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육군 헌병 하사 세남매 보복 사살사건
육군 모 부대 헌병대 소속 정용안 하사(30)는 군 장기 복무중이었다.
정 하사는 1970년 2월 초순부터 부대 인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차곡리 김아무개씨(37) 집에서 하숙을 했다.
채소운반업을 하는 김씨는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이런 틈을 타 정 하사는 김씨의 아내 최아무개씨(35)와 눈이 맞아 불륜에 빠졌다.
같은해 10월 두 사람의 관계는 김씨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그러자 정 하사는 스스로 하숙을 옮겼다.
정 하사와 최씨는 부적절한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정 하사가 나간 후 1주일 째 되는 날 최씨도 집을 나왔고 두 사람은 아예 살림을 차리고 동거에 들어갔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분노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1971년 3월19일 정 하사와 아내 최씨를 경찰에 간통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두 사람 중 최씨는 구속돼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됐다. 정 하사는 군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정 하사는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그는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를 위해 수사를 받는 동안 김씨와 4월 말까지 위자료 30만원을 주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그는 우선 갖고 있던 5만원을 주고 4월26일 풀려났다. 그러나 정 하사는 나머지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말았다. 그는 이런 상황이 김씨 때문에 비롯됐다며 앙심을 품는다.
급기야 그는 5월9일 새벽 부대에서 카빈 소총과 실탄을 훔쳐갖고 나와 김씨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어린 삼남매만 있었다.
이날 김씨는 이웃마을에 있는 누님 집에 갔고, 어머니 우아무개씨(67)는 둘째 손녀 명월양(12)을 데리고 이웃 조카집에 있었다. 정 하사는 순순히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문간방에서 잠자고 있던 아이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어 잠자고 있던 세남매에게 차례대로 방아쇠를 당겨 모두 사살했다. 이날 김씨의 장녀 명자양(16), 삼녀 명분양(10), 외아들 인구군(8)이 희생됐다.
새벽 4시, 교회 종소리와 함께 총성을 듣고 잠이 깬 이웃집 여성(48)은 김씨의 어머니 우씨에게 연락했다. 4시30분쯤, 부랴부랴 집으로 향한 우씨는 문간방에 참혹하게 죽어 있는 손녀와 손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곧이어 정 하사를 쫓고 있던 군경합동수색대가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방안에는 정 하사가 집주인 김씨에게 남겨놓은 “집에 없었던 걸 운 좋은 줄 알라”는 내용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군경수색대는 정 하사의 하숙집이 있는 성동구 문정동 일대에 수사망을 폈다. 포위망을 좁혀가던 중 사건 현장에서 2km쯤 떨어진 성동구 문정동 장지리 뒷산에서 정 하사의 모습이 포착됐다. 오후 6시20분쯤, 30여명의 군경수색대는 포위망을 더욱 압축해 들어갔다.
막다른 길에 몰린 정 하사는 더 이상의 퇴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목에 카빈을 밀착하고 2발을 발사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건발생 14시간 만이다.
정 하사의 주머니에서는 “위자료를 10만원으로 정했는데, 30만원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교제비를 많이 써 45만원이나 빚져 신세를 망쳤으므로 복수했다”는 내용의 메모가 들어있었다.
이로써 군인 하숙생과 여주인과의 불륜 행각으로 인해 애먼 아이들만 희생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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