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가양동 무장 탈영병 ‘이정민 이병’ 폭사사건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사는 이정민씨(20)는 택시기사인 아버지(49)와 어머니(39)의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전남 곡성소재 J전문대 전자계산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5년 4월14일 군에 입대했다.

이 이병은 신병교육을 마치고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소재 육군 모 부대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5월19일 오후 8시30분쯤 이 이병은 탄약고에서 경계근무를 서다가 탈영을 결심했다.

K2소총, 실탄 75발, 수류탄 1발을 챙긴 이 이병은 무장 탈영을 감행했다. 당시 이 이병은 얼룩무늬 군복에 철모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안경을 착용했다. 이 이병은 오후 9시쯤 경기도 문산 오두산 통일 전망대 부근 자유로 갓길에 정차 해 있던 갤로퍼 차량 소유주 김종식씨(29)를 위협했다.

당시 김씨는 여자친구 최아무개씨(22)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이 이병은 두 사람에게 접근해 “총과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이어 “탈영병인데 서울까지만 태워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와 여자친구 최씨는 앞 자리에 앉고 이 이병은 뒷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면서 수류탄 안전핀을 만지작 거렸다.

이 이병은 30분 뒤인 오후 9시30분쯤 통일전망대-자유로-한강북단을 거쳐 서울로 잠입했다. 갤로퍼 운전자인 김씨는 이 이병에게 “지금 자수하고 용서를 받도록 하라”고 하자 이 이병은 “광주가 고향인데 고참들의 구타가 심해 탈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병원에 갔다 왔는데 뼈에 금이 갈 정도로 부상이 심했으며 병원에 갔다 온 후에도 계속 구타당했다” “광주로는 안 간다” “서울에 있겠다” “서울에도 친척이 있다” “자살하겠다” “감옥에 가면 20~30년은 산다는”는 등의 말을 했다.


김씨는 양화대교 남단 한강시민공원에 도착한 후 “내가 있으면 신고하지 않을테니 여자친구는 돌려보내자”고 이 이병을 설득했다. 이 이병도 여기에 동의해 최씨를 한강시민공원에 내려줬다. 그리고 이 부근에서 하룻 밤을 보냈다. 이 이병은 김씨에게 “형”이라고 불렀고, 김씨도 위협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다.

최씨는 20일 오전 남자친구 김씨의 집에 전화를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의 아버지(53)는 오전 11시30분쯤 이같은 사실을 서울 양천경찰서 신월4파출소에 신고했다.

군과 경찰은 김씨의 갤로퍼 승용차를 전국에 수배했다. 또 군경은 합동으로 병력을 증원, 서울시 일원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이 이병의 부모와 여자친구가 있는 광주 등 연고지에도 병력을 급파했다.

이날 아침 이 이병의 수배 소식이 방송 뉴스로 전해졌다. 이 내용을 들은 이 이병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군경의 추격을 느낀 이 이병은 군복을 챙겨 입고 총을 꺼냈다. 오전 11시 이 이병과 김씨는 강서구 가양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후 2시20분 이 이병은 가양2동 동신아파트 앞 노상에서 추격 중이던 경찰과 맞닥뜨렸다. 경찰은 “투항하라”고 방송했다. 이 이병은 수류탄을 갖고 차에서 내려 800m쯤 달아났다. 이 이병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던지려고 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했다. 이 이병은 다리에 총을 맞으며 쓰러졌다.


이때 이 이병의 손에 있던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이병은 그 자리에서 폭사하면서 최후를 맞았다. 현장에는 수류탄의 파편과 잔해가 흐트러지며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 이병이 갖고 있던 K-2 소총과 실탄 75발 전량을 회수했다.

이 이병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김씨는 폭발당시 차 밖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군은 이 이병의 무장 탈영의 원인을 ‘건강상의 이유와 부적응’으로 몰아갔다.

이 이병이 수색대에 배치받자 동료들에게 “몸이 약해 앞으로 수색대 근무가 걱정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고교시절 오토바이를 타다 부상을 당해 요통을 앓았던 것과, 입대 후에는 허리통증을 주변에 호소하며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고 강조했다.

군 당국은 이 이병이 입대 전 음독자살을 기도해 1개월간 입원한 적이 있다고 밝혔으나 당시 자살기도 동기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군의 발표와 달리 이 이병이 김씨에게 말했다는 ‘고참들의 구타와 가혹행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많았다.

그러자 육군은 이 이병을 심하게 구타한 같은 부대의 박아무개 상병(22)을 구속했다. 박 상병은 이 이병이 늦게 기상한다는 이유로 군화발로 엉덩이를 10여 차례 차고 팔이 부을 정도로 구타했다고 한다.


아들의 폭사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자대에 배치받은지 보름여 만에 왜 탈영했는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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