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도소 유태파 부두목 ‘에이즈 고의 감염사건’
2016년 11월21일 필자에게 40대 남성 A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교도소 에이즈 감염 사건’의 장본인, 즉 피를 제공한 에이즈 환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실이 다른 게 있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 했다.
14년 동안 가만있다가 이제 와서 꺼내는 이유를 묻자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세상이 무섭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줄 것 같아서 어렵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시 부산교도소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얘기를 계속 들어봤다. 먼저 당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2년 1월29일 아침 <부산일보>를 받아본 독자들은 35면에 실린 기사에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무기징역 유태파 부두목, 출소 노려 에이즈 자진 감염-격리수용 재소 환자 혈액·정액 채취해 마셔’라는 제목의 기사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 기사는 이후 전 언론의 지면에 실렸다. 교도소 안에서 그것도 무기수가 동료 재소자의 혈액을 이용해 스스로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부산에서는 칠성파, 영도파, 신20세기파, 유태파가 ‘4대 폭력조직’으로 꼽힌다. 이들 조직들은 칠성파가 장악하고 있던 부산의 패권을 노리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유태파 부두목 김씨는 1999년 6월 부산 남구 용호2동 백운포 매립지에서 조직원들을 시켜 배아무개씨(당시 36세)를 살해하도록 지시했다. 히로뽕 구입자금 500만원을 빌려간 뒤 갚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구속 기소돼 2001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다. 평생 감옥 생활을 해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김씨가 부산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같은 교도소의 병동사동 1층 구석방에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환자인 30대인 A씨가 수감돼 있었다. 그는 2000년 9월쯤 폭력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 받았다.
A씨는 교도소 안에서 사회 친구이자 유태파 조직원인 황아무개씨를 만났다. A씨와 황씨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사회 친구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황씨가 A씨의 병명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형법 ‘제2장 제7조(비밀누설금지)’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인의 진단과 진료, 간호에 참여한 사람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감염인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게 돼 있다. 김씨가 스스로 에이즈 환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정보였다.
황씨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에 대해 A씨는 “내가 말한 적이 없다. 난 그저 ‘아파서 병실에 좀 있는 것이다’고 했는데, 황00이 대뜸 ‘너 에이즈라던데 교도관이 그러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고, 그 안에서 자살하려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의 병명을 재소자들에게 말한 것은 다름 아닌 교도관이었다는 것이다.
부산교도소에 수감된 유태파 부두목 김씨는 평생 교도소에 있을 생각을 하니 앞길이 캄캄했다. 교도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지를 찾는데 골몰했다. 이런 와 중에 같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동료 폭력조직원 황씨에게 A씨를 소개받았다. 병동사동에 있는 에이즈 환자 A씨가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회 친구라고 알려준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김씨는 교도소에서 벗어나는데 A씨를 이용하기로 한다. 에이즈에 걸릴 경우 형 집행을 계속할 수 없는 중요사안에 포함돼 출소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부산일보는 “김씨는 부산교도소에 이송된 이후 바깥에 있는 자신의 조직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데다 명확한 노후보장 대책이 없어 큰 병에 걸린 다음 병보석 등의 출소를 노려 에이즈에 걸리기로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황씨는 에이즈 환자 A씨를 만나 김씨를 소개하며 피를 나눠 줄 것을 설득했다. 김씨도 A씨를 찾아와 “00야, 형 좀 도와줄래. 너 출소하면 밖에서 너를 도와주고, 먹고 살 길을 열어 주겠다”며 유혹했다.
A씨는 “나도 나가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뭐 큰 죄가 되나 싶어서 동의를 하고 또 그의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교도소 에이즈 감염사건의 공모가 이뤄진다.
2001년도 10~11월 약 3차례에 걸쳐 A씨는 유태파 두목 김씨에게 에이즈를 옮기는 작업을 실행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의무실과 연탄창고, 화장실에서 면도칼로 얼굴에 상처를 내 접촉하거나 주사기를 이용해 A씨의 피를 뽑아서 김씨 자신이 혈관에 주입했다고 나와 있다. 또 A씨의 정액을 받아 마셨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A씨는 언론 보도내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A씨가 혈액을 제공한 곳은 자신의 방과 의무실이었다고 한다. 연탄창고나 화장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얼굴에 면도칼로 상처를 낸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서로의 입술에 바늘로 찔러서 피가 나오게 한 뒤 김씨가 A씨의 피를 자신의 입술에 묻혔다는 것이다. A씨는 또 “일부 언론에서 정액을 줬다는 데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1차 에이즈 감염을 시도한 후 교도소 측에 에이즈 검사를 요청했으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A씨를 이용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실행하게 되는 데 그게 바로 주사기를 이용해 혈액을 혈관에 넣는 것이다. 김씨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링거주사를 맞으면서 병동사동에 있는 A씨를 유인해 자신의 팔에 그의 혈액을 뽑아 주입했다.
