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구했는데 사살된 ‘비운의 고릴라’ 하람비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닮은 생명체를 꼽으라면 단연 고릴라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과 고릴라의 유전자는 98퍼센트(%) 이상 일치한다. 이들은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고, 가족을 돌보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기쁠 때는 소리를 내어 웃는다. 이토록 닮은 두 존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 인간은 문명을 세웠고, 고릴라는 깊은 숲을 지켰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 경계를 허물었다. 숲은 깎여 나갔고, 고릴라들은 사냥꾼의 표적이 되거나 붙잡혀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두 세계가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곳이자, 가장 위태롭게 부딪히는 장소다.
인간은 철창 너머의 동물을 보며 즐거워하지만, 그들이 가진 야생의 힘과 본능까지 완전히 길들일 수는 없다. 이 기묘하고도 불안한 동행은 때로 인간의 사소한 방심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람비의 10분, 인간은 왜 방가지쇠를 당겼나
2016년 5월28일,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때 17살 된 수컷 고릴라 ‘하람비’가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에 300마리에서 4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서부로우랜드고릴라였다. 몸무게가 180킬로그램(kg)에 달하는 생명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안으로 떨어진 네 살짜리 어린아이 때문이었다.
이날 한 소년은 부모와 함께 동물원을 찾았다. 물을 좋아하던 아이는 “물에 들어가고 싶다”며 보챘고, 순식간에 높이 90센티미터(cm)의 안전 울타리를 넘어갔다. 그리고 4미터(m) 아래에 있는 인공 수로로 떨어졌다.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소란은 우리 안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던 하람비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당시 영상을 보면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갔다. 하람비는 물에 떨어진 아이에게 다가갔다. 공격하려는 기세는 아니었다. 하람비는 가만히 서서 아이를 바라보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물속에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듯 아이의 등과 손을 만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하람비를 자극했다. 위를 올려다본 고릴라의 눈에는 흥분해서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인간이 보였다. 하람비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고릴라는 위협을 느끼면 대상을 안전한 곳으로 빠르게 옮기려는 본능이 있다. 하람비는 아이의 다리를 붙잡고 거친 물살을 가르며 수로 한가운데로 질질 끌고 갔다. 아이는 겁에 질려 울부짓었다.
동물원의 위험동물 대응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대응팀은 마취총 대신 실탄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람비를 조준해 사살했다. 아이는 머리와 무릎에 가벼운 상처만 입은 채 무사히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살았지만, 고릴라는 죽었다. 이 10분 남짓한 사건은 전 세계에 거센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마취총은 왜 선택받지 못했나
사건 직후 동물원 측을 향해 비난이 쏟았다. 꼭 죽여야만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동물원 측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몸무게가 180킬로그램(kg)이 넘는 거대한 고릴라에게 마취총을 쏘면, 약운이 온몸에 퍼지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걸린다. 주삿바늘이 몸에 꽂히는 순간 고릴라가 깜짝 놀라 흥분하면, 그 강력한 힘으로 아이를 내리칠 수도 있었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동물이었기에, 동물원은 단 한 번의 위험성도 감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대응팀이 출동했을 때, 동물원 직원들은 하람비와 함께 있던 암컷 고릴라 두 마리를 먼저 방으로 불러들였다. 암컷들은 직원의 지시에 따라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람비는 아이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직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전문가들은 하람비가 아이를 ‘지켜야 할 대상’ 혹은 ‘자신을 위협하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가진 약점’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주변의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고 조용히 대처했다면 하람비도 차분하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하람비의 죽음이 더 큰 울림을 준 이유는 20년 전 일어난 또 다른 사건 때문이다. 1996년 8월, 미국 일리노이주의 브룩필드 동물원에서도 세 살짜리 아이가 6미터(m) 아래 고릴라 우리로 떨어지는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이때 아이에게 다가간 고릴라는 여덟 살 된 암컷 ‘빈티 주아’였다. 하람비와 같은 서부로우랜드고릴라 종이었다.
빈티 주아의 행동은 놀라웠다. 자신의 새끼를 등에 업은 상태였던 빈티 주아는 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그리고 품에 안은 채 등을 살포시 토닥였다. 비명을 지르는 관람객들을 뒤로하고, 빈티 주아는 천천히 걸어가 구조 대원들이 기다리는 문 앞에 아이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 사건은 당시 전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고릴라가 인간 못지않은 공감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했다. 20년 전의 기적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하람비 역시 아이를 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며 동물원의 성급한 결정을 비판했다. 성별의 차이와 주변 환경의 소음 정도가 두 고릴라의 운명을 갈라놓은 셈이다.

박제된 고릴라와 인간의 죄책감
하람비가 떠난 후, 인터넷 공간은 추모의 열기로 가득 찼다. ‘하람비에게 정의를’이라는 이름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수십만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사람들은 하람비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고, 그의 모습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인간의 잘못으로 죄 없는 동물이 희생되었다는 죄책감이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동물원 측은 사건 이후 하람비의 사체를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과학자들은 하람비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세포 조직을 채취했다. 멸종 위기 종인 그의 대를 잇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다. 살아남은 아이의 가족은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고릴라를 죽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경찰 조사까지 받았지만 결국 부모에게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람비의 죽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야생동물을 가두어 두는 동물원은 과연 안전한 곳인가. 그리고 인간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 상황에서, 동물의 목숨은 언제나 인간의 목숨보다 가볍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지금도 신시내티 동물원의 고릴라 우리 앞에는 잔잔한 바람이 분다. 한때 그곳에서 살아 숨 쉬던 거대한 생명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10분의 기록은 여전히 인간들의 마음속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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