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대전에 거주하는 주부 A씨의 남편은 개인 택시기사 김아무개씨(56)다. 김씨는 평소 새벽 4~5시쯤에는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곤 했다. A씨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남편은 그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2006년 4월 11일 화요일 아침 A씨가 일어나보니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었다. A씨는 남편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A씨는 남편이 제 시간에 안 들어오면 항상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남편이 받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남편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A씨는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남편이 지병으로 심근경색(심장혈관이 막혀서 심장 근육이 손상되는 질환)을 앓고 있어 더욱 걱정이 됐다.
하필 그날따라 대전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침 7시가 넘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고 아무런 연락이 없자 A씨는 불안해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A씨는 오전 7시 24분쯤 경찰에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귀가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며 미귀가 신고를 했다.
비슷한 시각 B씨(남)는 승용차를 타고 대전 대덕구 송촌동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B씨의 시야에 택시(검정색 쏘나타) 한 대가 들어왔다. 대양초등학교 뒷길에서 전조등을 켜고 시동이 걸린 채로 세워져 있었다.
택시는 갓길에 주차돼 있던 트럭을 들이받은 채 멈춰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B씨는 차에서 내려 택시 안을 살펴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택시 뒷좌석에 누군가 피투성이로 쓰러져 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3분 전 미귀가 신고를 했던 A씨의 남편이었다.
B씨는 다급하게 112에 전화를 걸어 “택시 안을 보니까 뒷좌석에 피가 잔뜩 묻어있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신고했다. 관할 대전 동부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택시 안의 참혹한 광경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마치 피를 쏟아 부은 듯 혈흔이 낭자했다.
천장에서 문까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휴대 전화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뒷좌석에는 택시기사 김씨가 시트에 상체를 기댄 채 쓰러져 있고, 입고 있던 베이지색 점퍼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김씨의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던 형사들은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씨의 얼굴과 몸에는 흉기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무려 28군데나 있었던 것이다. 김씨의 손에도 수차례 베인 상처가 남아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살기위해 몸부림 친 흔적으로 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김씨의 사망원인은 ‘다발성 자창(찔림) 및 절창(베임)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사망 추정시간은 전날인 10일 오후 8시 30분부터 11일 오전 5시 사이였다.

김씨의 택시가 주차된 상태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먼저 김씨의 택시가 발견된 곳은 평소에도 인적인 뜸한 곳이었다. 김씨의 택시는 주차된 덤프트럭에 조수석 쪽을 부딪힌 채 멈춰 있었다. 조수석 쪽 측면이 트럭에 맞닿아 있어 문을 열고 닫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택시는 시동이 켜져 있었고, 운행기록장치(타코미터)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사건 현장은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택시에 탄 누군가가 인적이 뜸한 곳으로 목적지를 정했고, 흉기로 위협하자 김씨가 범인이 도주할 수 없도록 일부러 조수석 쪽을 주차된 트럭에 밀착시킨 것이다.
그런 다음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에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해 내린 것으로 보인다. 택시의 운전석 쪽 뒷문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잠긴 것을 감안하면 범인은 도주로를 차단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씨는 왜 흉기를 든 범인을 맨손으로 대적하려고 했을까. 막다른 길에 놓인 범인을 직접 제압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면 김씨는 목숨을 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김씨는 범인과 맞대결을 펼쳤다. 이것은 김씨가 범인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김씨는 키 181cm, 몸무게 87kg의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반면 범인은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로 추정된다. 뒷좌석 시트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자국이 발견됐는데, 사이즈는 250~265mm 정도였다. 이것을 토대로 보면 범인의 키는 165~175c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최소한 김씨 보다 왜소한 체격이다.

도주로가 차단 된 범인은 김씨가 제압하려고 하자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 시신 밑에서 부러진 칼날(10.5cm)이 발견됐는데, 그의 몸에 난 자상과 일치했다. 운전석 앞 길바닥에는 김씨의 왼쪽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 김씨가 운전석에서 내릴 때이거나 범인과 몸싸움을 하면서 벗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는 범인을 제압하지 못하고 격투 중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흉기에 찔리고 베이며 온몸을 난자당했다. 범인을 제압하기 위해 흉기를 맨손으로 잡았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범인은 누구일까.
