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모텔 정화조 살인사건
경북 칠곡에서 모텔을 운영하던 이아무개씨(여·54)는 젊어서 남편과 이혼했다. 혼자 생계를 꾸리며 아들을 키운 이씨. 이런 그녀가 2007년 3월11일 갑자기 행방불명된다. 연락이 두절되자 아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이씨를 도와 모텔을 함께 운영하던 아들 김씨(28)는 경찰에서 “실종 당일 오전 6시쯤 어머니가 분홍색 바지를 입은 채 ‘수영하러 간다. 접수실 좀 봐라’고 하며 외출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수영장에 찾아가 탐문했으나 그날 이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수영장 주차장에서 이씨의 승용차만 발견된다.
이씨가 실종된 후 친언니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동생 이씨가 나타났는데 물에 흠뻑 젖은 상태로 온몸이 퉁퉁 부은 모습이었다. 언니는 꿈이 너무 생생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자 경찰에 “주변 저수지와 모텔 정화조를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이 인근 저수지와 모텔 정화조를 살펴봤으나 이씨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씨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후 이씨의 행적은 오리무중 상태로 남았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2011년 3월, 경찰이 재수사에 돌입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경찰은 이씨가 살아있는지 생활반응을 살펴봤다. 통화내역, 진료기록, 금융거래내역, 인터넷 검색 등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각종 반응을 말한다.
이것은 실종자나 행방이 묘연한 사람을 추적할 때 주요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씨는 실종이후 생활반응이 전무했다. 경찰은 이씨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우선 모텔 안에서부터 정밀수색에 나섰다. 만약 시신이 유기됐다면 가장 유력한 곳은 정화조였다.
해당 모텔의 정화조는 모두 6칸으로 분리된 구조였다. 모텔에서 나온 오물이 가장 먼저 전달되는 1번 맨홀은 가장 더럽고, 이어 번호가 뒤로 갈수록 정화가 진행되어 오염도가 낮아지는 구조였다.
경찰은 1번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3번까지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4번 맨홀 뚜껑을 열고 물을 3분의 1쯤 덜어내자 분홍색 바지를 입은 백골 사체가 드러났다. 바로 실종된 이씨였다.
사체는 머리가 검은 비닐봉지로 싸이고 그 봉지를 넥타이로 묶은 형태였다.
이씨의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은 전담팀을 꾸려 본격 수사에 나섰다. 우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체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원인은 ‘두부 손상’. 사체의 머리에 둔기로 3회 이상 가격당한 흔적이 있었는데, 이게 직접적인 사인으로 작용했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떠오른 것은 다름아닌 아들 김씨였다. 그는 어머니 이씨가 3월11일 오전 6시에 수영장에 간다며 외출했다고 진술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의 모든 생존반응은 전날 오후 5시10분쯤 끊겼다. 이후 이씨가 살아있다고 판단할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모텔의 숙박기록도 김씨가 작성한 것이었다. 이씨가 평소 외출할 때 신던 신발은 모텔에서 발견됐다. 이씨가 입고 있던 분홍색 바지도 외출복이 아니라 모텔 내에서 입던 평상복이었다.
이씨는 수영장을 다닌 5년 동안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발견 당시 이씨의 차량은 다른 자리에 주차돼 있었다.
차량 내부도 평소와는 달랐다. 이씨는 키 158cm다. 그런데 발견 당시 승용차의 운전석과 페달은 이씨가 운전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은 범인이 이씨를 살해한 후 수영장에 간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승용차를 수영장 주차장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판단했다. 모텔에 있던 승용차를 이동시켰다면 가장 유력한 인물은 김씨였다.
뿐만 아니라 시신 발견 당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비닐봉지는 모텔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을 묶은 넥타이는 김씨가 매고 다니던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실종 직후 평소 이씨가 지내던 수부실(접수실)에 있던 전기장판과 이불, 방석 등이 치워져 있었다. 모텔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망치 대신 새로 산 망치만 있었다.
