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

우크라 참전했다가 전사한 한국계 미 해병대 예비역 장교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이웃나라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수호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우크라이나로 와 달라”고 호소했다.

전세계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많은 이들이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최소 52개국에서 2만여명이 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외국인 의용군을 ‘국제 영토 방위군’으로 명명한 뒤 전장에 투입했다.

국제의용군에는 한국계 전직 미국 해병대 장교인 그래디 크루파시(50)도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후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뉴욕에 거주하던 크루파시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보병 돌격대원과 정찰 저격병으로 활약했다. 이라크에 3차례 파병됐고, 부인, 딸과 함께 한국에서도 3년간 복무했다.

크루파시는 미 해병대에서 복무하며 선행훈장 3회, 국방훈장, 퍼플하트장, 세계테러전쟁원정훈장, 해병대공로훈장 3회 수상하며 해병대 훈장을 받았다.

그는 2021년 9월 전역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자유 수호를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대피를 돕거나 병사들의 훈련을 맡았다.
전쟁이 격렬하게 진행되자 전투경험이 있는 지휘관이 필요했고, 크루파시가 분대를 이끌게 된다.


2022년 4월26일 크루파시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실종된다. 당시 크루파시 분대는 영국 국적의 앤드루 힐과 함께 러시아군과 교전을 벌였다.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자 크루파시는 총알이 날아오는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임시 관측소로 이동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크루파시 예비역 대위와 함께 있던 영국 국적의 앤드루 힐은 러시아군에 체포됐고, 팀 내 다른 2명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실종된 후 가족과 친구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그의 행방을 찾았다. 그리고 실종 1년 뒤인 2023년 4월 크루파시의 사망이 확인된다. 미국 국무부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시민의 사망을 확인했다”면서 크루파시의 사망을 공식으로 알렸다.

그의 유해는 5월19일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는 크루파시의 사연이 올라왔다. 모금 운동을 펼쳤던 윌리엄 리는 “크루파시 대위는 영감을 주며 이타적이었다”면서 “언제나 웃는 얼굴로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이었다”고 그를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