경찰은 먼저 범행동기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래야만 용의자를 압축할 수 있어서다. 김씨가 흉기에 난자당하는 등 처참하게 살해되자 처음에는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봤다. 택시 안에 현금 18만 8천원 등 금품이 그대로 있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봤다.
경찰은 가족과 동료 택시기사 등을 상대로 김씨가 원한을 살만한 일이 있었는지를 탐문했다. “김씨는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다”는 진술이 대부분 이었다. 김씨의 40년 지기는 “친구들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자기보다 남을 위해 노력했고, 원한관계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도 “굉장히 가정적인 남편이었고, 내가 건강이 안 좋아서 많이 아팠는데도 짜증한 번 내지 않고 병원 수발 다 들었다”며 다정하고 헌신적인 남편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도, 원한을 살만한 것도 없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김씨는 원래 부유한 가장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랐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손꼽히는 사업체도 운영했다. 그러나 사업체가 부도났고,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금세 택시기사에 적응했고, 빚도 다 갚았다. 어렵사리 개인택시도 장만하며 쉬는 날이 없이 일하며 돈을 벌였다. 채무 관계도 깨끗했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범인은 면식범으로 보기 힘들다. 김씨의 시신 발견 당시 택시의 시동이 켜져 있고, 타코미터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운행 중 돌발 상황이 발생했음을 말해준다. 경찰은 마지막 택시 승객이 범인일 것으로 보고 신원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그가 손님으로 위장해 탑승한 다음 강도로 돌변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택시에는 운행을 기록하는 ‘타코미터’가 장착돼 있다. 이 장치는 엔진의 회전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차의 주행속도, 정차여부 등을 알 수 있다. 경찰은 김씨가 몰던 택시의 타코미터를 확보하고 운행기록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몇 가지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특히 마지막 승객의 탑승지점을 집중 살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승객은 사건 현장인 대덕구 송촌동 대양초등학교 인근에서 3.4km 떨어진 곳에서 오전 4시 15분쯤 탑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지막 승객은 앞 손님이 하차한 후 16초 후에 탑승한 것으로 나왔다. 이것은 손님을 내려준 뒤 곧바로 마지막 승객 즉, 범인이 탑승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새벽에 연이어 손님이 탑승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경찰은 주행기록과 시간, 번화가를 중심으로 범인의 탑승 예상지점 16곳을 추려냈다. 그런 다음 하나씩 제외해 나갔다. 유력한 장소는 두 곳이 남았다. 대전 농수산물 시장과 고속버스 터미널이다. 농수산물 시장의 경우 상인들 대부분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이제 범인의 탑승지점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고속버스터미널만 남았다.
이 근처에는 술집과 유흥업소들이 많다. 새벽에는 버스나 지하철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택시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16초 만에 연이어 손님을 태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경찰은 목격자를 찾기 위해 터미널 인근에서 탐문에 들어갔다. 택시기사와 인근 주점 등을 상대로 알아봤으나 끝내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통신수사도 병행했다. 사건 현장 주변과 탑승 추정 장소 등을 특정하고, 예상 시간대 기지국 수사를 통해 범인의 흔적을 찾아 나갔다. 아쉽게도 1천여 건의 통화기록을 확보해 수사했지만 용의자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현장 주변 4천77세대를 일일이 방문하며 탐문했다. 해당 지역에 거주했다가 전출했던 사람들까지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전과자를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지만 역시 허사였다.
사건 현장에 남은 유일한 단서는 부러진 칼날과 신발자국이다. 경찰 조사결과 범행에 쓰인 흉기는 중국산 과도였다. 부러진 칼날에 ‘MADE IN CHINA’, 즉 중국산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칼날의 전체 길이는 20.7cm 정도였다. 경찰은 대전지역 주방용품 매점을 모두 뒤졌지만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주로 거리 노점에서 판매되는 것이어서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했다.
