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여성 비닐봉지 살인사건
충북 청주시 모충동에는 이아무개씨(여·57)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약 4km 떨어진 가경동의 한 대형할인점(이하 마트)에서 야간 미화원으로 일했다.
매일 마트가 폐점하는 밤 10시에 출근해 청소를 시작한 뒤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고된 일상이었다. 이씨는 일이 끝나면 약 50분 정도 마트 내의 미화원 대기실에서 쉬다가 오전 6시에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2009년 1월18일 새벽 5시50분, 이씨는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마트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이 모습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오전 6시쯤 검정색 트라제 XG 차량 한 대가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다 이씨를 보고 유턴해서 인근에 차를 세웠다. 약 3분 정도 멈춰있던 차량은 정류장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가 이씨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약 10초간 대화를 나눴고 이씨가 트라제 XG 차량의 조수석에 탑승한다. 오전 6시3분쯤 이씨는 이 차량을 타고 집이 있는 모충동 방향으로 사라졌다. 매일 이씨가 타고 귀가하던 시내버스는 평소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이씨가 트라제 XG에 탑승한 지 17분 후인 오전 6시20분쯤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고 이후 행방은 묘연했다. 이씨가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자 남편은 1월21일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접수한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난 2월1일 오후 6시쯤, 청주와 대전을 연결하는 현도교 아래(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에서 중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한 시민이 반려견과 산책하다 갑자기 개가 수풀 속으로 뛰어가자 쫓아갔는데 그곳에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꽁꽁 얼어붙은 여셩의 시신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신원확인에 들어갔고 행방불명 상태이던 이씨로 확인됐다. 그녀가 발견된 곳은 실종지점인 마트 앞 버스정류장에서 약 28km 떨어진 곳이었다.

부검결과 이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고, 실종 당일인 1월18일 오전 8~9시로 판정됐다.
이씨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은 김과 밥이 나왔는데, 일반적으로 음식물이 죽상 상태로 남아 있으려면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걸 토대로 보면 이씨는 음식이 소화되기 전에 숨졌다는 것이 된다. 실종 당일 업무를 끝내고 동료 직원들이 김밥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씨의 몸에서는 남성의 정액이 검출됐는데, 범인은 이씨를 성폭행한 후 살해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살해방식이다.
범인은 이씨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 죽게 했다. 시신의 목에는 조른 흔적이 없었고 대신 비닐봉지를 씌운 후 벗겨지지 않도록 두 번 매듭을 묶은 것이 전부였다. 폭행 흔적도 없었다. 범인은 이씨의 숨이 끊어진 후 미리 봐둔 장소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이씨의 몸에서는 강간당하면서 저항한 흔적도 없었다. 보통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치거나 손톱으로 범인을 할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산 사람에게 비닐봉지를 씌울 경우 고통 때문에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이씨에게는 이런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다각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먼저 범인이 이씨와 아는 사람, 면식범일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씨 주변 인물 중에 이웃주민인 70대 남성을 용의 선상에 올렸으나 범죄 혐의점도 없었고, 시신에서 검출된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후 동종전과자, 주변인물, 마트 남성 종사자 등의 유전자를 채취해 대조했으나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경찰은 범인으로 유력한 트라제 XG 운전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 정류장 근처에 있던 CCTV는 화질이 좋지 않아 차량번호 식별이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실종지점과 시신이 발견된 인근을 지나간 동종차량을 조사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후 경찰 수사는 계속해서 제자리를 맴돌다가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 사건의 범인은 검거되면 언제든지 법정에 세워 처벌할 수 있다. 원래는 2034년 2월1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2000년 8월1일 이른바 ‘태완이법’이 통과되면서 처벌이 가능해졌다.
사건 관련 제보는 충북경찰청 미제 사건 전담 수사팀(043-240-2980)으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계획적인 범행이다.
범인은 처음부터 성범죄를 계획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른 아침에 승합차를 타고 범행대상을 물색하다 이씨를 발견한 후 희생양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씨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던 범인이 방향을 바꿔 이씨에게 접근한 것도 이런 것을 뒷받침한다. 범인이 이씨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고 물었을테고 이씨가 “모충동 쪽이다”라고 하자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호의동승을 제의하자 이씨도 경계심없이 조수석에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를 차량안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한 범인은 기회를 틈타 이씨를 순식간에 제압한 후 성폭행했고, 목적을 달성하자 비닐봉지를 씌워 살해했다고 봐야 한다.
2.약물(마취제 등)을 이용해 저항을 무력화 시켰다.
이씨의 몸에 저항 흔적이 없었다는 것은 항거불능 상태였기 때문이다. 손목과 발목에는 결박이나 강제로 제압한 흔적이 없었다. 흉기 등으로 위협했다기보다는 마취제 등을 이용해 처음부터 저항을 무력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시신 부검 당시 마취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범인이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이는 방식이 아닌 수건이나 헝겊 등에 약물을 묻혀 코로 흡입하게 했을 수 있다.
성범죄에 악용되는 일부 약물(마약, 마취제)의 경우 반감기를 거쳐 체내에 소량이 남게 되는데 이것이 확실하게 검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나 음료수에 섞어 마시게 해도 1~4시간 내에 체내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검출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의 경우는 살해된 후 2주 동안 야외에서 방치돼 있었기 때문에 여러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3.범행은 승합차 안에서 벌어졌다.
사건 당시 날씨가 추운 겨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범행은 승합차 안에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이씨의 옷에 흙이 묻거나 오염되지 않은 것도 범행 장소가 실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시간대가 숙박업소가 문을 닫는 시점이었고, 범인 입장에서 이씨를 모텔 등 숙박업소에 끌고 가 범행하기에는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랐을 것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범인은 이씨를 기절 시킨다음 차량 안에서 성폭행한 후 비닐봉지를 씌워 질식사 시켰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만약 범행(성폭행-살해) 당시 이씨가 맨정신 상태였다면 저항이나 고통 흔적이 없을 수가 없다.
4.범인은 면식범이 아닐 가능성 높다.
경찰은 사건 초기 범인이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씨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트라제 XG 운전자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차량에 탑승했고, 범행과정에서 저항흔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행과정에서 이씨가 죽자 죄책감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후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웠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범인은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범행에 나섰을 것이다. 계획범죄는 완전범죄를 염두에 둔다. 면식범은 사건발생 후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위험부담이 큰 ‘아는 사람’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을 리 없다.
만약 범인이 처음부터 이씨를 노렸다면 이씨의 동선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랬다면 반대방향으로 운전하다 유턴해서 몇 분 동안 주위에 차를 대놓고 있다가 접근했다는 것도 경험칙상 행동에 맞지 않는다.
면식범이 살인 후 죄책감 때문에 시신 얼굴을 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처럼 비닐봉지를 씌웠다해도 매듭까지 만들지는 않는다. 이 사건에서 ‘비닐봉지’는 살인 도구였던 것이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