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김수철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


서울 영등포구에는 성범죄자인 김수철(45)이 살고 있었다.

2010년 6월7일 오전 9시쯤 김씨는 인근 초등학교에 흉기를 소지하고 침입했다. 김수철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그가 학교 안을 자기 집 안방처럼 활보했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A양(8)이 운동장에 나타나자 김수철은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A양은 학교의 재량휴일인 이날 10시부터 시작하는 ‘방과 후 수업’을 듣기 위해 운동장을 지나고 있었다.

김수철은 A양의 목에 커터 칼을 들이대며 “조용히 하라”고 위협했다. 이어 A양의 목을 감고 유유히 정문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걸어서 680m쯤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다. 김씨는 A양을 집으로 끌고 온 후 옷을 벗기고 무참히 성폭행했다.

A양의 부모와 담임교사 등은 A양이 학교에 오지 않자 걱정이 태산이었다. A양의 어머니는 의아했다. 분명 이날 아침 딸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출근길에 나섰기 때문이다. 때문에 A양이 스스로 다른 곳에 갔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학교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A양은 없었다. 부모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자 이날 오후 1시30분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김수철은 A양을 성폭행한 후 이내 곯아 떨어졌다.


A양은 그 틈을 타 몰래 빠져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2시간을 기다려도 집으로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다시 학교로 향했다. 오후 2시30분쯤 A양은 학교 등나무 벤치에서 부모와 담임교사, 경찰 등을 만날 수 있었다.

A양은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말했다. A양은 사건 발생 5시간30분 만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국부 등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5~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6개월간 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오후 2시쯤 김수철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A양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방안에서 성폭행 흔적을 지우고 태연히 샤워를 했다. 오후 3시쯤 김수철은 집 근처 분식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냉면을 주문하고 누군가를 찾는 듯 잠시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들어와 식사를 했다.

오후 3시50분쯤에는 집에서 도보로 25~30분 떨어진 사우나에 들어갔다. 태연하게 사우나를 즐긴 김수철은 오후 7시10분쯤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중 경찰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검문을 피해 다른 길로 가기 위해 도주하려다 경찰과 마주쳤다.

김씨는 주머니에서 커터 칼을 꺼내 휘두르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이 상해를 입었고, 김씨는 제압된 후 검거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 영등포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동료들과 캔 맥주를 마시고 혼자 주변 식당에서 소주 1병, 맥주 2병을 더 마셨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맥주를 마시면 성욕을 느낀다. 범행 당시 술에 취해 경황이 없었다. 술이 원수다”고 말했다.

1965년 부산광역시 출신인 김수철은 전과 21범으로 범죄 인생을 살았다.

그는 엽기적이고 괴상하고 포악한 상습적인 성범죄자였다. 김수철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여의고 부산에 있는 고아원에서 3년간 살았다. 이후 중학교 1학년 나이에 고아원을 나와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경찰에서 서울에 올라온 지 3년간 동성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18살 때 공장에서 일하던 경리에게 애정을 고백했으나 주근깨를 이유로 거절당해 여성에 대한 열등감을 갖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에서 여러 차례 성격 장애 치료를 받은 기록도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던 1987년 부산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을 성폭행했다. 이로 인해 1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이후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폭력 등으로 여러 차례 철창신세를 졌다.

2006년에는 15세 소년을 채팅으로 꼬여내 성추행을 저질렀다. 그는 교활했다. 피해 소년의 부모에게 “외부에 알리겠다”며 협박, 억지 합의를 받아냈다. 당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김수철은 2007년 폭행죄로 2년간 복역한 후 찾은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출소 후 3개월만 제공되는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김씨는 18세의 가출 청소년과 동거하기도 했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보호관찰소를 전전하는 아이를 데리고 살며 임신까지 시켰다. 그는 지인에게 “PC방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임신해서 기분이 좋아 휴가를 가려고 했는데 여자가 헤어지자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수철의 범행은 일상적이었다. 범행직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했다. 김수철은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사회로 복귀할 경우 더욱 잔인하고 무차별적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명령했다.

김씨는 불우한 성장환경을 탓하며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같은 형량이 나왔다. 재판부는 “아무리 김씨에게 유리한 정상을 참작한다해도 한 가정을 무너뜨리고 아동을 대상으로 참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김씨에게 유기징역을 선고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수철 사건’ 이후 초등학교의 외부인 출입통제가 강화됐다. 이전에는 모든 초등학교에 주간 경비원이 없었다. 주간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아 누구든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후 학부모들이 “학교 수위를 부활시켜 달라”는 청원이 쇄도했다. 서울시는 그 대책의 일환으로 2011년 3월부터 ‘학교 보안관 제도’를 도입해 학교 정문에 보안관을 배치해 출입하는 외부인을 통제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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