경찰은 병원과 세탁소 등도 집중 탐문했다. 사건 당시 택시 안에서는 격렬한 격투가 있었다. 칼날이 부러질 정도였다면 범인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점에 착안해 경찰은 대전 시내의 병원을 찾아다니며 외과 진료 기록 등을 살펴봤다. 그러나 유력한 단서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은 갈수록 초조해졌다. 기를 쓰고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았지만 성과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사건 현장에서 약 5km 떨어진 대전역 인근 동구의 한 세탁소에서 유력한 제보가 들어왔다.
사건 당일 오전 8시쯤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세탁소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상의는 연한 회색 티셔츠, 하의는 국방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더욱이 상의에는 피가 뿌려진 모습으로 몇 방울이 묻어있었다.
세탁소 주인에 따르면 “아침에 장사하기 전에 문을 열고 청소하고 있는데, 누가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피 묻은 옷 좀 세탁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안 된다’며 그냥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그 남성은 1시간 후인 9시쯤에도 한 번 도 찾아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탁소 주인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 이번에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세탁소 주인이 본 남성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는 약 170cm 정도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범인의 체격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문의 남성은 세탁소에 처음 찾아오는 사람이었다. 이 세탁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동네의 단골손님인데 이 남성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범인이 위험을 무릎 쓰고 피 묻은 옷을 세탁소에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세탁소 주변에는 여인숙이나 쪽방들이 많았다. 따로 세탁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세탁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됐다. 범인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택시 강도로 나섰던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세탁소 주인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를 찾았고, 대전역 주변의 숙박업소와 PC방 등을 조사했지만 용의자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우범자나 사건 현장 인근의 탐문수사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래도 단서를 찾아야 했다. 경찰은 택시 안과 피해자 김씨의 몸에 묻은 혈액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두 사람이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범인도 부상을 입었고, 피를 흘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밀 혈흔 감식을 통해 범인의 DNA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고, 드디어 남성 2명의 혼합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한 명은 피해자 것이었고, 다른 한 명은 범인의 DNA였다. 이제 동일 수법의 전과자와 유전자를 대조해보면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어이없이 무너졌다. 범인과 일치되는 DNA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이 사건은 미제로 남고 말았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현장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다. 범인은 의도적으로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하고 택시 기사를 유인했다. 주민들도 “주변 지리를 잘 알지 않고는 찾아가기 힘든 곳”이라고 했다. 범인이 이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거나 근처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2.강도가 목적이었다.
택시의 경우 현금을 다루고 심야시간 운행이 잦아 쉽게 범죄 대상이 된다. 이 사건의 범인도 택시를 노리고 새벽을 범행시간대로 정했다. 번화가에서 택시를 탄 후 인적이 드문 장소로 유인했다. 범인이 생각하는 목적지에 다다르자 뒷좌석에서 흉기를 들고 택기기사를 위협했다.
택시기사는 범인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주차된 버스 옆으로 조수석 쪽을 바짝 댔다. 그런 다음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가서 범인과 맨손으로 격투를 벌였다. 막다른 길에 몰린 범인은 흉기를 마구 휘둘렀고, 결국 운전기사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범인은 현장을 벗어나는데 급급해 김씨의 주머니와 운전석에 있던 현금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3.키 170cm, 몸무게 55~60kg
범인은 차량 안에 신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한국표준과학원이 신발자국으로 추정한 범인의 키와 몸무게는 170cm에 55~60kg이었다. 당일 세탁소에 피 묻은 옷을 입고 찾아온 용의자도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170cm 정도였는데, 이것과도 일치한다.
4.전과 없는 초범이다.
경찰은 동종 전과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으나 비슷한 용의자는 나오지 않았다. 또 차량 안에서 발견된 혈흔을 채취해 혼합DNA에서 범인의 유전자를 추출했다. 이것을 토대로 동일 수법의 전과자와 유전자를 대조했지만 역시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범인은 강력범죄 전과가 없는 초범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