가능성 희박하다.
사건 발생 30년째인 지금 오마사의 생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살아 있다면 부모나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인데, 지금까지 아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감금 상태로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살아있을 실낱같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