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울산 계모 우영진군 살해사건


울산 남구 야음1동에는 우영진군(6)이 살았다.

2008년 2월6일 오후 1시30분쯤 우군은 “슈퍼마켓에서 오락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된다.

아이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계모 오선미(30)는 인근에 있는 울산 남부경찰서 야금지구대를 찾아가 “우리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슈퍼마켓은 집에서 약 50m쯤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오씨의 신고를 받고 방범순찰대와 야음지구대 대원 등 200여명을 동원, 우군의 집 주변과 인근 선암댐 수변공원 일대를 수색했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우군의 주변인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도 걸려오지 않아 납치나 유괴로 보기도 어려웠다.

실종 3일째인 2월9일, 경찰은 앰버경보(실종아동경보)를 발령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앰버 경보’는 실종 아동이 발생할 때 고속도로, 국도, 지하철, 금융기관 등의 전광판과 방송, 휴대전화 등으로 신속하게 실종 상황을 전파, 해당 아동의 조기 발견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다.

2월11일 경찰은 4개 중대 280명과 남부서 형사 등 350여명을 동원해 우군의 집 주변과 야음동 재개발 지역의 빈 집, 신선산 일대 등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또 우군의 사진과 실종 당시 인상착의가 게재된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걸고 시민들에게 전단을 배부했다. 이와 별도로 생모(29)가 살고 있는 서울 거주지에 형사대를 보내 우군과 함께 있는지 확인 작업도 벌였다. 인근 부랑자나 정신이상자에 대한 탐문 수사도 벌였다.

언론에서도 우군 실종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언론의 취재는 신고자인 계모 오씨에게 집중됐다. 그가 길거리서 전단지를 돌리는 모습과 인터뷰 내용이 전파를 탔다.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서 오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프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라”며 눈물까지 보였다.

<연합뉴스>에는 “우리 영진이 찾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영진이 사진을 들고 있는 오씨의 모습이 보도됐다. 오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날씨가 추워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 너무 걱정스럽다”며 “누군가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집으로 빨리 보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제자리걸음만 계속했다. 그러자 경찰은 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선 신고자이자 마지막 목격자인 계모 오씨에 대한 행적부터 조사했다.

그런데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 오씨의 진술에 모순이 있었다. 오씨는 아들이 동네 슈퍼마켓에 오락을 하러 간다고 나간 뒤 사라졌다고 진술해 놓고 정작 오락실은 가보지도 않았다.

우군이 오락을 하러 간 사이 자신은 동네 산책을 했다고 진술해놓고 그 시각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부터 경찰은 오씨의 행적을 집중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국 덜미가 잡힌 그는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다고 판단되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오씨의 실종신고는 자작극이었고, 언론 인터뷰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씨는 실종 전날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 우군이 먹은 것을 토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폭행했다. 빰을 때리고, 발로 배를 찼으며 등과 얼굴 등을 빗자루로 6∼7차례 마구 때렸다. 이후 우군은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고, 다음날 아침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오선미는 우군의 시신을 종이상자에 담은 후 콜밴을 불러 자신의 친정이 있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연안리로 옮겼다. 비닐하우스 옆 논두렁에 있던 폐드럼통에 시신을 넣은 후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뿌린 다음 시신을 불태웠다.

오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태연하게 경찰 지구대를 찾아가 실종신고를 했던 것이다.

경찰은 우군의 시신을 경주 외동읍의 논두렁에 버려진 드럼통에서 발견했다.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내장 파열에 의한 출혈’로 드러났다.

오씨가 우군을 폭행해 숨지게 했을 당시 우군의 아버지(32)는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 집에 없었다.

우군은 6년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따뜻한 부모의 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태어난 지 1년8개월 만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고모 집에 맡겨졌다. 3년5개월 정도 맡아 길러온 고모에게 사정이 생기자 2007년 4월 다시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아버지가 같은해 10월 고교때부터 알았던 계모 오씨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우군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오씨는 고집이 세다는 이유 등으로 우군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며 학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선미는 ‘상해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부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가족의 탄원 등이 있어 정상을 참작한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이 사건 범행은 만 5세의 아이가 밥을 먹고 토한다고 해서 폭행해 숨지게 하고 사체를 불에 태워 유기하는 등 범행 내용과 결과가 매우 중하고 범행 후에도 태연히 아이의 실종신고를 하는 등 범행 은폐까지 시도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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