경찰이 김씨를 의심한 이유는 또 있었다. 범인은 이씨의 시체를 정화조에 유기하면서 가장 더럽고 찌꺼기가 많아 발견이 힘든 1번이 아닌 4번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모텔은 평소 주기적으로 청소차를 불러 정화조를 청소했다. 그런데 모든 정화조를 청소한 것이 아니라 가장 더러운 1~3번만 뚜껑을 열고 청소했다. 만약 범인이 1번에 시체를 유기했다면 금방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이런 청소과정과 정화조 내부까지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4번은 플라스틱 구조물이 물 위에 많이 떠서 시체의 은폐가 용이했다.
숨진 이씨와 아들 김씨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모텔 종업원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소 다툼이 잦았다. 김씨가 여자친구와 놀기 위해 어머니의 카드를 훔쳐 쓴 것 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이렇게 모든 정황은 김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어머니의 내연남 양아무개씨를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에 따르면 양씨는 모텔의 정화조 공사를 도운 적이 있어 정화조의 구조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씨 실종 당시엔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양씨는 발끈했다. 그는 이씨를 모텔 공사와 관련해 여러 번 만난 것일 뿐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이씨 실종 당시에는 포항에서 있은 스쿠버 창단식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톨게이트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그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양씨의 알리바이는 입증됐다. 그러자 김씨는 양씨가 어머니를 살해한 다음 한참 후 시체를 정화조에 유기했을 것이라며 재차 양씨를 몰아갔다.
만약 양씨가 범인이라면 이씨를 살해한 후 모텔 안에 시신을 유기할 수 있었을까. 김씨는 어머니 이씨가 실종된 후 모텔을 매각했다. 새 주인에 따르면 모텔에는 CCTV 외에도 입구에 출입인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출입을 하게 되면 센서가 작동해 접수실 차잉벨이 울린다. 이 센서를 피해 모텔로 들어오는 방법은 도로에서 모텔 쪽으로 나 있는 벽을 넘어야 한다. 문제는 이 벽이 상당히 높아 타고 넘어 들어가는 것도 힘들다. 더욱이 시신을 들고서 들키지 않고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씨의 시신이 정화조에 유기된 시점도 아주 중요하다. 범인을 특정하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한 방송프로그램과의 실험을 통해 이씨의 시신이 살해 직후 정화조에 유기됐음을 확인했다. 사체가 시간이 지나서 가벼워질 경우 정화조의 작은 구조물들 때문에 그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 반면 이씨의 사체의 경우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에서 발견됐는데, 이것은 살해 직후 유기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자 김씨는 평일 새벽 0~1시에는 모텔이 전기세를 아끼려고 전기를 내려 이 시간에는 CCTV 확인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이 시간대를 이용해 범인이 사체를 유기한 것 같다고 했고, 양씨는 영업 중인 모텔이 전기를 내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2011년 7월 경찰은 아들 김씨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했다. 제3자가 모텔 관계자의 눈을 피해 여관에 출입하기 어려운 점과 김씨가 자신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범행 동기가 충분하다고 판단,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검찰은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김씨의 어머니가 실종되기 전 모텔에서 이들 부자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주변인들의 진술과 김씨의 어머니가 실종된 이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범인은 김씨가 될 수밖에 없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1심에서는 몇 가지 정황증거들이 인정되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의문이 많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장소로 지목한 모텔 수부실에서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 장소로 단정하기 어렵고, 손님 출입이 잦은 시간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모텔 진입로에 있는 32㎏짜리 정화조 맨홀 뚜껑을 열어 사체를 유기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김씨가 피해자를 본 마지막 사람이라는 것과 피해자가 평소 접수실에서 입던 분홍색 바지를 입은 채 정화조에서 발견된 것뿐”이라며 “설사 피고인의 유죄가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증거로는 혐의 내용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수부실에서 혈흔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 김씨가 무죄나온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경찰이 수부실에서 루미놀 혈흔 반응을 하려고 하자 김씨의 여동생이 오빠를 의심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사는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다.

검찰은 1심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사건과 관련, 검사가 제시한 유죄로 의심되는 여러 정황들도 보완되거나 추가된 것은 없고 제3자에 의해 살해돼 유기됐을 가능성 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게 증명됐다고 할 수 없고 인정할 증거도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결은 정당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에게 무죄선고가 나면서 이 사건은 미해결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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