김씨는 교도소 측에 재차 에이즈 검사를 요구해 국립보건원에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 반응을 보여 청송감호소로 이송됐다.
그사이 A씨는 2001년 말 형집행정지로 출소한다. 교도소 문밖을 나가기 전 유태파 부두목 김씨는 A씨에게 메모를 건네주며 “이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너를 도와줄 것”이라고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도와주기는커녕 경남지역 및 부산시내의 도박현장을 안내하는 운전기사로 이용하고 돈은 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실컷 이용만 당했다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산이나 외딴 집으로 아주머니들(도박꾼들)을 실어 나르고 1~2시간 씩 지나 도박이 끝나면 밥만 사주고 말았다고 한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운전 못 하겠다”며 그만 두었다는 것이 A씨의 말이다.
유태파 부두목 김씨는 자신의 뜻대로 에이즈 감염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건 절반의 성공이었다. 현행법상 고의로 에이즈를 전파하거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수시로 에이즈 검사를 요구한 것에 의심을 품었다.
어느 날 A씨에게 부산교도소 교도관 2명이 찾아왔다. A씨에 따르면 이들은 “김씨에게 혈액을 준 것이 네가 아니냐”며 “조폭에게 위해를 당하지 않도록 신변을 보호해 줄 테니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김씨는 사실대로 말을 했고, 검찰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저에게 막 대하기에 ‘조사 받기 싫다’고 검찰청을 나와 버렸다”고 했다. 그 후 교도관들이 다시 찾아와 사과해서 조사를 받고는 8개월의 실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재수감됐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인권을 무시당한 채 교도소 방이 아닌 보안과 입구 맨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고 직원 한 명이 항상 내 앞에 앉아 있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출소 후 세상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신변보호는커녕 에이즈 환자인 자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교도관과 검찰이 신변보호를 약속해서 수사에 협조한 것인데,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출소한 후에 누가 내 뒤에서 나한테 위해를 가할지 몰라 사는 게 겁이 났다. 집에서는 항상 문을 굳게 잠그고 지금도 밤에는 불을 끄지 못하고 TV도 켜 놓고 잔다. 이사도 자주했고, 처음에는 실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A씨가 잘 한 것은 없다.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혈액을 다른 재소자에게 준 것도 현행법에 위반된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관계는 명확해야 한다. A씨에게도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해명의 기회와 반론권은 줘야 한다.
일부 언론에는 A씨가 혈액 외에 정액까지 줬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또 혈액을 주는 대가로 유태파 부두목 김씨의 가족에게 용돈을 받았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용만 당하고 돈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허위보도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진실처럼 됐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또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는 것도 교도관들이 말해 재소자들이 알았으며, 만약 환자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 조사나 재수감된 후 인권은 없었다는 것이 A씨의 말이다.
그 후 유태파 부두목 김씨는
그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뒤인 2002년 1월21일 청송감호소로 이송됐다.
이후 고의로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추가됐다.
교도소 측은 에이즈 환자가 범법행위로 복역한 적은 있으나 복역 중 에이즈에 감염된 전례가 없어 김씨의 신병처리에 고심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 뒤 세 차례나 교도소를 옮겼고, 에이즈 합병증인 폐렴 증세가 악화돼 2008년 2월 29일부터 3개월간 형집행정지를 받고 부산의 한 대학병원 격리동에 입원했다.
그러나 김씨는 담당교도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무단 외출을 하는 등 형집행정지 규정을 위반해 입원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부산구치소에 강제 재 입감 됐다. 김씨는 폭력조직 유태파의 근거지인 부산 동구 등을 돌아다녔을 것으로 보고됐다.
지금 김씨의 생사는 알 수 없으나 에이즈 감염을 통해 교도소 밖을 나간 것은 형집행정지 기간인 15일이 전부였다. 결국 보름간의 외출을 위해 현행법을 어겨가며 자진해서 에이즈 환자가 된 셈이다.
A씨에 따르면 김씨와 자신을 연결했던 유태파 조직원 황씨는 부산 부전동에서 히로뽕을 하다가 경찰이 검거작전을 펴자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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