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무학산 ‘여성 등산객’ 살인사건
경남 창원시 마산 회원구와 합포구에는 ‘무학산(舞鶴山, 해발 762m)’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이름은 ‘풍장산’이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다.
2015년 10월28일 오전 A씨(여·51)는 무학산 등산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녀는 오전 11시15분쯤 원계마을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오후 1시10분쯤에는 산 정상에서 남편에게 카카오톡으로 무학산 정상에서 “사과를 먹고 있다”고 연락한 게 마지막이다.
그 후 A씨의 연락이 두절됐다. 하산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A씨 남편은 초조했다. 오후 5시쯤에는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귀가 시간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A씨 남편은 아내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좀 더’ ‘좀 더’ 하면서 기다렸지만 밤이 돼도 아내는 귀가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두절됐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A씨 남편은 밤 9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등산로 일대 수색에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다음날인 10월29일 수색을 재개했고, 오후 3시40분쯤 무학산 정상 인근 6부 능선 등산로에서 A씨의 시신을 발견됐다. 정확한 위치는 시루봉 아래 벤치 3개가 있는 지점 밑으로 약 50m다. 시신은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나뭇잎과 흙으로 덮여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에 따르면 A씨의 사망원인은 머리 뒷부분에 강한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한 뇌출혈로 분석됐다.
발견 당시 A씨 하의 일부가 벗겨져 있었지만, 국과수 부검결과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국과수는 A씨의 사망추정 시간을 실종 당일인 28일 오후 2시로 특정했다.
경찰은 A씨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등산로 입구와 정상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분석했다.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무학산 정상 CCTV에 A씨 행적 일부가 찍힌 것도 확인했지만 사건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A씨의 소지품 중에는 휴대전화가 없어졌다. 덮개(케이스)는 현장에서 발견됐지만 휴대전화 본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치추적 결과 사건 당일 오후 2시25분쯤 경남 함안군 일대에서 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최대 반경이 5km에 달해 실제 위치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찰은 목격자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경남지방청과 마산 중부경찰서의 형사인력을 총동원해 등산객 탐문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A씨의 하의 일부가 벗겨져 있는 것 등을 감안해 성폭행에 의한 살인을 의심했다. 이에 성범죄 전과자, 정신질환자, 독거 남성까지 총 4천명 이상을 조사했으나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등산객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남성 2명에 대해 당일 행적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혐의점이 없었다.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사건발생 5일째 현상금 1천만 원을 내걸고 공개수사에 돌입한다. 전단지 3만부를 제작‧배포했다. 그러나 유력한 목격자나 제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이 해를 넘기면서 경찰은 초조해졌다. 이런 사이 지역 민심도 흉흉해졌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 수사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과 질타도 갈수록 심해졌다.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건을 지휘하는 관할 마산지청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경찰에 A씨의 옷 등 유류품 17점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 보내 재감정하자고 했다. 사건 발생 후 국과수에 의뢰한 유전감정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기에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의 장갑에서 용의자의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감정결과를 회신 받은 것이다. 용의자도 특정됐다. 그는 2016년 1월 경북 영천에서 절도사건으로 검거돼 대구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정아무개씨(47·거제시 남부면)였다.
정씨는 법원에서 1년4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성폭행으로 7년, 강도 상해로 7년을 복역하는 등 범죄 전과만 7범이다.
경찰은 이미 확보한 CCTV자료 재분석 등 보강수사를 벌여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정씨를 조사했고,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사건 발생 189일만이다. 경찰은 정씨를 살인과 사체은닉 혐의로 검거한 후 검찰에 송치했다.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 했던 무학산 살인사건은 이렇게 극적인 반전으로 실마리가 풀렸다.
사실 국과수에서 제대로 감정만 했다면 금방 해결된 사건이었다. 또 정씨의 모습은 무학산 정상 등의 CCTV에도 포착됐었는데, 경찰은 그걸 놓쳤다. 결국 오랜 기간을 헛발질만 한 셈이 됐다.


사건 당시 상황도 드러났다.
정씨는 2015년 10월3일 거주지인 경남 거제에서 마산으로 넘어와 일자리를 찾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자 사건 당일 무학산에 올랐고, 정상에서 A씨를 우연히 보게 됐다.
정씨는 욕정이 발동해 A씨를 성폭행하기로 하고 하산하는 그녀를 약 1.8㎞를 뒤따라가며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무학산 6부 능선에 이르자 A씨를 밀쳐 넘어뜨리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주먹과 발로 얼굴과 배 등을 마구 때린 뒤 목을 졸라 기절시킨 뒤 풀숲으로 25m가량 끌고 내려갔다. 하지만 A씨가 숨진 것으로 드러나자 흙을 덮어 사체를 은닉한 뒤 범죄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 후 정씨는 경남 창녕, 양산 등을 돌며 도피행각을 벌였다.
자금이 떨어지자 절도를 했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유치장에 있었던 것이다. 2016년 5월 4일 사건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정씨가 호송차에서 내리자 유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씨가 경찰과 함께 주차장에서 등산로 입구로 향하자 유족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정씨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과 경찰이 대치했다. “저런 사람에게 인권이 뭐가 필요합니까” “얼굴 공개 안 하면 오늘 현장검증 못 하는 겁니다” 경찰은 유족들의 요구로 정씨 얼굴을 잠시 공개했다.
정씨는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느꼈을 극심한 공포와 유족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점, 피해회복 노력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원심의 형량은 적절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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